중년 육아휴직 일기

20250905(목)-육아휴직 41일차(32,500원)

by 치치

20250905(목)-육아휴직 41일차(32,500원)


오늘은 KT위즈를 좋아하는 율이랑 함께 (기다리고, 기다리던) 수원KT위즈 홈구장에 직관하러 가는 날이다. 우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아내가 차를 가져갔고, 야구장 내 주차장이 적어서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주차를 할 수 없기도 하다. 전날 율이는 다음날(오늘) 국어와 수학 수행평가가 두 개나 있다고 했다.


"그럼 미리 말을 하지, 다른 날 예약할 걸 그랬잖아."


내 잔소리를 듣고, 열심히 공부하던데, 점수를 잘 괜찮은지 궁금하다. 오후 3시가 넘어서 율과 큰아이가 집에 도착했다. 율의 얼굴 표정으로는 자기가 노력한 만큼의 점수는 받는 것 같다. 괜히 나만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와, 걱정하고 있었다.


"잘 본 것 같아요. 그런데 앞자리에 앉은 애가 자꾸 뭐라고 해요. '지웠다 쓰면 틀린 거라고.' 그렇게 하지도 않았는데."

"음. 신경 쓰지만. 네가 부러워서 그래."


다행히 기분 좋게 수원으로 가는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하남에서 수원KT위즈 홈구장까지 가는 방법은 광역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다. 3000번 버스를 타고, 가천대(고속도로) 역에서 하차 후 수원으로 향하는 광역버스를 환승하면 된다. 두 번 정도 환승해야 하는데, 우리는 한 번만 환승해서 야구장 근처에 내렸다.


저녁 6시쯤. 근처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등을 사서, 야구장으로 걸어갔다. 생각해 보니,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소방서 신규 채용 체력검정을 야구장 옆 수원종합운동장에서 측정했었다. 당시 나는 25살의 팔팔한 청년으로 체력장은 '뭐. 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체력측정 종목이 바뀌어서 다시 신규 직원으로 못 들어올 것 같다. 야구장 앞에 사람이 엄청 많다. 상대가 롯데인데, 형형색색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열기가 대단하다.


야구장에 도착한 율은 맨 처음 자기 유니폼에 선수 이름 마킹을 한단다. 숍에서 한참을 고르더니, '장진혁' 선수의 이름을 골랐다. 2만 원이다. 자기가 계산한다는 것을 내가 계산했다. 줄을 서서 마킹을 한 후 기념 촬영을 한 장하고 야구장에 들어갔다.


처음 와 본 수원야구장인데, 예쁘게 잘 꾸며놨다. 전광판도 선명했고, 그 위의 화성인 듯한 네온사인도 잘 만들어 놓았다. 시원했다. 응원단 바로 정면 자리는 예매할 수가 없어서, 그 옆쪽으로 한 줄 떨어져서 앉았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내 뒷줄에는 어린 딸 두 명을 데려온 부부가 앉았다. 딸들은 4~7살로 보였고, 자꾸 바닥에 뭘 떨어트린다. 내가 두 번 주워서 줬다. 한 아이는 물을 달라고 해서, 아빠가 짜증 나는 목소리롤 없다고 말했지만 결국 물을 사 온 듯싶다. 나도 막내를 데려왔다면 비슷했겠지. 편하게 보고 있지만 막상 막내가 없으니 허전하기도 하다. 응원석에 앉으면 응원가 부르기가 너무 민망하다. 큰소리가 잘 안 나오다. 5회가 넘어서 목이 풀렸는지 목소리가 크게 나오기 시작했다. 하여튼 응원석은 나와 맞지 않는다. 선취점은 KT위즈가 얻었다. 그러다 엎치락뒤치락 점수가 요동쳤다. 결국 9회 말 끝내기 땅볼로 KT의 승리다. 끝내기의 주인공은 오늘 율이가 마킹 한 장진혁 선수다.




율이는 직관 기념으로 선수들 사인을 받고 싶다고 했다. 그래. 받아라. 이미 1루석 쪽 선수들이 출입하는 장소까지 확인해 놓았다. 경기 종료와 함께 선수들 사인을 받기 위해서 부리나케 뛰어가는 율이다.


"야. 같이 가자."


밤 10시 30. 선수들이 띄엄띄엄 나온다. 옷차림을 보니, 반바지에 운동화다. 시대가 바뀌었구나. 3명 선수에게 사인을 받았다. 1시간을 기다렸는데, 선수들이 더 이상 나올 기미가 안 보이다. 관계자가 나와서 선수들이 '다른 문으로 갔는지 없다.'라고 전해줬다. 빨리 알려주지. 우리 버스 끊기는데. 율이는 장진혁 선수의 사인을 받고 싶어 했는데.


밤 11시 30분이다. 광역버스는 이미 끝났다. 광역버스로 두 번 환승하면 3,500원이면 집에 간다. 게다가 광역버스를 타는 줄이 1시간 내내 이어지고 있다. '수원에서 집에 갈 때가 문제구나.' 11시 30분이다. '사당역 가는 버스를 탈까? 강남역 가는 버스를 탈까? 잠실까지만 가면 택시 타도 괜찮은데.' 선택의 시간이다. 지도를 열 번도 넘게 검색했다. '그래, 결심했어.' 야탑역까지 택시 타고, 거기서 3,000번 막차를 타고 가자. 카카오 택시를 잡았다. 가결제 요금이 30,000원이 넘는다. 아깝다. 택시를 잘 안 타는데. 택시 기사님이 거의 카레이서다. 야탑역까지 도착시간이 12시 12분 찍혔다. 막차가 12시 10분쯤이다. 쫄깃하다. 기사님은 120km로 자유자재로 운전하면서 안전하게 조금 무서웠지만 야탑역에 도착했다. 최종 요금은 '32,500원'이다. 택시에서 내린 후 3분 후에 바로 막차 3,000번 버스가 도착했다.


'다행이다. 심장이 쫄깃하군. 택시비 32,500원이 조금 아깝긴 했지만 율이가 즐겁게 야구를 보고, 소원으로 풀었으니.'


하남에 도착했다. 비가 내린다. 비가 점점 거세게 내린다. 내 가방에는 늘 우산이 있다. 밤 12시 40분에 버스에 내려서 나와 율이는 좁은 우산을 쓰고 집으로 걸어갔다. 물론 율이쪽으로 우산을 더 기울여서 비를 안 맞게 했지만 빗줄기가 강해서 옷과 신발이 다 졌었다. 새벽 1시다. 샤워하고, 이제 침대에 누웠다. 아. 고양이 마루가 율이 침대에 오줌을 쌌다. 세탁기에 빨래를 돌렸다. 내 옆에 율이가 잤는데, 막내로 바뀌었다. 새벽 5시 20분이다. 막내가 배가 고프단다. '아. 밥 먹어야지.' 김에 밥을 싸서, 이른 아침을 먹이고 또 잤다. 아. 새벽에도 바쁘구나.







뭐. 율이가 일본 여행 대신 수원KT 3연전 직관을 가고 싶다고 했으니, 3연전은 아니지만 약속은 지켰다. 택시비 32,500원이 아깝긴 했지만 오늘 이 추억은 돈 주고도 못 살 테니. 육아휴직 동안 막내뿐만 아니라 큰아이들하고도 추억을 많이 쌓아야겠다. 조금 더 나이 들면 추억을 먹고 살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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