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의 시작
이사를 했다.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싼 집으로.
제주의 구옥에는 대부분 마당 한편에 ‘바깥채’라는 작은 건물이 딸려있다. 바깥채는 임시 거처 같은 건물로 창고로 쓰였다는 말도 있는데, 요즘에는 개조해서 세를 놓는 경우가 많다. 애초부터 사람이 살려고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서 구조가 특이하고 상태가 좋지 않다. 나는 서귀포의 마당 넓은 집에 딸린 바깥채에 세 들어 살게 되었다. 이사할 집을 구하던 나와 낭자(룸메이트)에게는 두 가지 조건이 있었다. 1) 우리는 대형견을 키우기 때문에 개를 위해 쓸 수 있는 야외 공간(마당!)이 있어야 했고, 2) 두 번째로는 저렴한 가격이었다. 집을 보러 온 날, 바깥채 뒤에 딸린 작은 뒷마당을 개를 위해 써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고(대신 연세를 10만 원 인상했다), 집이 아무리 낡고 안 좋아도 불편함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은 금액이었기 때문에 깊은 고민 없이 계약했다.
대망의 이삿날,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싼 집은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낡은 집이자, 가장 벽이 얇은 집, 가장 수납공간이 없는 집으로 등극했다. 군데군데 벽에 구멍을 뚫어 전선이 연결되어 있었는데, 이 건물이 전기가 발명되기 전에 지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접지가 하나도 안 되어 있는 전기 상태를 보니 이 집에서 쓸 전자제품들의 수명이 닳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부엌에는 아궁이터가 남아 있고, 불만 피울 수 있을 정도로 좁았다. 우리는 양문형 냉장고를 가지고 있었는데 양문형 냉장고가 생기기 전에 지은 건물에는 당연히 양문형 냉장고를 둘 공간이 없었다. 창고로 쓰였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문은 자물쇠를 걸어 잠그도록 되어 있었다. 학교에서 사물함에 거는 그 자물쇠 말이다.
2인분의 옷을 걸 행거를 설치하면 집의 1/4이나 되는 공간이 사라지고, 침대를 놓으면 1/2, 나머지 1/4의 공간에 책상 하나를 두면 끝이 날 상황이었다. 부엌에는 접시를 비롯한 주방용품들과 각종 양념들을 둘 공간이 없었다. 싱크대에 주변에는 조리를 위한 공간이 하나도 없어서, 무언가를 썰려면 도마를 바닥에 두고 써는 방법밖에 없어 보였다. 신발장도 없어서 문밖(야외)에 신발을 두거나 현관 옆에 쌓아두어야 했다. 정말 얇은 콘크리트로 만든 빈상자나 다름없었다. 조금 찌그러지고 많이 작은 빈 상자.
아마 예전의 나라면, 이 집에 맞는 가구나 생활용품들을 사기 위해 집세보다 더 많은 돈을 써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가전제품을 집 크기에 맞게 바꾸고, 수납을 위한 가구들을 사야 했겠지. 하지만 낭자는 목수였다. 나도 그에게 목수일을 배우기로 한 상태였다. 나는 깨달았다. 구조가 개떡 같으면 거기에 맞게 내가 만들어 끼워 넣으면 된다는 걸.
인생이 게임이라면, 이건 마치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의 진입이다. 어릴 때는 주어진 대로 살던 삶이었다. 부모님이 선택한 집에서, 부모님이 꾸며주는 방에서 살았다. 그다음, 돈을 벌어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한 후의 삶은 타인이 만든 것을 확보(구매)하는 삶이었다. 좀 더 좋은 것을 구매하는 삶, 내가 원하는 것과 가장 가까운 것을 구매하는 삶. 그리고 이제는 환경 자체를 내 필요에 맞게 변형하고 설정하는 삶으로의 진입이다. 깰 수 있을지 자신 없던 끝판 왕을 깬 느낌이다. 이제는 주어진 상황에 수긍하고 불편을 감내하며 살 필요가 없다.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고 고치면 되니까.(물론 집주인이 허락하는 선 안에서.)
부엌에 필요한 수납공간을 만들고, 냉장고를 설치하기 위한 공간을 만들고, 아궁이 자리를 수납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나무를 썰어 넣어 박는 것만으로도 비어있던 공간이 쓸모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아무것도 없는 집을 그나마 살만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내 손에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화장실은 누가 설계했는지, 변기와 휴지걸이가 각각 반대편에 설치돼있었다. 볼일을 보고 휴지를 뜯으러 엉거주춤하게 일어나는 모습이 절로 상상됐다. 도대체 이런 구상은 누가 한 걸까. 아무리 내가 살 집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인간적으로 가장 원초적인 일을 곤란하게 하는 이런 설계는 처음 봤다. 돈 없는 사람들은 똥 누고 똥 닦는 것도 불편하게 해야 하는 거냐 싶었다. 그때 낭자가 말했다.
“휴지걸이 옮기자.”
낭자는 드릴을 가져와 나사를 풀어 휴지걸이를 변기 옆 벽면으로 옮겼다. 집주인이 내가 살 집 아니라고 대충 지었으면, 내가 바꾸면 된다. 누가 노가다하는 사람들을 폄하했는가. 세상을 짓고, 쌓고, 뜯고, 만드는 사람들이다. 내 작은 집에서 느꼈다.
+번외 편)
이마트에서 칫솔꽂이를 샀다. 칫솔꽂이는 당연히 배수가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작은 통 안에 계속 물이 쌓여 칫솔 아래쪽이 미끈미끈해지고 곰팡이 냄새가 나곤 했다. 왜 칫솔꽂이를 배수가 안 되는 모양으로 만들어 파는지 화가 났다.
“칫솔꽂이를 다시 사야겠어.”
“뭘 다시 사. 밑을 뚫으면 되지.”
그렇다. 배수가 안 되는 칫솔꽂이를 샀으면, 배수가 되게 하면 된다. 드릴로 9개의 배수 구멍을 뚫었다. 세상에서 정한 제품의 규격에 맞춰 살 필요가 없다는 쾌감이 들었다. 만들어진 세상에서, 내가 만드는 세상으로의 진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