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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Apr 16. 2018

구경할 때 가장 아름다운 툭툭

태국의 교통수단 툭툭 이야기

방콕에 왔다.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공항에 도착한 터라, 공항에서 시내에 위치한 호텔까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지하철은 운행이 종료되었을 테니 영락없이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데, 방콕의 택시가 관광객들에게 악명 높기로 유명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심야시간에 택시 타는 건 무서운데, 낯선 나라에서의 타려니 안 그래도 긴장되는 데다가 호구까지 되면 여행의 시작이 너무 우울할 것 같았다.  미터기를 켜달라고 하자, 어리바리하게 보이지 말자를 되뇌며 수완나품 공항 지하 1층 택시 탑승장으로 갔다. 다행히 내가 해달라는 대로 미터기를 켜준 기사님을 만나서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에 호텔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애당초 방콕에서 많이 돌아다닐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천천히 걸어 다녔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숙소 근처의 사원 구경만으로도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문제는, 태국 오토바이 면허증 발급을 위해서 한국대사관에 가야 하는데, 숙소에서 지하철역까지는 걸어갈 수가 없는 거리라는 점이었다. 공항의 택시보다 시내의 택시는 훨씬 더 내공 있는 흥정 기술과 깡이 필요했기에 우버를 부를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지난해 캄보디아에 갔을 때 탔던 툭툭이 눈에 들어왔다. 캄보디아에서는 나름 저렴한 가격에 잘 이용했던 기억이 나서, 한번 물어나 보자는 마음으로 ○○까지 얼마냐고 했더니, 30밧이라는 것이다. 우버 예상 가격이 150밧 정도였는데 30밧이면 이건 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대화한 기사가 자기 친구를 불러 나를 인계했지만 영어 못하는 기사들을 위해 영어 좀 하는 동료 기사들이 이렇게 손님을 물어다주곤 하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역시 툭툭은 서민의 발이로구나 하면서 굉장히 뿌듯한 마음으로 툭툭 라이딩을 즐겼다.

나라마다 디테일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것이 툭툭입니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30밧을 내미니 돈을 안 받으려 하며 태국말로 화를 내는 것이었다. 영문을 몰라 그저 돈만 내미니 짧은 영어로 300밧을 달라는 것이다. 멀리 왔으니 300밧을 내라며 성을 내는데, 너무 당황한 나머지 나도 같이 거칠게 말했다. 태국에 오기 전, 어떤 사람이 호텔에 녹물이 나와 프런트에 건의했다가 말다툼을 하게 되는 바람에 일이 더 안 풀렸다는 얘기를 본 적이 있다. 그 글에 달린 댓글들에서는, 태국에서는 절대로 화를 내지 말라고 했다. 문제가 있어도 웃으면서 얘기하면 안 될 것도 잘 풀리니 아무리 불쾌해도 웃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조언들을 봤다. 그런데 300밧은 예상을 너무 벗어난 금액이라 웃음 따위 지을 여유가 없었다. 30밧이라고 하지 않았냐고 하니, 됐고 300밧을 내거나 다시 출발지로 돌아가거나 하란다. 300밧이 있었지만, 작은 여자라고 너무한다는 생각에 절대로 300밧은 주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500밧짜리를 뺀 나머지 돈을 모두 꺼내 주었다. 180밧. 이것밖에 없다고, 네가 30밧이라고 해서 탔다는 말을 덧붙이며 그걸 주니 받길래 나도 얼른 돌아섰다. 물론 그 기사는 계속 화를 내고 있었지만 말이다.


남의 나라 거리 한복판에서 그런 실랑이를 하고 나니, 모든 태국 사람이 다 나를 호구로 보는 것만 같이 마음이 쪼그라들었다. 애국심이라고는 별로 없던 나인데, 한국 대사관이라는 한글을 보니 눈물이 핑 돌 정도였다. 마음을 좀 가라앉히고 방콕 툭툭 후기들을 찾아보니 내릴 때 말이 달라진다는 것은 기본이고, 다들 툭툭은 한 번만 타고 안 탄다, 1인당 얼마를 달라고 하는 기사도 있다는 등등 나와 같이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수두룩했다. 경험담들을 토대로 대강의 툭툭 시세를 계산해보니 내가 간 거리에 180밧 정도면 바가지 쓴 가격은 아니었다. 그럼 왜 30밧이라고 말했을까, 여기선 0 하나를 떼고 말하는지, (우리나라에서 간혹 메뉴판에 35000원을 3.5라고 표기하는 것처럼 로컬 표현인가 싶었다), 내가 잘못들은 건지(하지만 정확하게 들었다! Thirty!)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나에게 돈을 뜯어내려고 했다기보다는 일단 타게 만든 다음에 돈을 받아내려는 수작이었던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필이면 숙소 문 바로 앞에서 타는 바람에, 숙소로 돌아갔을 때 다시 마주치면 어떡하지, 해코지하려고 하면 어떡하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고, 만약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냥 100밧을 더 주자는 마음을 먹을 정도로 사건의 후과는 컸다.


간혹 인터넷 커뮤니티에 태국에서 툭툭 기사에게 사기당했다며 하소연하는 글이 올라오면, 태국에 대해 잘 아는 분들은 그걸 왜 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며 타박하듯 말하기도 한다. 툭툭은 관광객들한테 사기 치려는 것일 뿐 매연에 그대로 노출되고 사고 나면 굉장히 위험한 교통수단이라며. 하지만 누가 이럴 줄 알고 탔느냔 말이다. 모르니까 탔지. 툭툭 기사에게 당하는 분들을 보면 아무 생각 없이 탔다기보다는 택시의 바가지를 피하려다 툭툭한테 맞는 경우가 많다. 현지인들조차도 툭툭 기사들은 모두 사기꾼이라고 말하기도 한단다.


방콕에서 치앙마이로 넘어가는 날, 비행기 시간을 착각하는 바람에 그랩 타고 저렴하고 여유롭게 가보려던 계획이 무너지고 앞뒤 잴 것 없이 숙소 앞에 죽치고 있던 택시에 타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딱 봐로 서둘러 공항에 가는 외국인인 나에게 택시기사가 접근해 공항까지 350밧에 간다고 했고, 소심하게 미터기 켜달라고 얘기해봤지만 바로 거절당했다. 하지만 일분이 급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냥 탔다. 이번에도 역시 나와 대화한 기사가 다른 기사에게 나를 인계했고, 출발하자마자 택시기사는 나에게 비행기 시간을 물었다. "오, 촉박하니 고속도로 타야겠어. 고속도로 타면 150밧 더 내야 해. 안 그러면 너 비행기 놓칠 텐데." 예상했던 대로 고속도로 이용료를 달라고 한다. 노를 외치라는 조언을 많이 보았지만, 밀리는 시간에 그럴 깡은 없었다. "그래? 그런데 어떡하지? 나 500밧 없어. 440밧뿐이야." 한국돈 몇천 원 깎으려고 이렇게까지 치사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첫날 공항에서 숙소까지 갔던 돈보다 100밧 이상을 더 내는 건 나 스스로 너무 만만한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 같아 조금이라도 흥정을 했다. 물론 이번에는 웃으면서.


여행 온 데다가, 나한테는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이들에게는 큰 돈일 수도 있으니 기분 좋게 쓰고 가자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나를 만만하게 보는 것 같은 상황에서 '어? 역시 얘 만만하네?'라고 나를 여기게 만들기 싫은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몸집이 작은 여자인 탓에 내가 제일 만만해 보이는 상황을 많이 겪어서 그렇다. 외국에서도 여자라서 무시당하는데, 작은 동양인 여자라서 더 무시당하곤 해서 그렇다. 스무 살 때 고등학생들이 삥 뜯으려고 했던 때부터였던 것 같기도 하다. 툭툭 기사에게 당한 사례들을 봐도, 여자일 경우 더 많이 당하니 조심하라는 댓글이 많았다. 아무튼 그래서 너무 호구가 되지 않지만 너무 야박하지는 않는 선에서 흥정을 하는 나만의 선이 있다.


다시 툭툭 얘기로 돌아와서, 거리를 달리는 툭툭은 동남아 여행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존재다. 하지만 구경할 때 가장 아름다운 존재인 것 같다. 앞으로도 많은 외국인들이 툭툭 기사에게 당하고, 그 돈으로 툭툭 기사들은 삶을 꾸려갈 것이다. 그들의 삶도 결코 넉넉하거나 호화롭지는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양가적인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도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태국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툭툭은 바라만 보시길 권한다. 노천카페나 바에 앉아서. 태국은 충분히 아름다운 나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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