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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Apr 06. 2018

태국에도 곱창구이 있어요

한국 음식과 태국 음식의 싱크로율

하루 간격으로 SNS에 소곱창 먹는 사진이 올라왔다. 한국을 뒤덮은 미세먼지 때문에 텁텁한 목을 내장 기름으로 씻어내고 싶었던 마음들이었을까. 사진만 봐도 자글자글 익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소곱창은 내 미각을 자극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곱창을 먹고 자랐다. 큰엄마가 동대문 근처 시장에서 곱창 장사를 하신 덕에 명절마다 돼지곱창 철판볶음이 상에 올라왔다. 돼지곱창을 씻어내고 요리하는 모습을 어렸을 때부터 봐서 징그럽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단 한 가지 애로사항이 있다면 곱창에 대한 입맛만 까다로워져 돼지곱창을 사 먹었을 때 만족해본 적이 별로 없다는 것.


대학생이 되고 본격적으로 술을 먹으며 술안주의 넓은 세계에 발을 들이고 나서는 가난한 주머니 사정에 무리를 해서라도 주기적으로 소곱창을 사 먹었다. 앞서 말한 대로 돼지곱창은 큰엄마가 해 준 게 제일 맛있으니까. 돈도 없는데 돼지곱창 먹자는 친구들을 기어이 끌고 소곱창 맛집을 찾아다녔다. 처음엔 부담스러운 가격에 다들 놀라지만 한입 먹으면 그런 말이 쏙 들어가는 소곱창. 곱창, 막창, 대창, 염통을 지나 특양구이까지 소 내장은 버릴 것이 없다. 물론 돼지도 어느 하나 버릴 것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맛있으니.


태국 음식 중에는 한국 음식과 비슷한 것들이 많다. 치앙마이에 와서 우연히 여러 식당들이 족발을 삶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신기함과 반가움을 느꼈고, 큰 냄비에 닭들을 푹 고아내는 것을 보며 삼계탕을 떠올렸다. 물론 향신료나 고수와 같은 재료 때문에 조금 맛이 다르긴 하지만, 이렇게 높은 싱크로율을 보여주는 나라는 처음이다. 역시 우리는 국경을 넘어 같은 지구에 살고 있고 먹이가 되는 것들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족발 덮밥

아무튼, 지인들의 SNS에서 소곱창구이 사진을 보고 나도 소곱창이 땡겼던 것은 사실이다. 해외에서는 소주가 너무 비싸서 사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이번에는 좀 흔들렸다. 이와 이렇게 된 거 소주는 못 먹어도 맛있는 맥주는 사 먹자는 마음으로 다양한 생맥주로 유명한 펍에 가서 양껏 마시고 숙소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술이 약간 올라서 한잔 더 하고 싶은데 배는 부르니 마땅한 안주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은 딱 양은 적어도 맛있는 해산물류나 내장류 먹어야 하는 그 느낌인데 말이다. 스시집에서 작은 회 세트나 시켜 먹을까 하고 들어갔는데 이미 마감이라 쓸쓸히 돌아서는 찰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꼬치구이 노점상이었다.

바로 이 꼬치 노점상

꼬치 하나에 10밧. 이거다 싶어서 진열대를 들여다보니 이게 웬걸, 막창이 가지런히 꽂혀있는 게 아닌가. 사장님이 여긴 비프, 이건 치킨, 이쪽은 포크, 저건 스퀴드라며 설명을 해주셨지만 나의 손가락은 딱 막창으로 향했다. 내 손이 가리킨 곳을 본 사장님이 그건 포크의 내장이라며 배를 문지르는 시늉을 하신다. 고기인 줄 알고 시켰다가 낯선 내장이라 당황한 외국인들이 있었나 보다. 하지만 저는 내장이 고픈 사람인 걸요 사장님. 예스, 아이 노우를 외치며 막창을 주문했다. 이 내장은 다른 고기들에 비해 더 슬로우하게 구워한다며 웃어주시는 사장님 덕에 나도 같이 웃어드렸다. 그러믄요 꼬들꼬들하게 부탁합니다.

구워지고 있는 막창(좌측)

10밧을 내고 받아 든 막창 꼬치를 줄어들고 숙소에 가서 맥주랑 같이 먹을까 하다가, 식기 전에 먹고 싶어서 걸어가면서 다 먹어버렸다. 한국에서 먹던 막창 맛 그대로였다. 맛이 어떨지 몰라 한 개만 사봤는데, 내일 또 와서 더 많이 사 먹어야겠다.


막창 꼬치를 사 먹은 이 골목에는 양념돼지구이와 곱창구이로 유명한 집이 있다. 식사시간에 가면 항상 웨이팅 해야 하는 곳이다. 하지만 줄 서지 않아도 충분히 맛있는 식당이 너무 많아서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었다. 그런데 단돈 10밧에 고퀄리티의 막창 꼬치를 먹고 나니 태국의 내장요리에 대한 기대감이 상승해 바로 다음날 점심 대기번호를 받아 들고 웨이팅 줄에 합류했다.

줄 서지 않고는 먹기 힘든 TongTemToh라는 식당
이렇게 바로 야외에서 구워줍니다

이 집의 추천 메뉴는 야외에서 바로 구워주는 돼지구이와 곱창구이, 그리고 돼지고기 카레다. 나는 혼자 갔기 때문에 다 시킬 수는 없어서 돼지구이와 곱창구이를 같이 주는 메뉴에 밥을 추가해서 먹었다.

돼기고기와 곱창구이. 곱이 꽉찬 것이 잘 나오게 찍으려고 노력했다.

안남쌀이 아니었다면 이 곳이 한국인지 태국인지 모를 뻔했다. 곱창구이는 한국 음식일까 태국 음식일까. 사실 니네꺼 우리 꺼 구분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다. 곱창을 먹게 된 것은 우리나라가 가난하던 시절 소나 돼지를 한번 잡으면 내장까지 탈탈 털어 먹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들은 적이 있는데, 태국도 비슷했을까. 시작이야 누가 먼저 했든, 곱창 안의 꽉 찬 곱을 흘리지 않고 구워 먹어야 맛있다는 것은 모두가 똑같이 느끼는 것 같다. 우리는 다 똑같은 사람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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