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반차를 냈다.
정확히 말하면, 반반차.
왜 이 반이나 되는 휴식이
그렇게 소중하게 느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에겐 일종의 특권처럼 여겨지는 시간이다.
병원에 다녀왔다. 어디 아픈 건 아니다.
늘 먹는 약, 늘 가는 병원.
하지만 늘상 다니던 병원이 이전을 했다는 사실은
당일 아침에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확인한 건,
내가 네이버지도 속 파란 선을 따라 걷고 있었을 때였다.
병원은 15분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햇볕은 가차 없었고,
나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나는 계절에
도보 이동이라는 무모한 짓을 감행했다.
걷는 내내, 조금씩 익어갔다.
찜질방 50도 방에 들어온 기분이랄까.
양손에선 땀이 흘렀고, 등짝은 들러붙었으며,
정신은 반쯤 익은 고등어처럼 흐물거렸다.
그리고 드디어 집.
에어컨 앞에 선 그 순간,
나는 냉기를 온몸으로 들이마셨다.
"이래서 사람이 문명을 끊을 수 없지…"
나는 그렇게 혼잣말하며, 부스스 내려앉았다.
출근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남짓.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올바른 사람'일까?
내 안의 도덕 교과서가 말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오늘 하루의 성찰을 하며,
차 한잔에 감사하는 마음을 품어라.”
하지만 현실의 나는
리모컨을 들고 0.3초 만에 넷플릭스를 킨다.
이미 알고 있다.
이건 그냥 도파민 충전소일 뿐이라는 걸.
순간적인 기분 전환, 뇌에 당 떨어졌을 때
퍼붓는 달달한 설탕 같은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단맛을 외면하지 못했다.
드라마는 재미있었다.
그게 문제다.
너무 재밌지만 하루의 끝은 허무하다.
내가 행복하게 보냈던 하루는 언제였지..
기억을 더듬어보면,
그건 의외로 출근해서 열심히 일한 날이었다.
몰입해서 일하고,
그 후 남은 시간에
운동도 하고, 글도 쓰고, 책 한 권 펼쳐본 날.
그렇게 하루를 써내려간 날이
이상하게도 제일 행복했다.
나는, 어쩌면,
'무언가를 해냈다'는 그 작고 하찮은 성취감에
쓸쓸함과 무기력 사이를 버텨왔는지도 모른다.
가끔 허망한 꿈도 꾼다.
고정된 일 4시간,
나만의 일 3시간,
글쓰기 2시간,
운동 2시간,
그리고 남은 시간은 그냥,
에어컨 냉기 속에 누워 드라마를 보는 것.
그런 하루를 상상하며
나는 반반차가 준 소중한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 일터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