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회피하지 않고도 흔들리지 않는 법

by 김나현

요즘은 상처에 대해 예전처럼 경계하지 않게 되었다. 무슨 대단한 깨달음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어느 날 문득, 상처를 피하려고 애쓰는 일 자체가 더 피곤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사람의 마음에는 이상하게도 ‘돌아오는 길’이라는 게 있어서, 피한다고 해서 꼭 피해지는 것도 아니다. 문틈으로 들어온 고양이처럼 조용히 방 안에 앉아 있는 날도 있다.


그래서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기로 했다. 상처를 막기보다, 들어오는 속도를 늦추는 방식 같은 것. 아침에 차를 끓일 때면 물이 데워지는 소리가 괜히 차분하게 들린다. 김이 올라오는 방향을 보고 있으면 마음도 따라 움직인다. 감정이란 것도 뜨거워졌다가 식고, 또 데워졌다가 어딘가로 사라지는 게 아닐까 싶다.


예전에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도 곧바로 흔들렸다. 말의 온도나 그 사람이 어떤 하루를 지나왔는지 같은 건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감정이 먼저 튀어 올라왔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반응한다.
“아, 이런 말이 들어오고 있네.”
그 생각 하나면 순간적인 돌풍 같은 건 금세 잦아든다. 감정이라는 건 사실, 가까이서 보면 더 크게 보일 뿐이다. 약간 거리만 두면 생각보다 작은 녀석이다.


상처를 ‘나’와 동일시하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된다. 상처는 그냥 방문객이다. 문을 두드릴 때도 있고, 뜬금없이 들어올 때도 있다. 하지만 늘 오래 머물 필요는 없다. 차 한 잔이나 얻어마시고 돌아가는 사람처럼 잠깐 있다 가는 존재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뒤로, 저녁 산책길이 조금 달라졌다. 가로등 아래 그림자들이 바람에 따라 미묘하게 흔들린다. 형태는 유지하면서도 천천히 움직이는 모습이 이상하게 나를 편하게 만든다. 흔들리지만 무너지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저런 상태가 아닐까 한다.


상처를 회피하지 않고도 흔들리지 않는 법이란 별다른 기술이 아니다. 조금 늦게 반응하고, 조금 덜 해석하고, 필요 이상의 의미를 붙이지 않는 일. 감정은 대개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정리가 된다. 뜨거운 차가 결국 적당한 온도로 내려앉는 것처럼.


흔들리지 않는 삶이란 흔들림이 없는 삶이 아니라, 흔들림을 통과하고도 중심을 잃지 않는 삶일지도 모른다. 그 중심이라는 게 특별한 건 아니고, 아침의 차향이나 익숙한 음악이나 집으로 돌아가는 밤 공기처럼, 그냥 조용하게 스스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들이다.


상처는 앞으로도 여전히 찾아올 것이다. 그건 인생이 가진 습관 같은 것이라 어쩌기 어렵다. 그래도 괜찮다. 상처가 나를 완전히 쓰러뜨릴 만큼 커다랗지만 않다면, 잠깐 흔들리고 다시 일어나면 된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흔들렸다는 건 지나갔다는 뜻이고, 지나갔다는 건 내가 또 하루를 건너왔다고 말해주는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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