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에게 얼마나 친절한가

by 김나현

요 며칠, 별다른 이유 없이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조용한 시간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라는 게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내가 나를 대하는 방식이 조금 까다롭지 않나’ 하는 것이었다. 심각한 자책이나 거창한 성찰은 아니고, 그냥 스치듯 지나가는데도 이상하게 오래 남는 종류의 생각들이다.


타인에게는 이상할 만큼 관대해지는 편이다. 조금 피곤해 보인다 싶으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싶고, 말투가 날카로워도 그냥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았나 보다 하고 넘긴다. 그런데 정작 나에게는 그런 식의 여유를 거의 주지 않는다. 내 사정은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해서인걸까,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조차 쉽게 나오지 않는다. 알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엄격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예전에 누군가 효능감과 자존감의 차이를 이야기해준 적이 있다. 효능감은 ‘할 수 있다’는 믿음이고, 자존감은 ‘못 해도 괜찮다’는 감각이라고 했다. 설명만 들으면 단순한 구분인데, 막상 나에게 들이대보면 둘 사이 간격이 꽤 멀었다. ‘할 수 있어야 괜찮다’는 쪽에 오래 머물러 있다 보면, 잘 되지 않는 순간이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나 자체의 문제처럼 받아들여지기 쉽다. 그리고 그런 판단은 유독 자기 자신에게만 빠르게 향한다.


생각해보면, 내가 나에게 덜 친절해지는 이유는 대부분 너무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떤 방식으로 흔들리는지, 어떤 상황이 부담되는지, 무슨 말을 듣고 마음이 서늘해지는지. 이런 것들을 너무 정확히 알고 있으니 오히려 더 쉽게 단정해버린다. 가까운 사람에게 필요 이상으로 무심해지는 것과 비슷한 심리다. 너무 잘 알면 설명을 생략하고, 생략이 길어지면 말투는 점점 차가워진다.


그래서 요즘에는 나를 바라보는 방식에 아주 작은 변화를 넣고 있다. 새로운 태도를 만들겠다는 건 아니고, 그냥 조금은 낯선 사람을 대하듯 바라보는 정도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이유를 모두 알지 못하니까 조금 더 살피게 되고,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게 된다. 그 낯섦이 들어오면 이상하게도 호기심이 생기고, 호기심은 판단을 조금 늦춘다. 그 사이에 들어오는 여유만으로도 마음결이 달라질 때가 있다.


친절하다는 건 거창한 감정이 아니라, 어쩌면 그런 상태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바로 해석하지 않고, 바로 결론 내리지 않고,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태도를 잠깐 내려놓는 것. 나라는 사람에 대해 너무 많은 의미를 붙이지 않고, 모르겠는 부분을 그대로 두는 것. 그 정도의 가벼움이라면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일이다.


물론 이런 방식이 내 삶을 크게 바꾸지는 않는다. 다만 스스로에게 덜 까칠해지고, 너무 많은 기대를 걸지 않게 되고, 부족한 날에도 굳이 이유를 찾아 몰아세우지 않게 된다. 그만으로도 하루가 조금은 부드러워진다. 친절이라는 말은 어쩌면 그 정도에 머물러도 괜찮은 말이진 않을가.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타인보다 나를 덜 아는 채로 살아가는 일인듯 싶다. 너무 많이 알면 까다로워지고, 모르면 무심해지니까. 어느 쪽도 완전히 편하진 않다. 그래서 그 중간쯤 조금 알고, 조금 모르는 자리에서 머무르는 일이 필요하다.


요즘 그 정도 거리를 유지해보려고 한다. 나를 완전히 안다고 단정하지도 않고, 전혀 모른다고 외면하지도 않는 자리. 그 자리에서는 이상하게 비난이 잘 나오지 않는다.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결론을 서두를 필요도 없다.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때가 있다.


아마 그게, 내가 나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작은 형태의 친절일지 모른다. 특별한 다짐도, 거창한 위로도 아니고, 그저 너무 많이 알고 있다는 확신을 잠시 내려놓는 일. 그 작은 여백이 마음을 예상보다 부드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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