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30. 나는 32년 9개월의 공직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정년퇴임을 했다. 퇴임하는 날에도 나는 보통 때와 같이 정상 출근하여 정상근무를 했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이곳의 아쉬움에 늦은 시간까지 뒤적거리며 머물다 밤이 되어서야 사무실을 나왔다. 30년 이상을 근무했던 곳이라 너무 깊은 정이 들었기에 쉽게 발걸음을 재촉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다른 어느 퇴임 자들과 달리 퇴임의 요란함을 거부했기에 동료 후배들은 그런 나를 배려한 듯 일찍 사무실을 비워 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 혼자서 이별의 마지막 슬픔을 즐길 수 있었던 것 같다. 밖은 이미 어둠으로 온 세상을 삼키고 있었다. 평소에는 당연하듯이 보아왔던 사무실 앞 주차장의 외등도 오늘따라 너무 처량하게 보였고 혼자 남은 내 모습과 너무 흡사하였다. 그 외등은 그 많은 시간을 아무도 없는 텅 빈 주차장에서 홀로 아침까지 매일 밤을 지새웠을 것이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밤이 되면 홀로 서있을 그 외등처럼 나도 이제 내 주변에 아무도 없는 외로운 외등이 되어 버린 듯했다. 젊음을 모두 불사른 정들었던 직장을 뒤로하고 메이는 가슴을 휘어잡고 혼자서 쓸쓸히 그 사무실을 떠나 온지도 벌써 어연 8년이 다 되어 간다.
퇴임 후 나는 너무도 낯 서른 새로운 환경에 빠른 시간 내에 아주 심한 슬럼프에 빠져 들었고, 그 고통의 슬럼프에서 더 이상 벗어날 것 같지가 않았다. 이대로 죽는 것인가? 그 많았던 지인들의 전화도 어느 날부터인가 서서히 하나둘씩 끊어지더니 얼마 안 되어 완전 단절되었고, 찾아오는 지인들 역시도 이미 발길이 끊어진 지 아득할 정도로 오래되었다. 이제 홀로 덩그렇게 허허벌판에 홀로 내 팽겨진 꼴이 되었다. 울어도 슬퍼도 이제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내 동료들의 곁 그리고 사무실, 생각할수록 그 슬픔과 삶에 대한 회의가 전신을 꽁꽁 묶였는데 무상한 세월은 쉬지도 않고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빠르게도 흘러가고 있었다.
이렇게 나는 퇴임 후 한 동안 영혼 없는 목석이 되어 죽음을 향해 쉼 없이 떠밀려가고 있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끝없는 어둠의 긴 터널 속에서 헤어날 수 없는 폐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비참한 비극의 시간이 나에게까지 올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나는 재직 시 그 누구보다도 이런 비극을 대비한 준비를 오래도록 철저히 했었다. 그럼에도 기어코 나에게도 예외 없이 오고야 만 것이다. 도저히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이 어둠의 비참한 시간들… 그래도 나는 혹시 이런 시간들이 올 줄 모를 비극의 시간들을 비켜 나가고자 남들 등산가고 여행 갈 때 죽어라 공부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까지 취득하여 단단한 노후 대비 준비를 했었다. 그러나 정년 60이라는 고령의 나이는 냉혹한 현실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게다가 30년 이상의 공직생활에서의 생활습관은 일반사회에서의 새로운 환경에서의 적응은 거의 불가능했다. 간혹 일자리가 있어서 일을 하려 해도 오랜 기간 동안의 공공기관에서의 주종관계와 전혀 다른 형태의 개인에서의 주종관계에서 발생하는 낯 서른 환경에 견디어 내지를 못하고 바로 중도 포기하는 일이 빈번하여 결국 더 이상의 개인 고용주로부터의 일자리 찾기를 포기하였다.
그래서 앞으로 더 살아야 하는 남은 세월은 끝이 보이지 않는데 현재의 난공불락의 난제 해결은 거의 불능 상태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러나 이대로 주저앉을 수도 없었고 죽을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해결의 실마리는 좀처럼 풀릴지 않은 채 하루의 삶은 말로만 들었던 지옥의 삶이 되고 있었다. 그냥 연금으로 마냥 죽을 때까지 먹고 자고 아무런 목적 없는 무가치한 삶은 나로 하여금 더욱 고통의 도가니로 내몰고 있었다.
퇴임 후 노후를 위한 재직 시 황금 같은 연휴까지 불사르며 공부하여 몇 개의 국가자격증도 취득하였지만 이 모두 개인에게 고용되어야 사용할 수 있었고, 고용은 고령이라는 나이에 부딪쳐 더 이상 쓸모없는 자격증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연령이 그리 장애가 되지 않는 박사라는 학위로 전공을 살려 대학 강사 또는 학원 강사를 알아봤지만 역시 고용은 가능했지만 점점 들어가는 나이 65세를 넘어가면 이젠 이런 일자리들마저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그렇다면 70살 80살까지 일할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찾아야 했고 그런 자리는 더 나이를 먹기 전에 지금 당장 찾아야 했다. 이유는 여기서 더 나이를 먹으면 기억력 감퇴 등으로 자격취득을 위한 공부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찾은 것이 개인 사무실을 운영할 수 있는 정년 없는 국가전문자격증이었다. 이 자격증을 취득하면 개업에 비용도 거의 들지 않고 들어도 회수가 가능한 비용이고 나이에 관계없이 수입을 올릴 수 있고, 누구에게 고용되어 생소한 개인적 주종관계에서 견디지 않아도 되는 아주 큰 장점이 있었다. 이 자격증은 지금 종류를 공개할 수는 없다. 1차와 2차로 구분하여 검정하는 국가자격시험으로 나는 이미 두 번을 응시하였지만 모두 실패를 했다.
이제 곧 세 번째 도전한다. 추정해 보컨대 세 번째는 아마 반드시 합격을 하리라 본다. 합격하면 이 자격증의 종류를 공개함을 약속한다. 이 자격증은 우리 퇴직 공무원들에게 가장 어울리고 평생 고수익도 보장되는 그런 자격증이다. 1차는 누구나 독학으로 가능하다. 그러나 2차는 반드시 전문 강사의 도움을 받아야만 합격가능한 시험이다. 그 전문 강사가 바로 내가 되어 퇴임하여 갈피를 못 잡고 무료한 시간만 보내고 있는 희망 잃은 우리 퇴직자들을 위해 무료 봉사를 하기 위해 나는 단순 합격 점수를 넘어 이 시험의 2차 시험 전문 강사를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 공무원 수준 정도라면 전원 합격을 확신한다.
나는 퇴임 후 이제 곧 2년이 다 되어 간다. 8년 동안 되돌아보면 이룬 성과는 하나도 없다. 두 번의 시험실패 그러나 이제 곧 3번째 시험에서의 합격을 확신한다. 만약 이번 시험이 잘 되어 나의 평생직장이 되는 개인사무실을 가지게 된다면 지난 8년이 너무 지루했고, 너무 고통스러웠지만 말끔하게 씻어버리고 힘찬 새로운 미래를 가질 것이다. 사람들은 배는 고파도 잠은 좀 못 자도 희망이 있어야 현재의 삶이 행복해지리라 이번 경험으로 느꼈다.
주변에서 흔히 사람들이 말하기를 지난날이 고생했지만 그래도 그때가 가장 좋았다고들 한다. 이것은 그때는 고생은 하고 있었지만 오늘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희망? 인간들에게 반드시 품어야 할 필요한 삶의 목적이고 그 목적이 바로 행복이다. 그 희망이 성공을 하던 실패를 하던 희망이 있는 삶은 모두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공직 생활 32년 9개월을 한 후 퇴직 당시 공직 생활에서 발생했던 모든 채무를 변제하고 난 후 나에게 남은 것은 연금 수급증과 통장에 2,000만 원 정도의 현금, 그리고 전세보증금 800만 원 마티즈 2009년 산 한 대, 법학박사 학위증이 모든 재산이었다. 나에게만은 절대 이런 암흑의 날이 오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나에도 여지없이 오고야 말았던 퇴임 후의 처참함, 공직생활 32년 9개월을 했지만 너무 빈약하게 결말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 우리들 모든 공직자들의 서글픔이다.
그래서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미래는 깜깜했고, 깜깜하다 못해 아예 막장으로 밀어 넣고 있었던 것이다. 봄날의 향기는 재직 시에는 바빠서 볼 수 없었고, 퇴임 후에는 생활이 어려워 볼 수가 없었다. 지금 가변의 만발한 단풍은 태양처럼 그 요염한 자태를 뽐냈지만 나는 그 단풍을 볼 수가 없었고 보이지도 않았다. 희망 없는 삶을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들에게 희망은 삶의 모두라 해도 과언이 아닐까 싶다. 희망이 있어야 아무리 아픈 고통도 견디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퇴임 후 희망 없는 삶으로 고통에 시달렸던 나는 새로운 직장을 얻는다는 벅찬 마음으로 좁은 두 평 남짓 좁은 골방에서 하루 17시간의 시험공부에 여념이 없다. 책을 씹어라, 그리고 삼켜라. 그러다 쓰러져도 후회는 없다. 희망 있는 시간이어서 행복했기 때문이다.라는 각오로 희망을 향해 전력을 다 하고 있다.
나는 지금 너무 행복하다. 고령의 퇴직자에게도 아직 할 수 있는 게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이번 시험에 합격하면 다음 시험으로 바로 시작할 새로운 희망을 계획하고 있다. 나이 때문에 기억이 없다 하지 말고, 이제 뭘 또 고생하려고 하지 마라. 아직 살려면 살아온 시간보다 더 많은 삶을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죽어야 죽는 것이지, 죽지 않았으면 살아 있는 것이고, 살아 있으면 희망이 있어야 행복해질 수 있다. 준비하는 자는 행복이라는 희망이 있지만, 준비하지 않으면 행복이라는 희망이 없을 것이다. 이게 행복일 것 같다. 희망은 곧 삶의 행복이고, 희망이 없는 것은 삶의 불행이다. 희망이 없는 것이 바로 우리들을 고통의 긴 터널로 내몰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희망을 가지자. 그래야 살아있는 동안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다. 우리들은 아직 살아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