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수많은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때마다 이 번 만은 이 번 만은 아마 극복이 힘들 것이다.라고 체념을 하게 된다.
그 체념의 최후 카드가 극단적 선택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떠나갔고 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좀 더 생각해 보지 아니면 그럴 용기로 살아보면 무슨 일이든 극복할 수 있을 턴데.. 그러나 나에게도 막상 그런 상황이 오게 된다면 그런 생각들이 싹없어지게 된다. 누구나 한 번쯤 아니면 여러 번 겪어 봤을 경험들이다.
직접 처해보지 아니하고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위기의 상황들 시험에 실패하고, 취업에 실패하고, 사랑에 실패하고 사업에 실패하고, 그 사유는 천차만별이다. 그때마다 우리들은 최후 수단으로 극단적 판단을 생각하게 한다. 그게 최후의 마지막 해결책으로 보기 때문이다.
차라리 보지 않으려고 아니 더 이상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보지도 겪지도 않을 수 있는 고통을 벗어나는 최후의 유일한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살아있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겉모습과는 달리 누군가가 또 극단적 판단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것은 내가 처한 현재의 어려운 처지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극단의 시련, 어제까지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시련 다른 사람들에게만 있을 줄 알았던 시련 죽지 않으면 도저히 더 이상의 다른 방법이 없는 일촉즉발의 어려운 난관, 자식도, 부모도, 연인도 친구도 보이지 않는 죽음 직전의 문턱에 선 사람들, 모든 시련은 그렇게 사람들을 혼자로 만들게 된다.
그렇게 그렇게 혼자서 생과 사의 사선에 서서 고뇌하다가 요행히 그 순간의 사선을 벗어나게 되면 시련은 다시 새로운 삶으로 극복하게 된다.
이렇게 사람들은 시련의 난관에 서서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살아간다.
시련 중에서 가장 끈 시련은 생업과 관련된 시련이다. 오랜 일터를 예고 없이 어느 날 갑자기 구조조정으로 퇴출된 사람들 아직 준비가 덜 된 상태의 가장 때문에 전 가족들의 생계를 위협하며 길바닥으로 내 몰린 가족들의 비참함, 앞이 보이지 않는 가장의 비통이 또다시 죽음으로 내 몰고 있는 시련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그 어떠한 시련이 온다 해도 지금껏 잘 견디고 살아왔듯이 반드시 극복되는 것이 또한 시련이다. 비 온 뒤 땅이 더욱 다져지듯이 시련 역시 그 비와 다른 것이 아닐 것이다.. 이번의 시련도 그렇게 극복해야 된다. 사는 동안 수없이 다가 올 시련 앞에서 올 때마다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견디고 참으면 반드시 극복되는 게 또한 시련이다.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시련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사는 것이 시련을 이기는 것이다. 우리 부모님들 형제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 모두 시련을 극복했기에 살아 있는 것이다. 살자 그래서 반드시 시련을 이기자. 시련은 살아있는 동안 평생 함께 가야 할 동반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