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가진 자 잘 된 자들을 미워하고 시기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그 길을 가려하려 하고 있고 또 그 길을 향해 열심히 가고 있다. 이 길을 거부하는 자들은 아무도 없다.
나 보다 나은 자들을 비판하고 비웃는다. 그러나 나 보다 못한 자들은 불쌍히 여기고 도와 주려하고 동정을 한다. 그러나 잘 되면 반드시 떨어지고 떠지면 또 오르려고 한다. 살아 있는 이상 이러한 것은 계속되며 올라가면 다른 이는 떨어져도 나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리라 믿는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이의 떨어짐을 나에는 예외라 믿는다. 음식도 맛있는 것부터 먹고 물건도 좋은 것부터 고른다. 인간의 본능이다. 본능은 절대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다. 이를 믿어야 하는데 이를 믿으려 하지 않는 것 때문에 불운이 생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진 자 잘 된 자들을 미워하고 시기하면서도 자신은 그 길을 가려고 모든 것을 건다. 모든 사람들의 미움과 증오를 받는 그곳을 왜 사람들은 가려하는 걸까?
그것은 자신을 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은 보지 않으면서 남 것만 보고 본받으려 하고 부러워하고 가지려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 또한 보지 않으려 한다. 물러서려 하지도 않는다. 오직 앞으로만 가려하기 때문이다.
가고 오고는 반대반이다. 이는 모든 자연의 이치에 따라 균형점을 향해 가고 오고 하는 것이다. 이게 자연의 이치이고, 인간은 물론 모든 생물체의 본능이다. 흔히 생물과 무생물로 구분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생물이다. 즉 살아 있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살아 있음의 증명은 모두가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는가? 바위도 늦지만 변 한다. 이를 흔히 풍화작용이라 하는데 그렇다면 풍화작용은 무생물의 변화현상이란 말인가? 아니다, 풍화작용 역시 생물체의 움직임의 결과라 본다.
인간도 반드시 죽는다. 그렇다면 인간은 처음 어디에서 왔단 말인가. 어디서 온지도 모르면서 모든 오랜 역사 속의 종교에서 그 증명을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하고 화두로 남긴 체 현재까지도 여러 가지 설로 의문을 품고 있다. 왜냐하면 보이는 것으로만 증명하려 하기 때문이다.
생물체는 보이는 것으로 존재할 수 있고, 보이지 않는 형태로도 존재할 수 있다. 그 증명은 간단하다. 이 세상 모든 생물체는 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는 것이 그 증명이 되는 것이다. 즉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어두운 곳과 발은 곳 태어남은 죽어야 한다.
이러한 자연의 계속적인 연속을 볼 때 이 세상 모든 물체는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반복된다는 것이지 없어지거나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수천 년 수억 년 동안 이 땅의 생물체가 사라지질 않고 계속적으로 존재하여 왔다는 것이다. 일부 과학적인 증거가 이를 증명한다. 공간 불변의 법칙이 있다. 1 그램의 보이는 물체 즉 물이 있다고 하자 이에 열을 가하면 보이지 않는 보이지 않는 공기로 변하고 다시 냉기를 가하면 보이는 물체인 물로 나타나며 그 양은 전혀 변화가 없다는 것이 이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디서 온 게 아니고 원래 그곳에 있었던 하나의 물체였고 반대반의 이치에 대입하면 살아있는 보이는 현재에서 죽으면 다시 보이지 않는 형태로 변했다가 다시 보이는 현재의 형태로 돌아온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러한 형태 작용으로 영원히 반복된다는 것이 수억 년 동안 이 땅의 생물체의 존속이 증명을 하는 것이다.
없어진다는 원리는 없어지면 더 이상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없어진 것이 다시 어디선가 모르지만 다시 시작되어 현재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현대 과학으로 보아도 집을 지어도 자재가 있어야 집을 짓는다. 무언가 있어야 집이 나온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공기 가지고는 집을 지을 수 없다. 이는 즉 인간 역시 모든 생물체처럼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만들어지질 않는다는 것이다. 무언가 있었기 때문에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의 증명은 아직 과학도 증명 못하고 있고 종교 역시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증명은 현재가 반복된다는 것이 이의 증명이다.
반대반 이치에 의하면 인간을 예를 들면 보이는 인간 반에서 보이지 않는 인간 반으로 영구적으로 반복된다는 것이다. 살아 있으면 보이는 인간 반 죽으면 보이지 않는 반으로 여전히 생존한다는 것이다. 바람도 보이지 않고 전파도 보이지 않고, 공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은 보이는 현상에 반드시 필요한 물체이다. 서로 의존하며 존재한다는 것이다. 100킬로의 인간도 죽으면 화장하여 가루로 만들면 더 세월이 흐르면 한 줌의 흙 아니 더 생월이 흐르면 보이지도 않을 한 알의 공기의 작은 알맹이가 된다. 또 시작은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난자와 정자의 만남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이는 100킬로의 거구 형태로 변해간다. 이게 바로 모든 생물체는 변화는 하지만 존재 자체는 끝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