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로 가는 노승

by 묵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인생행로는 때로는 쉽고 때로는 어려운 일을 겪으며 살아가게 된다. 가족을 위해 또는 자신을 위해 평생 동안 직장을 가져야 하고 그 직장에서 젊음의 모든 시간을 보내야 한다.

취업을 하고 승진을 하게 되면 좋아했다가 낙방을 하거나 탈락을 하게 되면 기분이 나쁘거나 실망의 쓰라림을 겪어야 한다. 그래서 온 갓 핑계의 술잔으로 오늘도 한잔 내일도 한잔 하다가 어느 듯 젊었던 시절을 다보내고 나아감을 멈추는 슬픔의 정년을 맞이하게 된다.

남 일만 같았던 정년을 막상 자신이 당사자가 되어 자신의 눈앞에 다가오면 그렇게 귀찮게 여겼던 직장도 그리움에 복받쳐 목이 메어 온다. 엊그제 들어와 천지를 모르고 날 뛰어다녔던 직장도 무섭게 흘러버린 세월 속에 묻힌 채 이제 나를 내밀치려 한다.

너무나 황당하다. 억울하다. 그리고 나의 삶이 너무 허무하다. 나는 누구인가? 대체 내가 누구이기에 이제 와서 그동안 몰랐던 나를 알려하는가? 얼마 전에 오지의 한 산에서 우연히 등산을 하다가 산으로 들어가는 어느 한 노승을 만났다.


그 노승은 속세 나이 일흔을 넘겼단다. 불가에 입문한 지 50년이 지나 요즘 새로운 화두를 가지고 수양의 길로 다시 들어섰다는 것이다. 새로운 화두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모두 부질없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얼핏 들어보아 흔히 불가에서 사용하는 흔한 말들인 것 같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흔히 우리들이 알고 있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모두 부질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믿으려 하지 않았고 그러다가 지금까지 오랜 세월 동안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괜히 머물다가 이제야 이를 깨닫고 새로운 수양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우리 보통 사람들은 바르지 않음을 알면서 바르지 않음을 감수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이는 그 영향이 당장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가벼이 여기다가 돌이킬 수 없는 큰 화를 당하게 되고 반드시 당한다. 이의 당함은 절대 예외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의 이치는 절대 예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바르지 못했던 잘못은 수양으로 상계를 하기 위한 실천을 해야 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일정한 고정불변의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래서 그 정해진 운명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언 듯 보기에는 황당한 것 같지만 이는 분명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진리이다.

자연의 법칙이 예외가 없듯이 자연의 일부인 우리 인간들도 역시 절대 예외가 없다. 물론 변한 것도 있다.라는 반문을 하겠지만 그 변함은 본질이 아니라 순간 변함에 불과한 것일 뿐이다. 이를 입증하는 것이 사람은 생물이고 생물은 자연이기 때문에 누구나 절대로 예외 없이 반드시 죽고, 겉모습으로 보아 멀쩡한 사람도 어느 날 급사하는가 하면 겉모습으로 보아 비실비실 하면서도 오랫동안 장수하는 사람도 많다. 이는 겉은 잠시 변할 수 있어도 속인 본질의 이치는 절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자연의 이치는 아무리 감추어도 절대 예외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직 오지 않았다고 하여 오지 않을 것이라는 요행의 생각은 곧 어리석음이었음을 알게 된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 했다. 이 말 뜻은 현재만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어느 만물보다 더 멀리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 것이다. 현재도 중요하다. 그러나 내일도 중요한 것이고 어제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는 어제에서 연계된 존속이 있어야 가능하고 오늘은 내일을 연계하는 존속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중요도를 고르게 같게 했을 때 사람들은 태어남의 운명을 현재도 앞으로도 고르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수도승들은 보통사람들의 생각인 부귀영화를 마다하고 속세를 떠나 고행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이들도 처음에는 우리 같이 보통 인간으로 태어나 함께 길을 갔을 것이다. 그러다가 보통사람들이 느끼지 못한 무언가를 먼저 느꼈기 때문에 고행의 산중을 택했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이상히 여길지 모르지만 그들은 우리들을 용서한다. 그들은 우리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우리와 같은 길을 걸었음이다. 우리들의 길이 바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은 그 길을 택한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자연의 통제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우리들은 자연의 한 구성물이기에 그 자연의 원칙에 복종을 해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그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예외 없이 치러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자연의 원칙을 벗어나려 하고 벗어나면 그에 따른 응분의 대가를 치르면서도 그에 대한 대가로 보지 않으려 한다. 이유는 그에 대가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났기에 나에게 온 갓 문제가 시작되었고 그 문제의 결과는 반드시 예외 없이 나에게 돌아옴에도 이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 정년퇴임만 하면 무언가가 새로운 것들이 나에게 다가오리라 기대하지만 이를 미리 준비하지 않은 이상 절대 새로운 기대는 없다.

이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이는 절대 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정년퇴임 후 곧 죽거나 어떻게 될 줄 알지만 평균 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최소 90살을 산다고 할 때 앞으로 30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늘만 바라보며 누군가 아니면 자식들이 아니면 그까짓 어떻게 되겠지 뭐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 살고 싶고 아프면 아플수록 더 살고 싶다.

하늘만 바라보며 최소한의 의식주로 생계를 이를 것인가? 그렇다고 퇴임자들에게 퇴직 연금을 듬뿍 줄 리도 만부당할 일이다. 길은 하나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오직 한 길 노력한 만큼 결과를 얻으려는 바른 마음으로 실천의 수행을 미리미리 준비해야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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