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찬양 끝날 때 까지만

by 박진현

1월1일 아침 6시.

나는 먼저 일어나서 옷을 입었다.

혹시 모르니(뭘 혹시 몰라...)양치질도 하고 세수도 하고 머리고 감았다.

나는 완전 실용주의라서 옷차림은 보온만 신경을 썼다.

골키퍼장갑, 비니, 패딩, 목도리. 완전 무장을 했다.

옷을 다 입고 물을 한 잔 마시려고 일어설 때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저 주차장이에요."


"금방 내려갈게요!"


그녀는 정말 시간을 맞춰서 도착했다. 어쩌면 그녀와의 정상적인 첫 데이트가 아닐까 싶다.

썸타면서 정상적인 첫 데이트로 1월1일 일출을 보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것도 여자가 새벽부터 집 앞까지 데리러 오는 남자는 얼마나 있을까?


"정말 시간 맞춰서 오셨네요? 힘드시겠다"


"괜찮아요. 뭐 이 시간에 움직이는 건 익숙해서..."


"대단한데요. 잠수교로 가시면 돼요. 거기에 사람은 엄청 많을텐데 찾아보면 주차할 곳은 있을거에요"


우린 그렇게 잠수교로 갔다. 다행히 주차할 곳이 있었다.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려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참고로 나는 딱 계란 한 판이 되는 첫 날이었다. 30살... 나에게는 1월1일이 굉장히 뜻깊은 날이었다. 지난 20대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30대를 준비하는 첫 날이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결혼이 몹시 마려웠다. 그런 나의 옆에는 결혼할지도 모르는 아주 좋은 여성이 함께 있었다. 멋쩍게 사진도 서로 찍어주고 수줍게 브이를 하면서 우리는 1월1일 첫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근데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뜨는 것이 아닌가? 이상했다.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갈 리가 없었다. 나와 그녀는 이상함을 감지했다.


"아!? 저희가 있는 자리가 안 보이는 자리였네요. 벌써 다 떴네요..."


그녀가 옆으로 세 걸음 정도 가서 보더니 외쳤다.

나는 얼른 해를 보면서 눈을 감고 다짐했다.


'나는 올해 결혼한다'


그렇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참고로 나의 상황을 적어보자면 이렇다.


정말이지 돈이 한 푼도 없었다.

직장은 있었지만 모아둔 돈은 단 한 푼도 없었다. 얼마전까지 모아둔 돈이 있었는데 전부 부모님 치료로 써버렸다. 부모님은 보험금을 받으면 바로 주신다고 했지만 일언반구도 없었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돈을 달라고 말할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정말 땡전 한 푼도 없었다. 그렇다면 부모님은? 당연히. 돈이 있는 사람들이 치아 치료비용을 자녀에게 달라고 했을까. 그렇다. 우리 집은 가난 그 자체의 집구석이었다. 결혼할 때 부모님께 단 한 푼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부모님이 다 해줘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에게 해달라고 말 할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녀와의 관계는? 이제 막 만나서 아직 사귀지도 않는 사이였다. 당연히 그녀의 부모님과도 정식적으로 인사를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 그녀는? 그녀도 부유한 집은 아니었다. 그녀도 결혼할 때 그녀의 부모님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말했다.


즉 한마디로 내가 올해 안에 결혼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무리였다. 그러나 나는 다짐했고 그런 현실적인 상황을 알면서도 이루겠다고 다짐을 했다. 인간은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고자 하면 '무조건' 해결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방법은 중요하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었다. 지금부터 돈을 모으면 그 뿐이고 모인 돈에 맞게 결혼을 하면 될 일이었다.


그녀와 나는 각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생각의 시간을 가지고 다시 차에 올랐다.


"밥 먹으러 가요. 제가 봐둔 국밥집이 있어요."


그녀는 순대국을 좋아했다. 일찍 일어나는 것도 힘들었을텐데 그 사이에 어디에서 밥을 먹을지도 알아봤다고 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좋아요! 가요! 제가 살게요"


"그럼 커피는 제가 살게요"


"그래요"


우리는 교대역 근처 24시 국밥집에서 밥을 먹고 그 앞에 있는 카페에 갔다. 카페에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9시가 되었다.


"저 근데 이제 가야돼요. 오늘 쉬는 날이라서 엄마랑 영화보기로 했어요"


"아 그럼 일어나요!"


그녀는 엄마를 챙기는 아주 효녀였다. 카페에서 나와서 차로 향하는데 갑자기 그녀가 뒤에서 뛰어오더니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손을 잡는 것으로 설렐 나이가 아님에도 내 가슴은 설레고 뛰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그녀도 쑥쓰러웠는지 이상하게 걸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그 쑥쓰러워하는 모습도 예뻤다. 차에 타서 나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먼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집으로 향하는 짧은 10분의 시간동안 우리는 손을 잡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에서는 그저 잔잔한 찬양만이 흐를 뿐이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설레고 행복한 순간은 아주 빨리 지나간다. 1분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제 그녀를 보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내가 먼저 손을 놓으려고 했다. 근데 그때 그녀가 놓으려는 내 손을 꽉 쥐며 말했다.


"이 찬양 끝날 때까지만"


이 한 마디가 얼마나 설레고 심쿵하던지. 그때 나는 마음을 먹었다.


오늘 내가 고백하기로.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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