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도 찬양은 빨리 흘러갔다.
"이제 가셔야 하겠네요..."
"네... 간간히 연락드릴게요"
"조심히가세요."
"네 들어가세요."
운전석 창문 너머로 손을 흔들고 그녀의 차는 점점 작아져갔다.
나는 오늘 고백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녀의 손을 잡는 순간 내 심장박동으로 내 마음을 확실하게 확인했고 더 이상 미룰 필요도 근거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방법이었다. 나는 서프라이즈로 고백을 하고 싶었다. 어디서 어떻게 해야 서프라이즈로 감동을 주면서 고백할 수 있을까? 꽃다발은 너무 진부하고 전화? 문자? 카톡? 아니었다. 직접 얼굴을 보고 고백하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직접 얼굴을 보고 고백하는 것은 너무 오랜만이었다. 대체로 알던 사람과 연애를 했던 나이기에 더욱 힘든 일이었다. 알던 사람에게 고백을 한다는 것은 그냥 장난치듯이, 장난치듯 진지함을 한 스푼 섞어서 고백하면 될 일이었지만 그녀와의 관계는 사뭇달랐다. 장난을 섞으면 될 일도 안 될 것 같았다. 집에 누워서 고민하던 끝에 방법을 생각했다. 저녁에 내가 그녀의 집 앞으로 가서 불러서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듯 걸으면서 고백하기로. 일단 그녀의 집을 알아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관문이었다. 물어보면 될 일이지만 그러면 수상하고 서프라이즈가 아니니까. 어제 집을 알아내기 위해서 집까지 바래다주었건만... 도착해보니 아파트였고 그녀는 입구에서 내려달라고 요청했고 나는 그것을 거절할 명분을 찾지 못했다. 그 수많은 건물 중에 어떤 건물이 그녀가 사는 곳인지 맞출 수가 없었다. 나는 머리를 짜내었다. 그러던 중 그녀가 했던 말들이 머리를 스쳤다.
"와 오늘 노을이 너무 예뻐요."
"집에서 노을이 보이시나봐요?"
"아니요. 집 안에서 보이는 건 아니고 문 열고 나오면 보여요"
"부럽다. 우리집은 원룸인데 앞 건물 때문에 해도 안 들고 노을도 안 보여요. 남향인데...사실상 북향보다 못한 남향이에요"
그녀는 노을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매번 그녀는 노을진 하늘을 볼 때마다 감탄을 하며 사진을 찍었다. 흐린 날의 노을, 맑은 날의 노을, 흐린 날의 노을은 어두운 구름 사이로 비치는 붉은 빛이 멋있어서 좋았고 맑은 날의 노을은 맑아서 좋다고 했다. 나는 얼른 네이버지도를 켜서 그녀의 아파트를 검색했다. 서향이라는 힌트를 통해서 추려보니 아뿔싸... 서향인 건물이 꽤나 많은데 중요한 것은 주공아파트 특성상 서향이 아니라도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면 노을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 다른 힌트는 뭐가 있을까... 나는 카톡을 뒤졌다. 카톡을 뒤지던 중 굉장한 힌트를 발견했다. 바로 집에서 교회가 보인다는 것이었다. 나는 얼른 네이버지도에 들어가서 봤다. 다행히도 집 베란다에서 교회가 바로 보이는 건물은 몇개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건물들은 다 모여 있어서 그쪽 단지 앞에 주차를 하면 될 일이었다. 사실 이런 고민들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집으로 들어갈 것이 아니라면 그냥 아파트 입구로 가서 전화해서 말하면 될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멍청했다. 하지만 그때는 그게 중요했나보다. 전날 밤 늦게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그런지 피곤이 몰려왔고 OTT를 보면서 나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고 보니 오후 2시. 늦은 점심을 먹고 잠깐 OTT를 보니 금방 시간이 6시가 되었다.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저 이제 엄마 데려다주고 집에 도착했어요."
"어머니와 함께 사시는 거 아니었어요?"
"네 맞는데 집 엘레베이터가 공사 중이라서 당분간 계단을 이용해야 해서요."
"아... "
"저는 이제 집에 와서 저녁 먹기 전에 나가서 조금 뛸려고요"
"네...네!? 몇시에요?"
"조금만 쉬다가요? 한 시간쯤 뒤에? 근데 왜요?"
"아아니에요. 저는 목욕탕 가려고요"
"언제요?"
"지금요."
"그럼 나중에 저도 집에 들어오고 목욕탕도 다녀오시면 그때 전화해요"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얼른 씻었다. 그리고 얼른 머리를 만지고 옷을 입었다. 한시간 안에 그녀의 집 앞으로 가야 한다. 아차차 근데 뭐라고 말하면서 고백을 하지? 아니다. 그건 가면서 생각해도 늦지 않다. 나는 내 머리를 믿으니까. 그리고는 차에 타자마자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그리고 뭐라고 말하면서 고백을 할지 고민했다. 불행히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쌈박한 멘트가 떠오르지 않는다.. 젠장... 본질적으로 생각해보자.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뭐지? 고백의 목적이 뭐지?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말을 하는가가 아니라 그녀에게서 동의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그게 고백의 목적이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그래요!'였다. 그럼 내 입에서 나갈 말은? 고백이잖아... 똑같잖아... 뭐가 본질적이야... '우리 오늘부터 1일할까요?' 초딩이냐고... 오늘부터 나이 30살인데 무슨 1일이야... '우리 사귈까요?' 이상하게도 사귄다는 표현이 낯설어졌음을 느꼈다. 20대에는 괜찮았는데 30대가 되니 사귀자고 말하고 사귀는 것이 낯설었다. 그렇다고 썸타다가 갑자기 '우리 사귀고 있는거 아니었어?'라고 말하는 것도 웃겼다. 그래 예의있게 가자. '저와 사귀어주실 수 있으세요?' 구걸하냐고... 조금 더 다듬자. '우리 사귈까요?' 그래 이걸로 가자. 좋다. 좋긴 뭐가? 고민을 한 것이 무색할만큼 형편없는 고백멘트가 나왔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다. 이게 최선이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그녀의 집이 보였다. 주차를 하고 앉아서 호흡을 가다듬고 전화를 걸었다.
"어!? 목욕탕 아니세요?"
"네 사실은 지금 땡땡아파트 주차장이에요"
"네!? 우리집이요?"
"네... 지금 잠깐 볼 수 있어요?"
"내려갈게요. 안 그래도 지금 막 옷 다 입고 내려가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