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사 직원 최대의 장점은 원하는 만큼 비행기를 저렴하게 탈 수 있다는 것이다. 단, 자리가 남는다면 말이다.
때는 22년 12월 23일,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둔 금요일 밤, 모든 한국인이 연말 휴가를 보내기 위해 공항으로 모여드는 황금연휴에 대기표를 가진 내가 비행기를 타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총 3자리 (남편, 나, 첫째+ 그리고 좌석을 점유하지 않는 18개월 둘째까지) 안되면 뭐, 돌아가지 라고 태연히 말했지만 이미 내 맘은 시드니에서 페리를 타고 오페라하우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 아는 선배가 카운터에 있길래 '선배.. 나 오늘 탈 수 있어..?' 씨익 불쌍하게 웃어봤다. 왜, 불쌍한 사람이 웃으면 더 잘해주지 않겠나 하는 불순한 의도였지만. 하지만 나 같은 자를 수없이 본 그녀는 차갑게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리더니 한마디 했다 "너.. 비행기 못 탈 거 같은데..? 심지어 니 위에도 대기자 몇 명 더 있어. 오늘 같은 날, 너.. 용감하다?"
'제길'
하필 내가 대기순위가 1번도 아니었다. 어떤 항공사는 입사순으로 대기순이 정해진다. 젠장.. 11년을 다녔는데도 부족하군. 반드시 이놈의 항공사에 오래오래 다녀주겠어,라고 다짐하게 만드는 똑똑한 정책 아닌가. 이런 날은 지인이니 친분이니 요행조차 기대할 수 없다. 그저 빈자리가 나길 빌며, 나만을 바라보는 가족들에게 태연한 척 연기할 뿐.
시간은 흘러 마침내 출발 1시간 전, 멀리서 날 향해 마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듯 손을 흔드는 선배의 얼굴이 보인다.
'나이스'
후다닥 달려가니 마침내 내 손에 주어지는 합격목걸이, 아니 탑승권 4장! "야 너 운 좋다 ㅋㅋ 이비행기를 타다니.. 하늘이 너의 여행을 돕는구나. 니 뒤 대기자는 다 잘렸어ㅋㅋ" 신이 나서 방방 뛰는 나에게 선배는 마지막으로 축복의 말 한마디를 더했다. "근데.. 만석이라.. 자리 3개뿐이야. 둘째 자린 없어.. 어디 한번 안고 잘.. 가봐..ㅎ 화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