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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로 가는 가장 먼 길-3

내 체력의 존재 이유

[12월 시드니는 두번 가세요, 세번 가세요]


내 키는 172cm. 여자치고는 기골이 장대한 편인데, 나의 체격과 체력은 오늘을 위해 준비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날이다.


한국시간 밤에 출발하여 밤을 꼴딱 새우고 도착한 시드니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오전 10시. 하루가 리셋되어 피로도는 실로 어마무시했다. 그러나 대부분 크리스마스 행사며 마켓, 마트는 25일부터 close 예정이었기에 밤새 10시간 동안 11kg를 안고 온 피로를 느낄 새도 없이 "오늘" "지금 이 순간" 해야만 하는 것들이 쌓여 있었다. 온몸의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무시해야 했다.


호텔에 짐을 던져놓고 향한 곳은 pier의 LUNA PARK. 자그마한 로컬 놀이공원인데, 딱 24일 오후 2시까지만 산타할아버지와의 포토찬스가 있다는 걸 안 이상 어찌하리. 진심, 내리사랑에 장사 없다. 한 놈씩 유모차에 탑재하고 지하철을 타고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 놀이공원에 도착, 뙤약볕에 줄을 서서 (호주는 한국과 계절이 반대다) "실제" 산타할아버지와의 사진을 얻어냈다. 4만 원 상당 지출은 덤이다. (할아버지가 상당히 리얼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라면 추천!)


숨 돌릴 틈 없이, 브레이크 타임 걸리기 전 오페라하우스가 보이는 야외식당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위해 이동했다. 다행히 첫째는 산타를 만났다는 고양감, 그리고 짭짤한 감자튀김과 달콤한 아이스크림으로 한껏 흥분해 있었다. 그래.. 부모만 힘들면 됐지 뭐.. 다행히 항구로 리턴하는 페리의 상쾌한 바람과 그림 같은 풍경이 날 일으켰다. 맛대가리 없는 차가운 파스타면 어떠하며, 피시 앤 칩스가 좀 딱딱하면 어떠하리. 지금 내가 시드니에 와 있는데..! 자린고비처럼, 오페라하우스 한번 보고, 냉 파스타 한입 먹으며 시드니 첫 끼니를 보냈다.


식사를 마친 뒤 남편과 아이들은 숙소로 보내고 숙소 인근 마트로 향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 조식뷔페는 무리라 (돈 낸 나도, 다른 손님도 괴로운 상황의 연속) 늘 해외 도착한 날 며칠치 바나나와 모닝빵 요구르트 컵라면 따위를 사는 것이 루틴이 되었다. 게다가 낼부터 마트가 문을 닫아서 무조건 장을 봐둬야 했다 '언제쯤 조식당에서 여유롭게 먹을 수 있을까. 주스도 종류별로 두어 잔 마시고 쌀국수도 먹어야지' 기약 없는 상상을 하니 괜스레 웃음과 함께 눈물이 차오르는 건 내 착각이겠지.. 그러던 사이 슬슬 관절이 분노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야! 너 미쳤어?? 어제 내가 잠도 안 자고 10kg 넘는 돼지를 10시간이나 안고 온 거 잊었어? 몇 만보를 걸어야 직성이 풀릴래!? 해외에서 부러져볼래???'


온몸 관절의 협박을 가볍게 무시하고 장보기 미션을 끝낸 나는 숙소로 복귀했다. 하이드 파크 옆 숙소였는데, 관절파업 직전임에도 나만의 시간이 너무나 소중해 굳이 하이드를 크게 한바쿠 돌고 들어간 의지의 여성인 나. 그리고, 간단히 장 본 음식으로 저녁을 먹은 우리는, 크리스마스이브를 장식하는 달링하버 불꽃놀이를 보러 가기로 하고는 잠시 눈을 떴다 감으니 둘째 날 아침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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