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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경험하는 공항은 일부에 불과하다-2

반드시 기내로 갖고 타야 하는 한 가지 물건은?

[화끈한 런던 Heathrow 공항,재앙이다. BBC뉴스 발췌]

"띠리링 띵~띠리링 띵~~"

10시 반에 울리는 불길한 전화벨소리. 발리에 가 있을 내 친구가 이 시간에 나에게 전화할 일은 딱 1개뿐이다.


"야.. 나 가방 안 왔다.. 살려조라.."


늘 직항만 타던 내 친구는 처음으로 외국 항공사의 환승 비행기를 타본 참이었다. 이미 그녀와의 카톡은 육두문자로 도배됐다. "이런 망할.. 가방을 안 실으면 어쩌겠단 거야!#*";#&@&^%₩₩ 미친 항공사 아냐 진짜" (놀랍게도 그 항공사는 전 세계 탑 3에 드는 항공사다)


흥분한 친구에게 미안하지만 난 이런 상황을 너무 많이 봤어 친구야..


먼지 날리는 창고 같은 수하물 사무실이서만 3년. 오지 않은 캐리어와 부서진 골프채 사이에서 온갖 시련을 겪으며 승객을 응대한 게 바로 나다. 하루 수십 개의 항공편을 운항하는 항공사라면 하루에 늘 기본 수십 개의 미도착 수하물이 있다(고 장담한다). 여러 가지 사유가 있는데 가장 흔한 케이스는 역시나 내 친구처럼 환승여정일 경우. 당신이 탄 비행기가 늦게 도착해서 다음 비행기를 헐레벌떡 뛰어 타야 하는 경우라면 짐은 연결되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다. 또는 환승시간이 충분했다 하더라도 그 나라 baggage 스크리닝에 걸려 검색에 오래 걸린다거나,  또는 바코드 인식 오류로 다음 편 비행기 대기지역까지 제시간에 도달하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뱅글뱅글 돌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조업사의 인적실수도 종종 발생한다. 울면서 통화한 신혼부부만 열트럭은 된다..(신부도 울고 나도 울고..)


"야 기다려봐 검색해 볼게"


이렇게 해당 공항에서 실리지 못한 수하물들은 다음 항공편 또는 다른 항공사를 이용해 도착하기도 한다. 긴박한 상황인걸 아니까, 항공사들끼리 상부상조하는 암묵적 룰이랄까. 그럴 때 'bag tag번호 123456 수하물을 xx 편으로 언제 보낼게'라고 직원이 암호화된 전문을 보내는데, 매일 아침 출근해서 저 전문을 확인하는 게 루틴이었다. 시스템에 tag번호를 넣고 엔터를 치자마자 그 전문이 떴을 때의 그 쾌감이란..! 대학교 합격결과 확인하는 순간처럼 매번 떨림 그 자체였다.

(왜냐면 화가 난 승객에게 뭐라도 할 말이 있기 때문이다..'손님.. 다음 편으로 온답니다.. 제발 노여움을 푸시옵소서..ㅠㅠ' 하고..)


친구의 bagtag번호를 시스템에 입력하자 뿅! 하고 쾌감의 메시지가 뜬다.


"응 니 짐 싱가포르에 있어. 내일 아침 xx123편으로 보낸다네?! 이유는 와우~ payload네?! 낄낄낄"


이야, 내 지인들 중 수하물 안 왔다는 사람들 많았지만, 불운한 걸로는 이 친구가 원탑이다.   payload 때문이라니. payload는 쉽게 말해 비행기가 이착륙할 수 있는 적정의 무게를 뜻한다 (승객 수하물+화물+기름무게+손님무게..) 보통은 페이로드가 초과될 일이 없지만, 유난히 많은 승객들이 예상치 못하게 짐을 많이 가지고 온 날이라던가, 항로 기상문제로 기름을 평소보다 많이 넣어야 한다던가, 등등의 사유로 적정 페이로드를 초과하는 날이 (재수 없게) 있다. 그럴 경우 안전운항을 위해 비행기 무게를 줄여야 하는데, 기름이나 승객을 뺄 순 없으니, 슬프게도 보통은 화물보다는 승객의 수하물을 내리는 편이다. 불운의 선정 기준은 항공사마다 다르지만 내 친구의 경우는 연결 편 승객들 수하물들을 다 빼버린 듯했다.


내 설명을 들은 친구는 분노, 대노, 진노의 3단 그라데이션을 뿜어냈다.

"무거운 건! 지네 사정이고!!! 난!! 낼!!! 섬에 가야 한다고!!!!" 아, 이 익숙한 샤우팅.. 오랜만에 들어본 승객의 클레임인 듯 정겹기까지 했다.


열받은 친구 귀에, 놀리듯 슬쩍 한마디 얹었다


"그러게.. 내가 빤스하나는 들고 타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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