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좋아하는 18개월과의 10 시간 넘는 장거리 만석비행기는 비행기가 아니라 비헬기다. 둘째랑 해외여행이 처음은 아니었고 과거 단/중거리 비행을 무난히 통과했기에 자신만만했다. 그 시기의 특수성을 간과한 과거의 나의 뒤통수를 세게 때려주고 싶다.
18개월,
참으로 애매한 나이다. 주제에 힘은 세져서 어설프게 뛰고 걷지만 아직은 위태롭기 때문에 좁은 비행기 복도에 내려놓으면 의자나 손잡이에 머리박기 일쑤다. 알아듣는 귀는 있으나 이해하는 뇌가 없으니 '앉아'를 알아먹지 못하고 꼽등이처럼 튀어나간다. 애미가 큰맘 먹고 태블릿을 보여주자니 '아직은' 그다지 오래 집중하지는 못한다. 게다가 내 아들은 얼마나 사람을 좋아하는지, 그렇게 앞뒤옆사람한테 아는 척을 해서 도무지 미안해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이 모든 행동이 심지어 비행기 문이 닫히고 이륙하기도 전, 단 10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아, 어찌하겠는가. 이미 비행기는 야속하게 활주로로 올라선 것을.
결국 나의 선택은 11시간 동안 서서 안고 가는 것이었다. 밤비행기라 첫째도 누워 잘 공간이 필요했고, 결국 나만 일어서면 첫째도, 옆자리 승객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11킬로가 넘던 아들을 아기띠로 단단히 묶고 남편과 교대로 서서 가기를 시작한다. 아들은 내려달라고 격렬히 저항했다. 결국 나는 많은 시간을 비행기 화장실 안에서 보내야 했다. 끊임없이 아이에게 말을 걸고 주의를 환기시키고 놀아주면서. 동시에 바깥에 사람이 기다릴까 봐, 전세살이의 설움으로 이 화장실 저 화장실을 전전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5살 딸아이의 끝없는 요구사항을 들어주거나 ('엄마! 이 게임 재미없어! 다른 거!) 밥을 먹이며 ('엄마! 이거 안 먹을래!) 잠자리 세팅까지. 아! 왜 아이들은 엄마만 찾는가. 아빠도 있는데!!
한 가지 위안은 그날 그 비행기에 아기/어린이 승객이 무려 30여 명이었다. 미혼승객에겐 참으로 미안하지만, 밀폐된 장소에 다른 아이들도 있다는 것만큼 강력한 심리안정제는 없다. 당시 달러환율이 천정부지 치솟아 보통 하와이로 가던 가족 승객들이 호주로 많이 몰리던 시기였다.
".. 언니..! 매..맥주..! 2캔요..(살려줘요)"
살기위해 술을 주문했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으면 주님께 의지하는 수밖에. 이미 화장실 앞서 오다가다 내적 친밀감을 쌓은 승무원들은 주문도 안 한 과자에 주스까지 바리바리 갖다주었다. '안타깝지만 네가 선택한 지옥이야..'라는 복합적 미소와 함께..ㅎ 취기가 오르고 아이가 품에서 잠들 무렵 뿅 가는 상태로 난 필리핀해를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