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수류탄, 각개전투, 그리고 끝없는 행군
훈련소 생활도 중반기를 넘기면서 이제 본격적으로 ‘군인다운’ 훈련들이 시작되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훈련은 수류탄, 각개전투, 그리고 행군이었다.
수류탄 훈련을 받기까지 우리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 모형 수류탄으로 연습을 해야 했다. 자세 교정부터 시작해서 “호안에 수류탄!”, “호 밖에 수류탄!” 같은 구호를 외치며 실제 상황처럼 반복 훈련을 했다. 그러던 중 옆 소대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야, 너 누구 아니야?” 바로 대학 동기였다. 그렇게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이곳에서 아는 얼굴을 마주친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그런데 하필 그 모습을 우리 소대 담당 조교가 보게 되었다. “너, 떠들려고 왔어?”라는 말과 동시에 얼차려가 시작되었다. 이상하게도 나도 같이 떠들고 있었는데 내 친구만 잡혀 갔다.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 소대 조교는 막내였고, 내 친구 쪽 조교는 왕고였다. 그리고 나는 꽤 잘 챙김을 받던 편이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딱 맞는 순간이었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었다. 방탄조끼를 입고 호안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에는 교관님이 계셨는데, 의외로 백화점 직원처럼 친절한 미소를 띠고 계셨다. “할 수 있어요.” 훈련소에 들어와 가장 부드러운 말을 들은 순간이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연습한 대로 수류탄을 던졌다. 잠시 후— 펑. 땅이 울렸다. 달팽이관을 관통하는 굉음과 함께 몸 전체로 진동이 전해졌다. 그 순간 생각했다. ‘아… 전쟁은 진짜 무섭구나.’ ‘지진이 나면 이런 느낌일까.’ 못 잊을 순간이었다.
훈련소 후반부, 드디어 각개전투가 시작되었다. 개인적으로 훈련소에서 가장 힘들었던 훈련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겨울이었고, 땅은 얼어붙어 있었고, 나는 거기서 포복을 해야 했다. 훈련이 끝나면 팔꿈치와 허벅지에는 멍이 가득했다. 마치 격투기 선수에게 두들겨 맞은 느낌이었다.
전투 소음이 요란하게 울려 퍼지고 포복, 외나무다리 건너기, 모형 인형 찌르기까지 정신없이 이어졌다. 이 모든 것을 무한 반복하니 몸보다 정신이 먼저 버티기 힘들어졌다.
그리고 이어진 야외 숙영. 얇디얇은 천 텐트에 남자 셋, 넷이 들어가 몸을 붙이고 잤다. 바람은 그대로 들어왔고 몸은 꼼짝도 못한 채 일자로 누워서 잠을 청했다. 눈을 뜨니 얼굴이 얼어 있었고, 손가락에는 동상 기운이 돌았다. 정말 쉽지 않은 밤이었다. 그래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걸 버텨낸 내가 꽤 대견하다.
훈련소의 마지막 관문. 행군이었다. 이미 주간 행군을 경험했지만 야간 행군은 차원이 달랐다. 군장 무게만 약 20kg. 어깨는 군장끈에 짓눌렸고 걸음은 점점 무거워졌다. 출발 전, 수통을 가득 채우고 군장 검사를 마친 뒤 연병장에 모였다. 그때 조교가 초코바를 나눠주며 말했다. “진짜 힘들 때 먹어라.”
드디어 출발. 처음엔 서로를 격려했다. “할 수 있다.” “아자아자.” 하지만 20분쯤 지나자 말은 사라지고 숨소리만 남았다. 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다. 산길에 쌓인 눈 위를 걸을 때마다 발이 푹푹 빠졌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고통이었다.
그러다 맞이한 10분 휴식. 수통을 들어 올렸지만 물은 나오지 않았다. 얼어 있었다. 그때만큼 절망적인 순간도 없었다. 결국 초코바 하나를 꺼냈다. 단맛이 입안에 퍼지자 묘하게 힘이 났다. ‘진짜 사람은 당으로 움직이는구나…’ 그렇게 또 걸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내가 왜 여기서 이걸 하고 있지…’ 자대에 가면 이제 진짜 시작인데 나는 큰일 났다 싶었다.
그러다 들려온 말. “이제 다 왔다.” 그 한마디에 다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완주.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이 너무 대견했다.
생활관으로 복귀해 훈련 일정표를 바라보았다. 하나씩 지워진 훈련일정표들을 다 수료한게 너무나도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바로 씻고 침낭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