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 아닌 완주를 향하여

처음으로 진지하게 대회를 나가본 건 2024년 춘천마라톤 10km 코스였다. 진지하게 나갔다고는 하지만 러닝 훈련이 뭔지도 잘 몰랐고, 제대로 된 신발도 없었다. 그렇게 무방비하게 나선 대회에서 세상에 빠른 사람들이 정말로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어안이 벙벙해져 돌아왔고, 2025년 목표를 10km 대회에서 더 만족스러운 기록을 세우는 것으로 세웠다.


2024_10월_춘천마라톤_10K.jpg 춘천마라톤 기록증. 나름 1시간 안에 들어오기는 했다.


4월 서울하프마라톤 10km 코스를 신청하고, 신발도 사고, 연습도 시작했다. 이 시기만 해도 춘천마라톤 기록이 나름 괜찮은 기록이라서 A그룹으로 배정을 받았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들어선 대회. 활기차게 레이스를 시작했지만, 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앞서 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수도 없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뒤처지지 않고 그들의 속도에 맞추려 발을 재촉했다. 1km밖에 안 뛰었는데 이 페이스는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내 페이스를 찾자'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속도를 늦췄다. 저들은 저들의 페이스로 길을 가는 것이고, 나는 나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


일정하게 호흡하며 나만의 박자로 달리다 보니, 5km 급수대를 지나 마포대교에 올라섰다. 달리다 보면 유난히 눈에 띄는 옷을 입은 사람들이 기억에 남는다. 이 날은 주황색 형광 싱글렛을 입고 키가 컸던 한 러너가 기억에 남았다. 1km도 되기 전에 나를 한참 앞질러 갔던 그 러너를, 마포대교 위에서 내가 따라잡은 것이다.


나를 앞질러 갔던 이들이 하나둘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네거티브 스플릿 전략을 쓰기에 7km 지점부터는 막판 스퍼트를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을 지나쳐서 결승선을 통과하던 순간, 나의 페이스가 갖는 무게를 처음으로 실감했다. 누군가를 쫓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과 나의 페이스를 지키며 달리는 것의 의미를 말이다.


그 한 번의 경험은 더 큰 갈증을 불러왔다. 더 잘 뛰고 싶었고, 더 멀리 가고 싶었다. 9월 마블런 하프코스를 덜컥 신청했다. 스스로 정한 Sub-2라는 목표에 대한 욕심은 더운 여름 무리한 연습으로 이어지고, 결국 독이 되어 돌아왔다. 발목 힘줄염과 족저근막염.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통증은 결국 9월 대회의 꿈을 무너뜨렸다.


한 달간 뛰지 않았고, 추가 신청 기회로 MBN 마라톤 하프코스 접수에 성공했다. 결과는 완주였다. 결승선을 통과할 때의 그 벅찬 성취감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무릎외측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느낌, 장경인대염이라는 훈장 아닌 훈장을 얻었고, 이후 2~3개월간은 국시 준비의 이유가 더해져서 뛰지 못하게 되었다.

KakaoTalk_20260420_225935138.jpg 4월 서하마는 A그룹이었는데 11월 MBN은 E그룹... 우리나라 러너들 기록 성장속도가 어마어마하다.


한번 맛을 본 러닝의 즐거움은 풀코스 마라톤, 궁극적으로는 Sub-3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


러너들에게는 꿈의 무대라 불리는 세계 7대 마라톤. 시드니 마라톤에서 이미 낙첨했기에 큰 기대 없이 신청했던 베를린 마라톤 당첨 메일을 받았다.

image.png 세상에... 내가 베를린을 뛴다니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약사 고시 준비와 끈질긴 장경인대염 때문에 겨우내 충분한 연습을 하지 못했다. 마음은 조급했고, 하루라도 빨리 온전한 상태로 복귀하고 싶어 초조함이 앞섰다.


2~3개월이라는 휴식 끝에 다시 뛰기 시작했고, 3월 고양하프마라톤을 성공적으로 마치니 이제는 괜찮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일주일 뒤인 3월 15일 서울마라톤에서 부상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또다시 멈춰 섰고, 좌절감이 들었다.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졌다. 나는 왜 달리기 시작했는가?


내게 마라톤은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고 끝까지 가보는 '완주'로서의 의미가 더 컸다. 물론 마라톤은 기록이 있는 운동이기에 남들보다 빠르게 도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부상 없이 건강하게 오래 달리는 것도 결코 쉬운 것은 아니라는 점은 더 잘 알게 되었다. 나와 같이 부상이나 빠르게 늘지 않는 실력, 혹은 빠른 사람들의 텃세로 속상한 러너들도 많을 것 같다.


이제는 나에게 무리한 기록을 얻기 위해 뛰지는 않기로 한다. 통증을 참으며 달리는 대신, 내 몸의 신호에 귀를 기울이며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나아가는 완주의 의미를 더 깊게 새겨보려 한다. 베를린의 주로에 서게 될 그날, 나는 기록이 아닌 나만의 온전한 완주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