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대한 고찰

2025-11-09

by 고찰

왜인지 그 이유를 명확히 알 수는 없지만서도, 주제와 줄거리를 명확히 생각해 놓은 글을 키보드로 끄적일 때에는 도통 써지지 않던 활자들이, 무념하고 또한 무상한 상태로 휘릭휘릭 적어나갈 때는, 그 어느 때보다 잘 적힐 때가 있습니다.


십 리 밖에서 보아도 끔찍한 악필인 제 글씨체로 적힌 글자들을 보며, 그것들이 무언가의 군집 비스무리한 것을 이루어 어떠한 하나의 생각이 되고, 사상이 되며, 또한 모토가 된다는 것은, 갓 스물의 나이인 제게 있어 제법 짊어지기 힘든 짐이지만, 그럼에도 글 쓰는 것을 멈추지 못해, 한낮의 드높은 가을하늘 아래 카페 테이블에 앉아 오늘도 저는, 무언가를 쓰곤 합니다.


이럴 때 보면 글은 참으로 자수 놓는 것과 그 궤를 비슷이 하는 것만 같습니다. 미싱 바늘 대신 잉크가 고인 펜촉으로, 옷감 대신 종이에, 실 대신 글을 하나하나 새기면, 어느샌가 그럴듯한 작품 하나가 뚝딱, 하고 만들어져 있곤 하지요. 물론 이 잉크와 종이의 자수, 즉 글은, 다른 여느 자수들과는 달리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머리로 보며 또한 가슴으로 곱씹는 것이지만 말이지요.


또한 잘 닦인 철로 위를 달리는 고속열차와 같이 잘만 써 내려져 가던 글에 갑자기 제동이 걸리는 순간이 찾아오고는 하는데요. 사실 저에게는, 지금 이 글을 적어 내려가고 있는 도중에 그런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글을 써내려 가는 사람마다 이럴 때 쓰는 각자의 비결이 제각기 다르기 마련이겠지만, 저는 언제나 으레 그래왔듯이 잠시 제 손을 멈추고선, 지금까지 써온 활자들을 찬찬히 읽어 나갑니다. 두서없고 서투르게 적힌 글 뭉치들이 제 눈에 걸리면, 전 잠시 그곳에 멈춰 예전에 썼던 제 다른 글들을 나지막이 읽어가며 그 글 뭉치들을 고칠 점을 찾아 나서지요.


그런 면에서 글이라는 것은 그 형상이 참으로 오묘하다 생각합니다. 저에게서 말미암아 처음으로 잉태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글로부터 현재의 모습으로 양태된 것인지 알 수 없는 그 기묘한 활자 덩어리들은, 조금 거리를 두고 떨어져 제삼자의 입장으로 읽어보면 언제나 제게 희한한 노스텔지어와 기시감을 동시에 선물하고는 하지요.


'내가 정말 이런 걸 썼다고?' 와 '내가 정말 이딴 걸 썼다고?' 가 서로 공명하며 제 머릿속을 괴롭히지만, 그럼에도 불변하는 사실은, 그 글들 전부 저에게서 잉태되고, 또한 저를 거쳐 양태된, 제 글이라는 점 일겁니다.


주저리주저리 적어 내려간 이 활자 뭉치들은, 먼 미래의 저에게 읽혔을 때 과연 어떤 형상으로, 어떤 문양으로 수놓아진 자수처럼 저에게 다가올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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