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05
테세우스의 배, 고대 그리스 신화의 등장인물인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루스를 무찌르고 아테네로 복귀하자, 그 곳의 시민들이 테세우스의 영웅적인 활약을 기리기 위해 그가 타고 온 배를 보관했다죠. 허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배를 이루는 판자들, 못들이 하나하나 썩어문드러지고 또 녹이 슬어가자, 아테네의 시민들은 테세우스를 기리고 또 그의 업적을 계속해서 남기기 위해 그 배를 최고의 상태로 유지하고자 했습니다. 썩어버린 판자는 새 것으로 갈아치우고, 녹슬어버린 못은 새 못으로 다시 박아넣으며 말이죠.
아테네 시민들의 헌신과 노력으로 테세우스의 배는 계속해서 청결한 상태로, 다른 새 배와 감히 비교한다 하여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깔끔히 관리되었죠. 허나, 그 낡았던 배의 마지막 판자가 새 판자로 교체되던 날, 누가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저 배가, 단단하고 기름진 새 판자들과, 날렵하게 반짝거리며 빛나는 새 못들로 이루어진 저 배가, 테세우스의 빛나고 또한 영웅적인 업적의 그 어떤 향취도 담아내지 못했던 저 배가, 정말로 테세우스의, 테세우스가 탑승했던, 그 배가 맞는지 물었죠.
그 때 그의 말을 들었던 모든 아테네의 시민들은 아마 제각각, 다른 대답을 생각했을 겁니다. 그들의 대답은, 테세우스의 배에 얽혀있는 자기네 나름의 추억, 사상, 이해관계 등등에 또다시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며 끝없는 논쟁의 굴레로 그 배를 끌고갔을 터이고요. 그것이 바로, 후대의 우리에게 테세우스의 배 이야기가, 하나의 유명한 역설로써 전승되어오는 이유인 것 이겠죠.
어떤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그 배가 테세우스의 것인지, 아닌지를 두고 논쟁을 이어나갑니다. 일반인들은 차마 이해조차 하기 힘든 복잡한 철학적, 논리적 이론과 학설들을 거론해가면서 말이죠.
저는 철학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해본 적은 없습니다. 끽해봐야 하이데거의 책 몇권을 해설서로 잠깐 읽어본 것 뿐이지요. 그렇기에 저의 생각은, 그리고 논리는, 철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신 분들이 보기에는, 그 깊이의 정도가 무척이나 우스울 것입니다.
그럼에도 감히, 제가 이 테세우스의 배 역설에 대해 한 마디를 해보자면, 전 그 배가 여전히 테세우스의 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어쩌면 더욱 나아가, 우리 모두가 이 테세우스의 배 역설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몸임에도 스스로의 이름을 당당히 지켜내고 있는, 테세우스의 배 역설의 먹잇감이자 또한 그 역설의 정답의 산증인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네 몸을 이루고 있는 손톱부터 발톱, 눈, 귀, 간, 췌장 등등의 모든 신체 부위의 세포들은, 언젠가 노화해 그 쓸모를 다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른 세포들로 그 자리가 대체되어 버리겠죠. 마치 테세우스의 배 한켠에 붙어있던 곰팡이 핀 판자, 녹슬어버린 못과 같이 말입니다. 7살 때, 유치원에 가서 친구들과 함께 만화책을 읽던 우리, 9살 때, 학교에 가 구구단을 배우던 우리, 17살 때, 첫사랑의 달콤함과 첫이별의 쓰라림을 한움큼 안아들던 우리, 이런 우리 모두 자신의 낡았던 헌 몸을 버리고, 새 몸으로 갈아끼워진지 오래였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감히 우리 스스로를 5년 전, 10년 전, 20년 전의 그 헌 몸 일때의 이름으로 우리를 지칭해냅니다. 그 것이 당연하기에, 또한 그 것이 너무나도 자명하기에,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정체성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또한 관철해나가는데에 그 어떠한 망설임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지구라 부르는 우리의 푸른 고향은 또 어떠한가요? 대자연 어머니의 그 장엄하고도 아리따운 풍채는, 세월의 풍파에 휩쓸리고 또 풍화되며 제 모습을 계속해서 바꾸어 나갈겁니다. 100년이 지나고, 1000년이 지나고, 또 10000년이 지나면, 이 지구라는 행성의 형상은, 그저 한 인간인 우리가 차마 담아낼 수 없는 색다른 모습으로 제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겠죠. 공활히 솓아있던, 하늘의 끝에 아슬히 그 봉우리가 닿을 듯 하던 높은 산은, 어느새 평평한 언덕으로 깎여나가, 자신의 몸체를 이루고 있던 두터운 암석들을 보드라운 흙더미로 대체한지 오래이겠죠.
그럼에도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한 없이 높던 산이었던 어느 한 언덕을, 한 없이 커다랗던 대양이었던 한 연못을,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담아냈고 또한 계속해서 담아내는 이 푸른 구슬을, 우리는 계속해서 지구라, 우리의 고향이며 또한 모두의 고향이라 당당히 외쳐 선언할 것 입니다. 결국 지구라는 이름의 가장 거대한 한 테세우스의 배는, 계속해서 테세우스의 것으로, 그리고 지구인의 것으로 남아있게 되는 것이지요.
왜냐고요? 바로 지구가, 거대한 암석들이 작디작은 모래알로 바뀌고, 푸르른 아름드리나무가 그 나이테만을 드러내는 초라한 고목이 되어가며, 그 몸을 이루어내는 모든 것이 변화하고 또한 대체된다 하더라도, 지구는 계속해서, 지구이기 때문이죠. 마치 테세우스의 배처럼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