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베트남 하노이한국국제학교로 초빙교사 지원을 했다.
물론 지원을 한다고 초빙이 되는 건 아니다.
심지어 단 1명의 교사만 선발하는 나름 초박빙의 경쟁이었다.
자신감보다는 간절함이 더 커서인지 내가 갈 것만 같았다. 아니 가야 했다.
지원서를 쓰고 나니 이미 마음은 한국을 떴고, 뭐가 됐든 잠시 나가서 한국에서의 치열했던 삶을 스킵하고 싶었다. 물론 하노이한국국제학교에 근무하게 된다면 열정을 불태우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에 베트남에 가서 그냥 쉬겠다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일단 1차 합격 소식을 기다려야 했다. 그래야 2차 면접시험과 현장 실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1차 합격은 무난히 통과했다.
1차 합격 메일을 받고는 출력까지 해서 교감 선생님과 선생님들께 설레발을 쳤다.
남편에게도 1차 합격 소식을 전하자 의외로 덤덤한 반응이다. 설마 최종합격까지 하겠냐는 의구심이 들었는지 별다른 리액션은 없었다.
마음이 바빠졌다.
네이버 재외국민교육기관 카페에 들락거리며 기출문제나 면접 분위기 등을 살피기 바빴다.
나름대로 예상 문제를 만들어 깔끔한 답변을 구상했다.
그 와중에도 한국에서의 삶은 여전히 바쁘게 이어졌고, 아직 합격도 안 했는데 베트남 맘카페를 들락거리며 하노이 생활까지 염탐하고 있었다. 이런 걸 두고 역대급 설레발이라고 하는 거다.
아 그리고 생애 최초로 한 달 새벽기도에 성공했으니, 하노이에 반드시 가고야 말겠다는 나의 의지였다.
기독교가 기복신앙이 아니지만, 당시 나는 어린아이가 부모님께 워너비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쓰듯 하나님께 생 떼를 썼다.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 알 길은 없으나 저는 지금 안 가면 죽을 것 같아요. 하나님 뜻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라면 그냥 눈감고 이번 한 번만 허락해 주세요. 주님 제가 여기 있사오니 저를 보내소서~
그래서였을까 역대급 피로감에 눌려 면접 일주일을 앞두고 대상포진에 걸렸다.
하필이면 대상포진이 얼굴에 대각선으로 왔고, 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인가 싶어서 살짝 원망도 했다.
하지만 뭐 이젠 방법이 없다. 하나님께 또 우길 수밖에.
'비록 이 얼굴을 하고 면접을 보러 가지만, 면접관들이 나의 내면과 간절함에 집중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 해놓고는 면접 당일에 미리 예약한 헤어&메이크업 원장님께 분장을 받으러 갔다. 언행불일치.
원장님은 후크 선장처럼 대각선으로 이어진 대상포진 자국을 보자마자 기함을 쳤지만, 곧 프로 정신을 발휘하여 저 자국을 없애 버리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비장하게 메이크업 도구를 손에 들었다.
하나하나 자국을 메꾸며 응원의 말도 해준다.
"제가 지금까지 메이크업해드린 수험생들 전부 합격했어요. 제가 그런 운이 있나 봐요. 하하하"
한 달 새벽기도 하고 온 사람이라고 차마 말은 못하고 나도 따라 웃기만 했다.
면접 시험장에 들어서니 이제 실감이 난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1차에 5 배수가 합격한 사실을 몰랐는데, 면접 대상자 명단을 보고는 기절할 뻔했다.
저 5명 중에 내가 뽑혀야 한단 말이지. 그동안의 간절함이나 열정이 순식간에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먼저 면접을 본 다른 교과 선생님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한 귀로 훔쳐 들으며, 후룸라이드 떨어지기 직전 같은 기분으로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드디어 차례가 되었다. 명단에 적힌 이름이 불리자 다섯 명의 선생님들이 눈치 게임하듯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난다. 남자 3, 여자 2. 남교사가 점점 귀해져 가는 학교 현장을 고려할 때, 내가 불리한 건가. 불안이 엄습해 온다.
나는 1번인지 5번인지 모를 끝자리에 앉게 됐고, 아마 마감일에 접수했으니 5번이지 싶었다. 총 3개의 질문이 있었으니 처음과 끝 순서가 번갈아 먼저 대답하는 방식이었다.
첫 번째 질문은 아주 개인적인 근황이나 지원 동기에 대한 가벼운 질문이었다.
다들 웃는 얼굴로 술술 이야기를 잘 풀어나갔다.
두 번째 질문은 좀 더 구조화된 질문으로 이번에는 나부터 대답을 시작했다. 외국에서의 돌발 상황이나 동료 교사와의 갈등 발생 시 극복 방법 등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나의 큰 장점 중 하나가 위기 상황에서 잔머리를 겁나게 잘 굴린다는 것과 상대 캐릭터에 따라 다양한 변신이 가능한 인격이라는 것이다. 이런 나를 두고 어떤 선생님은 '정치'를 잘한다는 말로 돌려 까기를 한 적도 있다.
마지막 세 번째 질문을 들었을 때, 나를 포함한 모두가 머릿속이 하얘졌을 거라 확신한다.
마지막 면접관인 교육연구사는 자신의 삶과 교실 현장에서의 경험을 녹여낸 자신만의 교육철학?, 아니면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형성된 교육철학이 교실 현장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있는지?
뭐 정확히 기억도 할 수 없는 최대치의 철학적이고 두리뭉실한 질문을 던졌다. 환장.
다행인 건 이번엔 내가 답변 마지막 순서라는 거다. 첫 번째 선생님 어쩔.
첫 번째 지원자는 질문을 이해하며 대답을 한다기보다는, 대답을 하면서 질문을 이해하는 듯한 답변을 시작했다. 두 번째 지원자가 하는 대답을 유심히 들어봐도 당최 질문이 뭔지 이해를 못 하겠다. 젠장할.
세 번째 지원자는 나이가 지긋하신 분으로 뭔가 심오한 대답을 이어나가셨고, 다행히도 느린 말투 때문에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아하! 대충 저런 질문이었구나. 오케이 접수했어.
네 번째 여자 지원자 역시 극적으로 생각을 정리한 듯 차분하게 답변을 이어갈 때, 나는 속으로 답변을 완성하기 시작했다. 속으로 딱 두 번 반복하자 내 차례가 됐다.
질문이 전혀 당황스럽지 않았다는 듯 능청스럽게 미소를 지으며, 앞 순서 지원자들의 진땀 어린 대답을 참고하여 가장 업그레이드된 답변을 할 수 있었다.
그분들께는 너무 감사하고 죄송할 따름이다. 근데 순서가 그랬는데 어쩝니까.
이제 남은 건 현장 실사 딱 하나다. 거의 다 왔다.
현장 실사는 내가 근무하는 학교의 관리자에게 나의 근태나 역량 등을 묻고 적합한지 심사하는 마지막 통과의례다. 현장 실사에서 큰 이상이 없으면 면접 점수로 최종 합격자가 결정된다.
교감 선생님께 신신당부했다. 교감 선생님이 말씀을 잘해주셔야 제가 간다고.
하지만 장난기 많은 교감 선생님은 '이 선생님 데려가면 골치 꽤나 썩을 거다'라고 방해 작전을 펴시겠다는, 아주 내 피를 말리는 농담을 하셨다.
070으로 뜨는 국제 전화 수화기를 들고 회의실에서 한참을 통화하고 나오신 교감 선생님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셨고, 나의 최종 합격 여부도 정말 알 길이 없었다.
최종 합격 발표 전날
내일이면 모든 것이 결정 난다.
만약 최종 합격을 하게 되면, 비자 발급부터 이사 준비, 하노이에 집 구하기 등등 눈 돌아가게 바쁠 일들을 준비해야 했고, 눈 돌아가게 바쁘고 싶었다. 인간이란 얼마나 간사한 동물인가.
등 뒤에서 들려오는 '하노이 카페만 들여다보지 말고, 업무나 열심히 하라'는 교감 선생님의 핀잔을 듣는 둥 마는 둥하며 합격 소식이 들려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그때.
네이버 카페에서 합격 전날임에도 불구하고 합격 메일을 받았다는 선생님들의 글이 올라오고 있었다!
나는 못 봐. 정말 못 봐!!
교무실에서 불합격 메일을 열게 됐을 때 그간의 설레발과 오두방정이 너무 민망스러울 것을 염려하여, 집에 가서 보기로 했다. 퇴근 시간까지 나는 좀비처럼 복도와 교실을 걸어 다녔다.
퇴근해서도 계속 고민했다. 그냥 내일 열어볼까. 만약 불합격이라면 단 하루라도 기대와 희망 속에 사는 것도 괜찮아. 근데 알잖나. 인간이라면 절대 참을 수 없다는 것을.
떨리는 손으로 메일에 로그인을 하고, 받은 편지함을 열었다.
'하노이한국국제학교 최종 지원 결과'
떨리는 손으로 메일 제목을 클릭했다.
'하노이한국국제학교 최종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꺄~~~ 나는 돌고래처럼 소리를 질렀고,
기쁘나 슬프나 입 밖으로 신음 소리 한 번 잘 안내는 내가 꺅꺅 소리 지르는 모습을 보고, 남편은 조용히 박수를 보냈다.
와 진짜 내가 됐다고?! 간절히 바라긴 했지만 막상 현실로 이루어진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간 베트남 맘카페에서 외울 정도로 읽어 내린 하노이 생활을 정말 내가 하게 됐다고?
이 기쁜 소식을 교감 선생님께 가장 먼저 카톡으로 알려드렸고, 답장은 없었다. 읽씹.
다음 날, 세상을 다 얻은 사람처럼 깃털 같은 발걸음으로 출근을 했다.
교무실에 들어서려는데 웬 교무실 의자 하나가 복도에 나와 있다. 뭐야 이거.
교무실로 들어가 보니 내 책상에 자석처럼 붙어 있어야 할 의자가 없다!
교감 선생님께서 나의 최종합격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의자를 복도로 빼놓은 것이다.
이제 너는 베트남 사람이여. 이 학교 사람이 아니여.
나중에 하노이한국국제학교 교장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현장 실사에서 교감 선생님이 '이 능력 있는 사람을 데려가면 우리 학교는 큰일 난다'는 분에 넘치는 호평을 해주셔 내가 점수를 후하게 받았던 것이다.
교감 선생님 다시 한번 정말 감사합니다!!
이로써 나는 임용 시험 이후에 역대급 인생 도전에 성공하게 됐다.
특히 교사, 공무원이라면 해외 근무는 정말 희귀한 경험인데, 남들이 몰라서 혹은 알아도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한 도전을 내가 먼저 하게 되었다. 나의 아홉 번째 문어발은 베트남 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