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문어발: 인생 최대의 똘기 베트남에 지원하다

by 용감한 잇프제이

2년 간 혁신 학교에 몸 담으면서 수업 연구와 수업 자체에 행복감을 느끼는 '챔교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여기저기 교육 활동이나 연수 등에 불려 다니거나 혹은 스스로 찾아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진로'를 고민하게 됐다.

의욕만 앞섰지 제대로 이뤄 놓은 것도 없고, 25살부터 내리 고3 담임을 하느라 대학원도 못 간 상황에서 내가 가야 할 길은 어디인지 갈피를 못 잡았다.

그래서 일단 눈에 띄는 대로 시도하고 도전했다. 거의 모든 일이 그렇게 시작되지 않나.



'진로 상담교사'

주 10시간의 꿈같은 수업 시수와 시험 문제 출제의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너무 매력적인 대안이었다.

진로 상담교사를 양성하는 대학원에 원서를 접수하고 면접까지 본 다음 교감 선생님께 당장이라도 진로 상담교사가 될 것처럼 대학원 지원 사실을 말씀드렸다. 교감 선생님은 후회하지 말고 잘 생각해 보라고 딱 한 말씀만 하셨다.


'한국교원대 대학원 파견'

한창 진로 상담교사로 살아갈 앞날을 꿈꾸고 있는데, 교육청 추천으로 한국교원대 대학원 파견을 보내는 공문을 보게 됐다. 대학원 캠퍼스에서 젊은이들 사이에 끼여 일이 아닌 공부를 하고 있을 나를 상상해 봤다. 이거 진짜 해야겠는데?

교감 선생님께 조심스럽게 나의 진지한 뜻을 말씀드리고 추천서 작성을 부탁드렸다. 진로 상담교사보다는 나에게 더 좋은 선택인 것 같다며 흔쾌히 추천에 응해 주셨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진로 상담교사에서 대학원 파견으로 나의 꿈이 바뀌고, 곧 대학원생이 되어 학문을 불태우겠다는 각오로 안경까지 맞췄다. 뿔테로.

당시 나는 교무기획부의 차석으로서 나름 요직에 있었기에 중요한 공문들을 빈번하게 접수하고 처리하곤 했다. 그날도 매번 그랬듯 퇴근 시간을 앞두고 마지막 공문 확인을 위해 업무폭탄(업무포털)에 들어갔다.

그러다 눈에 띄는 공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으니,

'재외국민교육기관 교원 파견 및 초빙'

............?....?!....!!!

시계를 보니 퇴근 시간 10분 전이며, 공문에 적혀 있는 지원서 마감일 하루 전 날이었다.

아이들을 픽업해야 했기에 교무실에서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순 없었다.

그렇다고 무시하고 넘기기엔 안 본 눈을 사지 않는 이상 불가능해 보였다.

일단, 노트북을 챙겨 들고 학교를 나와 아이들을 픽업해 집으로 출근했다.

그 공문을 본 순간부터 집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머릿속엔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아까 내가 본 건 뭐지? 아까 내가 뭘 본거지?


집에서 다시 노트북을 켜고 공문을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또 읽고 다시 읽었다.

그렇게 다섯 번 정도를 반복해서 읽다 보니 어느새 나의 마음은 이미 해외로 나간 뒤였다.

그러다가 문득 교감 선생님께 진로 상담교사 대학원 지원과 한국교원대 파견 추천을 차례대로 부탁한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냐 아냐! 날 미친년으로 생각할 수도 있어.

진로 상담교사를 한댔다가 갑자기 나의 꿈은 대학원 파견인 것 같다며 오두방정을 떨어 교육청 추천까지 다 받은 지가 엊그제인데, 갑자기 어떻게 해외 파견을 가고 싶다고 말을 해? 미쳤어?!

난 죽어도 못해. 아니 하지 마!!

그러면서도 이미 나의 손은 키보드 위에 올려져 있었다.

그래 내일까지가 마감인데, 일단 지원서만 써보자. 내일 교감 선생님 얼굴 뵙고 용기가 나면 말씀드리는 거고, 아님 말지 뭐. 나 혼자 지원서만 써보는 거야 뭐 어때.



자, 그럼 지원할 학교를 골라 볼까?

해당 과목 교사를 뽑는 학교를 추려보니, 많지 않아 오히려 결정이 쉬웠다.

중국 옌벤. 연변인가? 앗 근데 직항도 거의 없고 왕복이 쉽지 않아 보여.. 패스~

중국 웨이하이. 오 한국이랑 가까운데, 근데 미안하지만 내가 처음 들어 본 곳이야.. 역시 패스~

베트남 호찌민. 호찌민? 여기 알아. 학교도 크고. 일단 후보!

베트남 하노이. 하노이도 알지 알지. tv 여행 프로그램에서 많이 봤어. 여기도 후보!


다행인 건 지원서가 똑같았다. 중복 지원은 안 됐기에 일단 자소서 먼저 작성하고 지원할 학교는 나중에 결정하기로 했다. 나중이래 봤자 내일이 마감이다.

그래도 화려한 고3 담임 경력과 더 화려한 중2 학년 부장 경력, 최근 수업 혁신에 빠져 온갖 회원으로 활동한 이력이 있어서 자소서는 금방 작성할 수 있었다.

'호찌민 한국 국제학교에서 저의 열정을 불태우고 싶습니다.'를 마지막 문장으로 지원서를 완성했다. 물론 '호찌민'은 샘플로 작성한 것이다.



자, 결전의 날이 밝았다.

최대한 단정하고 참해 보이는 옷으로 골라 입고, 덤덤한 얼굴로 교무실에 들어섰다.

바로 내 뒷자리에 자리 잡고 있는 교감선생님의 책상은 아직 주인이 도착하지 않은 상태다.

평상시대로 행동하며, 최대한 침착하게 아무 일 아닌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꺼내는 거야.

그러나 막상 교감 선생님이 교무실로 들어서자, 나는 얼음이 되었고 힐끗힐끗 교감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뭐 또 잘못했지?! 공문 뭐 잘못 보낸 거 있지? 교육청 연락 오기 전에 그냥 빨리 말해~"

평소 딸처럼 친근하게 대해 주시는 교감 선생님께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의 대답을 재촉하신다.

"아, 저 교감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 혹시 옆에 회의실에서 따로 드려도 될까요?"

순간 교감 선생님의 익살스러운 눈과 입이 원위치로 돌아왔다.

"회의실로 가는 건 안 좋은 건데. 뭔 일이 있는 건데. 왜 그랴 무섭게"

투덜대면서도 내심 궁금하셨던지 회의실로 바삐 자리를 옮기셨다.

교무실 바로 옆 회의실로 가는 그 짧은 순간에도 나는 속으로 열심히 대사를 쳤다.


"뭐야 빨리 말해봐. 무섭게 왜 그래."

워낙 가족처럼 지내는 교무실 한 식구라 스스럼없이 말씀하시는 게 오히려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한다.

"교감 선생님. 제가 어제 우연히, 정말 우연히 공문 하나를 봤는데요.. 그게 너무 도전해 보고 싶어서요.."

교감 선생님은 정말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어보신다.

"도전? 도전은 이미 했잖아. 그것도 두 번이나. 대학원 파견 말하는 거 아녀?"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가 용기를 내어 대답한다.

"그 대학원 파견 말고요, 재외교육기관 파..."

"뭐? 재외 뭐?"

"재외교육기관 파견이요.. 그 외국학교 지원하는.. 오늘이 마감이라.."

"......."

"죄송해요 교감 선생님. 제가 진짜 교원대 파견으로 마음을 정하고 있었는데, 어제 그 공문을 봐버려서.."

교감 선생님은 잠시 할 말을 잃으셨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받아치셨다.

"그게 뭔 줄은 알고 지원하는겨? 그거 나가면 승진도 힘들고, 대학원 파견 갔다 오면 알아서 앞 길이 착착 진행 될텐디 갑자기 거길 왜 가것댜?"

이젠 상황이 완전히 이해되셨는지, 연이어 받아치신다.

"그리고 진로 대학원도 붙었다가 취소하고, 대학원 파견도 교육청 추천까지 승인이 났는데, 이걸 다 버리고 나가겠다고?", "꼭 그런 사람들 있어잉. 이것저것 다 해보겠다고 여기저기 가서 맨날 면접 보고. 다 떨어져서 내년에 또 거~가서 앉아 있고잉!"

일부러 독하게 말씀하시려고 노력하시지만, 사람이 너무 좋으면 어떤 말이라도 구수하게 들리는 법. 당시 교감 선생님은 그런 분이셨다.



그 무렵의 나는 교사로서의 진로도 진지하게 고민하는 중이었지만, 큰 아이의 오랜 병원 치료(지금은 감사하게도 종결됐다)와 살림과 양육을 도맡아 해 주시는 친정 엄마와의 갈등, 남편과의 권태기로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면 퇴근이 아닌 또 다른 출근이었고, 모두가 나에게는 요구만 하고 나 자신을 챙기는 건 나 밖에 없는 듯 외로웠다. 남편과의 다툼도 잦아졌다. 결론적으로는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건 최선이 아니라고 그거밖에 못하냐고 서로가 서로를 타박하는 불평불만의 시기가 있었다. 아마 조급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빨리 아이는 나았으면 좋겠고, 둘째는 알아서 잘 컸으면 좋겠고, 남편은 빨리 연봉을 더 받았으면 좋겠고,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아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조급함으로 나의 마음은 점점 시들어 갔다. 당시 나의 유일한 행복이 수업 연구였으니, 그 외의 일상은 얼마나 지쳐 있는지 알 수 있다.

아무튼 그런 마음 때문이었을까? 이건가 저건가 두리번거리다가 해외파견에 최종적으로 마음이 꽂힌 건 아무래도 현실 도피가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 같다.



이런 사정까지는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마음 약하고 정 많으신 교감 선생님은 결국 또 한 번의 추천에 응해 주셨고(살면서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많은 추천을 받은 건 처음이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죄송하다.), 마감일에 나는 무사히 지원서를 접수할 수 있었다.


'사람은 모름지기 수도로 가야 한다'는 이름도 기억 안나는 어떤 선생님의 농담에 꽂혀 결국 베트남 하노이로 지원하게 되었고, 마지막 문구에 샘플로 적어 놓은 '호찌민 한국 국제학교에서 저의 열정을 불태우고 싶습니다.'를 수정하지 않고 보낼 뻔했지만, 그 역시 교감선생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접수를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여덟 번째 문어발은 한국을 떠나 베트남으로 발을 뻗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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