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문어발: 수업 전성시대, 강사로 무대에 서다

by 용감한 잇프제이

인근 고등학교로 발령을 받고서는 무슨 임용시험 합격했을 때 마냥 여기저기 전화해서 자랑질을 해댔다.

이제 잔소리 안 하고 내 교과만 집중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는 사실에 안 그래도 들떠 있는데, 좋아서 기절 초풍할 소식 하나가 더 들려왔으니, 바로 비담임!!

중년의 교사라면 누구나 꿈꾸는 부장 아닌 비담임!(보통 담임을 안 하면 부장을 해야 하는 시스템, 부장도 안 하면서 담임도 안 하는 건 한 학교에서 소수의 교사만이 누릴 수 있는 자리)

교사 인생에 있어 손에 꼽을 정도로 찾아오기 힘든 기회다!

그래 그동안 그렇게 개고생을 하더니 이제 슬슬 나에게도 봄이 찾아오는 그야. 그래 나도 좀 살자.


이젠 정말 교재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다는 어찌 보면 당연한 그 사실이 황송할 따름이었다.

담임이라면 아침 조회와 반 아이들의 출결 상황을 알리는 문자 응대 대신, 부장이라면 영업 개시도 전에 교무수첩을 들고 교감, 교장실에 가서 업무 보고를 해야 하는 대신, 진~한 커피 한 잔으로 여유롭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벽부터 눈이 떠지더라.



당시 내가 발령받은 고등학교는 마침 수업 혁신을 중점 사업으로 운영하는 혁신 학교였고, 그간 수업에 대한 알 수 없는 아쉬움으로 답답해하던 나에게 많은 열쇠를 쥐어 주었다.

'배움중심수업'

당시 학교 현장에서 유행처럼 번지던 말이었고, 각종 연수에서 강사들이 앵무새처럼 반복했던 말이었지만, 그래서였을까. 이 또한 스쳐지나갈 수많은 신조어 중 하나라고 생각한 교사들도 주변에 많았다.


당시 '수업'하면 우리가 떠올리는 장면은 옛날 강의식 수업이었다. 교사가 교과서 내용을 순서대로 잘 외워서 신속 정확하게 학생에게 전달하고, 여기서 좀 더 발전하면 교과서 내용을 재구성해서 화려한 판서와 함께 학생들에게 제공한다.

더 세련된 교사는 그놈의 PPT를 만드는데 하루를 다 쓰고 야근까지 한다. 여기서 중독되면 파워포인트 애니메이션 효과에 집착하게 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과정은 전달자 중심이다. 내가 이해하기 편한 것을,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전달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전달받았는지, 그 아이에게 배움이 일어났는지 확인 사살하는 노력이나 방법은 수업구상에서 빠진다. 혹은 형성평가라는 개뼈따구 같은 말로 예의를 갖춘다.


그간의 수업은 그랬다. 교사의 잘못은 아니다.

대학에서 자기 수준에 맞는 신입생을 한눈에 알아보기 위해 만든 입시 제도에 따라 학교의 평가 방식과 성적 산출은 이미 정해진 것이다. 그 안에서 교사가 어디까지 자율성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

진짜 궁금했다.

하루 종일 책상 의자에 앉아 열심히 칠판을 쳐다보고는 있지만, 그 작은 머릿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세상몰랐던 사실을 단 한 개라도 깨우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건지. 그리고 학교에서 배우고 가르치는 이 내용들이 우리 삶과 대체 어떤 연관이 있는 건지.

이 모든 궁금증에서 출발해 만들어진 수업 모형이 바로 배움중심수업이다.

나 말고도 이미 많은 교사들이 고민했던 것이다.



그래서 수업의 판을 뒤집기 시작했다. 나 중심에서 학생 중심으로.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니 심지어 못하게 막아도 새로 나온 게임은 기어코 해 보고야 마는 그 불굴의 정신, 사돈에 팔촌까지 인맥을 동원해 아이돌 콘서트 티켓을 광클릭으로 쟁취하고야 마는 그 집중력.

그것들의 공통점이 뭔가. 바로 목적과 의지다.

수업에는 목적이 있고 학생들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목적이 홍익인간의 이념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안 된다. 입질이 올만 한 매력적이고 가까운 미래에 의미 있는 목적이어야 한다.

가령, 이걸 알게 된다면 넌 이번 추석 명절에 어른들 틈에 껴서 당당하게 정치 얘기를 같이 할 수 있게 될 거야. 이게 초석이 돼서 넌 나중에 꽤 괜찮은 투자를 스스로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거야. 아마 이제부터는 뉴스가 귀에 들어올걸?!

어떤 때는 협동 학습을 시키면서 '이번 수업의 목표는 무조건 네 짝꿍을 이해시키는 거야.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성공해 봐. 파이팅!' 이라고 건강한 자극을 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작고 하찮은 것이라도 자신에게 역할이나 책임이 주어지면 기를 쓰고 한다.


전에는 그 많은 내용을 나 혼자 다 가르치려고 기를 썼다. 무슨 래퍼마냥 50분 동안 힘들게 떠들어 댔고, 쉰 목소리로 교실문을 나올 땐 자기 혼자만 느끼는 성취감에 쩔기도 했다.



이제는 아이들이 배울 내용을 스스로 검색하고, 이해한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모둠원들과 상의해서 부여받은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소화해 내는 그 모든 과정을 내가 계획하고 안내한다.

예를 들면 잘 짜인 보드 게임 하나를 만들고, 순서와 방법이 적힌 설명서와 주사위를 아이들에게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처음에 보드 게임을 만드는 데에는 고통이 따르겠지만, 만들고 나면 간간이 들어오는 질문에 답해주면서 아이들이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흐뭇하게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교사로서 너무 역할이 작은 거 아니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허나, 교사가 수업 50분을 왜 혼자 떠들어야 하고, 단 1분이라도 학생이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 수업은 왜 해야 하나.

이제는 교과서에 실린 지식이나 내용을 학생들의 머릿속에 당장 집어넣는 건 의미 없다. 나중에 필요할 때 파란창이나 초록창에 검색해 보면 바로 나올 것이다. 궁금하게 하는 힘, 의견을 나누는 힘, 진짜와 가짜를 구분해 내는 힘, 자신만의 스토리를 덧입혀서 세상에 표현하는 힘을 길러내주는 것이 우리 세대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교육 아닐까 싶다. 우리는 정보화 시대를 넘어서 이미 창조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나.



다행인 건 이런 변화의 바람이 분지는 벌써 10년이 다 되어간다.

아이들과 2년 간 그렇게 신나는 수업을 했고, 수업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잘 수 없는 수업 생태계를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단 한 명도 역할이 없는 학생은 없었으며, 그 학생이 역할을 하지 않으면 활동은 진행되지 않고 결과물이 나올 수 없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수업 안에서 작은 사회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었고, 그 작고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진짜 사회에 나가서 자신을 제대로 발현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물론 변하지 않는 평가 방법에 대한 갈등과 고민이 많았다. 나름대로 현안이라고 생각해 낸 것이 수행평가, 과정평가의 비율을 높이고, 지필평가의 비율은 절반 가까이 줄였다. 당시 고등학교에서 지필평가의 비율을 낮춘다는 건 획기적인 선택이었으나, 혁신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자신 있게 밀고 나갈 수 있었다. '너 하고 싶은 거 다해봐'를 허용해 준 H고등학교에 지금도 감사하고 있다.


진심이 통해서였는지 아이들도 수업 내내 활기찬 미소를 보여주었고, 수업이 엄청 시끄러웠다. 아이들이 살아 움직인다는 뜻이다. 교사도 학생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수업 모델로 호평을 받아 교사 연수에서 두 번이나 강의를 하게 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학생들이 아닌 성인들 앞에서 내 생에 첫 강사로 서게 된 것이다.

이는 내 평생 꿈에도 생각지 못한 여덟 번째 문어발을 갖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으니, 역시 행운의 럭키 세븐! 나의 일곱 번째 문어발이다.


에필로그) 현재는 다시 고3 수능과목 수업을 맡아 활동 수업은 잠시 접어두고, 일타 강사를 꿈꾸며 열심히 기출 문제 풀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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