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문어발: 북한군도 무서워하는 중2 학년 부장

by 용감한 잇프제이

최선을 다했건만, 역시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건 힘들다.

동네 인싸 아줌마 생활이 점점 시들해져 가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학교 생활에 충실했다.

너무 충실했던 탓일까?! 업무 희망원을 쓰는 학년말에 교감선생님의 호출을 받았다.

당시 교감선생님께서는 나의 고등학교 은사님으로, 교감 부임 인사를 하러 오신 날 교무실에서 마시던 커피를 사방으로 뿜었던 기억이 난다.

고등학교 때 너무 무서웠던 교련(요즘 젊은 세대들은 모르는 과목, 전쟁 대비 군사 훈련 과목이었다고 제자들에게 설명해 주면 반응은 똑같다. 구라 치지 말라고.) 선생님이셨다.

아무튼 교감실로 불려 간 나는 천청벽력 같은 제안을 받았으니, 삼십 대 중후반의 나이에 부장을 달아야 하는 것도 충격이지만, 누구나 기피하는 중2 학년 부장을 맡으라니. 인생아 덤벼라! 딱 이 기분이었다.

중2를, 그것도 한 반도 아니고 학년 전체를 맡아야 한다니.

생각보다 결론은 빨랐다. 네가 할래 쟤가 할래, 피구공 패스하듯 학년 부장자리를 놓고 토스하다가 결국 후보들 중 나이가 제일 어린 내가 공을 쥐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여섯 번째 문어발은' 중2 학년 부장'이라는 꼬리표와 함께 자라고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지긋하신 몇몇 담임 선생님들과 젊은 신규 담임 선생님들 사이에서 기특하게도 2년이나 학년 부장 생활을 이어나갔다.

누구보다 일찍 출근했고 화장실 갈 틈도 없이 일했다.

책상 달력은 처리한 일들과 처리해야 할 일들로 빈틈없이 꽉 채워져 갔다.


중학교 업무의 가장 큰 부담은 단연 생활지도다.

학부모들도 아직은 자식에 대한 단념보다는 희망이 더 많이 남아 있는 시기라, 민원도 많고 상담 신청도 많았다. 아이들은 또 어떻고. 왜 중2를 상대로 한 수많은 농담과 비속어가 탄생했는지를 처절하게 깨달았다.

처음 1년 간은 진을 빼며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고, 담임들이 미처 못한 상담을 전부 감당했다. 그러나 나의 이런 무모한 열정은 아이들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잘못 발현된 것이다.

아이들은 아이들이었다. 아직 어른들의 타당한 잔소리가 매일 필요했고, 스스로 결과를 예측하지 못해 많은 실수를 범했다.

그래서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신뢰(자신에게 관심과 애정이 있다고 신뢰하면 교사의 잔소리를 꼰대라고 놀리지 않는다.)를 바탕으로 AI 같은 생활 지도, 행동에 대한 철저한 원칙 중심의 책임 부담.

이 두 가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으며 어느덧 중학교 생활지도의 달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 숙달이 되어 웬만한 사건 사고에는 눈하나 깜짝 안 하게 됐지만, 가끔 편의점 절도나 아파트 자전거 절도 신고로 CCTV를 확인하기 위해 교무 수첩을 옆구리에 끼고 출동하는 날에는 내가 형사인지 교사인지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실제로 형사가 사건에 연루된 아이들을 만나러 오는 날도 있었다. 게임 사이트에서 아이템 사기 거래를 한 학생을 찾으러 학교에 형사가 방문한 날, 교감 선생님께 '롤'이라는 게임을 설명해 드리기 위해 회사에서 회의 중인 남편에게 전화해 게임 설명을 닦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교감 선생님은 끝내 '롤'을 이해하지는 못하셨다.



그렇게 2년 동안 발바닥부터 눈썹 정도까지의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고 나니, 고등학교로 자꾸 눈이 향했다.

10초에 한 번씩 허경영처럼 '내 눈을 바라봐'를 외치지 않고, 교양 있게 수업을 다시 해 보고 싶었다. 결국 인근 고등학교로 내신을 냈고, 미간에 패인 주름을 훈장처럼 달고 중학교를 떠나올 수 있었다.

되돌아보니,

당시에는 대한민국 모든 중2와 학부모를 상대한 것처럼 진이 빠졌으나, 교사로서 멘탈을 다지고 내공을 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역시 위기는 기회다.


어쨌든 나는 고등학교로 돌아가 우아하게 수업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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