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문어발: 동네 인싸 아줌마가 되다

by 용감한 잇프제이

나의 네 번째 문어발인 둘째 딸을 무탈하게 출산하고 나서 또다시 긴 휴직에 돌입했다.

매일 출퇴근을 하며 곁눈질로 훔쳐봤던 동네 인싸 같던 아기엄마들을 직접 마주할 기회가 온 것이다.

첫 아이 휴직 때는 집에서 아이만 돌보느라 놀이터 한 번 나가볼 생각을 못했고, 전업맘들을 마주할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이젠 첫째도 어린이집에 가야 하고 나도 어느 정도 육아에 여유가 생긴 만큼 아파트 놀이터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1차 시도

첫째를 어린이집에 들여보내고 둘째의 유모차를 끌고 무심한 듯 놀이터에 앉아 있는다.

분명 누군가는 말을 걸어올 것이다. 최대한 도도해 보이지 않게, 말 걸기 쉽게 약간 백치미도 흘려.

실패다.

이미 무리가 형성되어 있고, 그 무리는 마치 유럽연합(UN)처럼 생활의 모든 영역이 결합되어 있는 듯하다.

내가 낄 자리가 없다. 이런 된장.



하는 수 없이 당시 결혼 준비로 직장을 쉬고 있는 동생과 영혼 없이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쯤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00이 엄마시죠?"

왓썹!!!

"아 네 안녕하세요?!! 놀이터에서 몇 번 뵀어요~"

나는 옷가게 사장님도 울고 갈 상냥한 톤으로 냉큼 인사를 받아쳤다. 성공이다

그 이후로 나 역시 동네 인싸로 아줌마들 무리에 낄 수 있었다.

처음에 학교 교사라고 밝혔을 때 약간의 침묵이 흘렀지만, 내 특유의 똘기와 화통함으로 곧 그들의 일원이 되었다.



"첫째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올게~ 잠깐 애기 좀 데리고 있어 봐~"

당시 결혼 준비로 우리 집에 함께 지내고 있던 여동생에게 둘째를 맡기고 첫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러 아침 9시에 집을 나선다. 그리고는 맡겼던 첫째를 찾아 오후 3시쯤 태연하게 집으로 들어간다.

등에 센서가 달린 탓에 바닥에 내려놓기만 하면 울던 둘째를 동생이 침팬지처럼 품에 안고는 나를 씩씩대며 째려본다. 연습이라고 생각해 동생아.


그렇게 나의 줌마생활은 매일매일 활기차게, 재미지게 흘러갔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 졸업 후 거의 쉬지 않고 일을 했으니, 초등학교 입학 후 서른이 넘도록 학교에서 벗어나질 못했으니 을매나 재밌었겠는가.



복직날이 다가올수록 아쉬움은 커져만 갔고 내 머릿속에 수업이니 학생이니 학교에 대한 것들은 점점 잊혀만 갔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결국 복직 서류를 제출하러 학교에 갔다.

기대감 1도 없이 로또 번호 마킹하는 것 마냥 복직서류를 써서 행정실에 제출하는데, 작년에 같이 육아휴직을 신청한 옆자리 선생님도 복직을 하러 왔다.

서로 눈빛만 보고도 안다.

내가 먼저 한숨을 내쉬며 말을 꺼낸다.

"나 마이너스 2천 찍고 돌아오는 거야.."

그 선생님이 대답한다.

"응. 난 마이너스 3천이야.."


우리는 그렇게 군대 재입대하는 것 마냥 학교로 복귀했고, 끝인 줄만 알았던 나의 동네 인싸 생활은 학교 퇴근 후에 한동안 유지할 수 있었다. 동네 아줌마들의 의리야 말로 군대동기 저리 가라다!



낮에는 직장맘들에게 전날 전업맘들에게 들은 깨알 정보를 가르치고, 저녁에는 동네맘들과 만나 교육이나 학교 최신 정보를 전달하며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중요하고 바쁜 사람처럼 나의 삼십 대를 보내고 있었다.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고, 중요한 뭔가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오두방정을 떨며 살다 보니

그간의 우울이나 근심도 수다나 망각으로 흘려보내지더라.

물론 해결된 문제는 단 한 개도 없었다.

나의 다섯 번째 이야기다.


이전 04화네 번째 문어발: 아픈 문어발이 채 낫기도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