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문어발: 아픈 문어발이 채 낫기도 전에
생애 첫 중학교 근무, 둘째가 찾아오다
아픈 나의 세 번째 문어발은 여전히 치유 중이었다.
야속한 건 그것과는 상관없이 새로운 문어발은 계속 자라난다는 사실이다.
인생은 문제 하나를 온전히 풀어야만 다음 방문이 열리는 방탈출 같은 게임이 아니다.
문제를 미처 다 풀기도 전에 다른 방문이 동시다발적으로 열리는 게 인생이더라.
나의 네 번째 문어발은 생애 첫 중학교 근무로부터 시작된다.
지금 생각해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이유로 나의 네 번째 이야기가 시작된다.
큰아이를 친정에 맡기다시피 하며 원래 근무하던 고등학교로 복직을 하게 되었다.
강제 야자와 강제 보충수업이 암묵적으로 용인되던 그 시절. 나는 주말에만 아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일주일에 3일이 야자감독인데, 나머지 3일은 보충수업을 해야 했다.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시키고 따랐다.
스트레스가 극에 다를 때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결단을 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바로.
중학교 내신이었다.
단 한 번도 근무해 본 적 없는, 뉴스나 카더라로 소문만 듣던 그 중학생을 가르쳐 보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역시 엄마는 위대하다.
야자와 보충이 없다는 이유로 모든 걸 내려놔야 했던 중학교 교사로서의 첫 시작은 무려 중1 담임이었고,
이는 둘째 아이를 낳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그동안 고3 담임으로 국가에 충성하다가 중1 담임을 처음으로 맡게 된 날.
조심스럽게 옆자리 선생님께 여쭤봤다.
"저.. 선생님.. 요즘 중학생들은 반인반수라는데, 정말인가요?!"
옆자리 선생님은 안경 너머로 그 큰 눈을 깜빡이며 이렇게 대답했다.
"에이.. 누가 그래요! 아니에요. 그냥 100% 원숭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하하하"
What?!!!!!
농담이라고는 전혀 할 것 같지 않은 옆자리 선생님의 말이 진짜 농담이길 바라며 떨리는 손으로 교실문을 열었을 때, 난 봤다.
운동장 쪽 창틀에 한 손으로 대롱대롱 매달려 웃고 있는 아이들을.
그때부터 나의 고행은 시작되었다.
알 수 없는 고약한 냄새에 사물함까지 전부 뒤집어보니 치즈가 되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는 우유팩들.
그냥 치즈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고 한다. 다른 이유는 있을 수 없다는 듯 해맑게 변명하는 아이들.
친구의 초코에몽을 뺏어 먹은 걸로 진지하게 선도 위원회가 열리는 자리에서 어금니 꽉 깨물고 웃참해야 했던 그 고난의 시간들.
아직도 사건 경위를 진지하게 읽어 내려가다가 초코에몽을 빼앗아 달아나는 친구의 등짝에 슬리퍼를 던지는 부분에서 웃참에 실패했던 굴욕적인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결국 난 우리나라 중딩들에게 두 손들고 항복했고, 조용히 둘째를 갖게 되었다. 두 번째 휴직에 돌입하기 위한 나만의 은밀한 계획이었다.
물론 엄청난 내적 갈등은 있었다. 첫째를 출산하고 키우며 겪었던 엄청난 일들을 떠올리면 둘째를 갖는다는 건 정말 힘든 결정이었다.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갈팡질팡 고민하고 있을 때 친구가 나의 오랜 고민을 끝맺음 냈다.
친구와 오랜만에 가진 술자리에서 누가 더 인생에서 엿 먹고 있는지 목이 터져라 서로 자랑하다가 친구가 먼저 취해 쓰러졌다. 내가 이겼다.
할 수 없이 친구 언니께 연락을 드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의 언니와 남동생이 데리러 왔다.
키도 몸도 제법 큰 내 친구를 언니와 남동생이 머리 한쪽, 다리 한쪽으로 나누어 들고 실어가는 걸 보고 가슴에 큰 울림이 있었다.
그려! 형제는 아름다운 것이여!
그렇게 나의 소중한 네 번째 문어발, 우리 딸이 찾아왔다.
에필로그) 남편은 그런 나의 감명까지는 모른 채 둘째를 만드는데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