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문어발: 나의 아픈 문어발, 첫 아이가 오다

by 용감한 잇프제이

그간의 초조함이 무색한 듯 나의 결혼 생활은 생각보다 쉽게 시작되었다.

'진짜 이대로 시작하는 거야?!'를 되뇔 만큼 실감이 나지 않았다.

특별한 기반도 없었지만, 특별한 장애물도 없었다.

가장 걱정이었던 친정엄마 역시 그간의 기다림에 지쳤는지 결혼을 한다 선언했을 때 별다른 제지도 별다른 반색도 없었다.

당시 IT가 뭔지 잘 모르시는 시어머니께서 친정엄마에게 남편을 '컴퓨터 고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음에도 더 이상의 추가 질문은 없었다.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사위가 뭘 하는 사람인지 비교적 정확히 알게 되었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무튼, 결혼생활 시작과 거의 동시에 새 생명이 찾아왔으니 바로 나의 세 번째 문어발이다.

결혼이 급했던 건 인정하지만, 임신과 출산이 급했던 건 전혀 아니었다.

짐작컨대, 또 주변 친구들이 임신을 하기 시작했고 친정 엄마의 손주 타령이 있었을 것이다.

제발 니 인생을 좀 살라고!!

어쨌든 주변에서 축하가 쏟아졌고, 나는 갑자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돼버린 듯했다.

결혼 전, 심지어 임신 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보기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맘스홀릭, 레테, 온갖 임신 출산 맘카페 등등.


그간 에너지의 90% 이상을 학교에 쏟아부었다면, 이제는 몸을 사리기 시작했고 적잖이 서운해하는 녀석들도 생겼다. 미안해. 어쩔 수가 없어. 샘이 이제 막 인생 제2막에 들어섰거든.

하지만 서운함도 잠시 나의 배가 점점 커져 갈수록 아이들의 기대와 관심도 점점 커져갔다.

심지어 출산일이 다가오자 교실 칠판에 빽빽하게 후보 이름을 적어 놓고는 나보고 고르라고 재촉한다. 그중 하나가 첫째의 이름이 되었다.

그렇게 넘치는 관심과 기대 속에 우리의 첫 아이가 태어났다.



출산에 대한 별다른 공포가 없었던 나는 별다른 대책 없이 분만실로 들어갔고, 남편 역시 어정쩡한 자태로 내 옆을 지키는 것 외엔 할 일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진통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이렇게 하는 거 맞아? 이러다 죽는 거 아니냐고?!!

나는 3시간의 진통 끝에 포기를 선언하고 제왕절개 수술에 들어갔는데, 옆침대에서 같이 진통하던 조리원 동기가 나중에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말해 주었다. "언니 30분 진통하고 수술 들어갔어요..."

뭐?! 아직도 믿을 수 없다. 분명 밑으로 수박이 나오는 듯한 고통을 3시간은 겪은 것 같은데 말이다.



난생처음으로 휴직에 돌입한 나는 이제 완전한 엄마이자 아줌마로서의 생활에 빠르게 적응해 갔다.

이 작은 생명체에 나의 모든 에너지 그 이상을 쓰게 되었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소멸되어 갔다.

종이에 뇌구조를 그려보면 학교와 패션, 남편 등은 점으로 찍힐 정도였다. 점도 없었나.


당분간만 학교로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걸 알지만, 그 당분간이 영원할 것처럼 육아에 집중했다.

나에게는 꽤 힘든 고통이자 괴로움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 그런 거 있잖나. 너무 소중한 걸 갖게 되었는데 더러워지거나 망가질까 봐 눈이 퀭하도록 지키고 앉아있는 기분.

솔직히 새 생명의 탄생으로 얻은 기쁨이나 설렘보다는 부담감이나 두려움이 비교할 수 없이 컸는데 그 누구에도 그런 나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교과서처럼 임신과 출산, 육아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기쁜 일이라고 텍스트를 주입하고 암기하며 스스로를 속이는 것으로 적당히 합의를 봤다. 아무래도 우울증이었나 보다.



나의 유난스러운 노심초사가 화근이었는지, 화근 때문에 노심초사했는지 모르겠지만,

불길한 예감은 높은 확률로 들어맞았다.

커가는 기쁨을 채 느끼기도 전에 첫아이가 아프다고 진단을 받았다.

눈을 자꾸 깜빡거리는 아이를 10초 간격으로 주시하며 한 손으로는 열심히 휴대폰 검색을 한다.

눈 깜빡임, 아이가 눈을 깜빡거려요, 속눈썹 아기눈을 찔러요, 눈꺼풀경련, 경련증상, 소아경기..

검색어가 점점 전문용어로 발전할수록 나는 점점 나락으로 떨어졌다.

병원에서 뇌파이상 진단을 받고, 몇 년을 먹여야 할지 모를 약을 아이에게 처음 먹이던 날.

첫 번째 약 투여의 성공이 앞으로의 약투여를 결정한다는 그 무시무시한 말을 듣고, 약봉투를 든 채 한참을 아이 앞에서 궁리했다.

잠시 걱정도 슬픔도 잊고, 오로지 저 조그마한 입에 이 커다란 알약 두 알을 어떻게 넣을지만 생각했다.

강제로 먹일 것인가, 달래서 먹일 것인가

세상 두쪽 나도 모를 문제를 나 혼자 여기서, 그것도 지금 당장 판단해야 한다는 사실이 기가 막혔다.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한 덕인지 동전 뒤집기 같았던 첫 번째 약 투여는 반강제적으로 성공했고, 누가 보면 유치원 추첨에 당첨된 거 마냥 환호하고 박수를 쳤다.

박수가 끝났을 때 밀려드는 그 외로움은 엄마가 아니면 절대 모른다.


그렇게 나의 아픈 세 번째 문어발이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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