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문어발: 서른, 인생 제2막이 시작되다

by 용감한 잇프제이

나의 첫 번째 문어발인 교사 딱지를 붙이고 사회에 첫 발은 내디딘 지 6년째 되던 해에 나의 두 번째 문어발이 생겼으니, 바로 결혼이다.

물론 그전에도 신나게 연애를 했다.

엄마가 알면 등짝 스매싱 각인 나쁜 놈도 만나보고, 한참 연하와도 만나보고,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던 사랑꾼과도 만나봤다. 그 사랑꾼과의 인연이 내생에 마지막 인연인 줄 알았더니만 놀랍게도 지금은 다른 남자와 살고 있다.



결혼을 결심하게 된 건 자의 반, 타의 반이었다.

서른이 되어가니 주변에 싱글이었던 친구들이 약속이나 한 듯 하나 둘씩 사라져 가고, 집에서 엄마는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거냐며 나의 '미혼'을 못마땅해하셨다.

마침, 고3 담임으로 20대의 젊음을 모두 쏟아부었던 나의 반복되는 일상에도 지쳐가고 있었다.

고3 담임을 같이 하며 동고동락했던 동료 교사와의 썸으로 간간히 목을 축이기는 했지만, 결혼까지 골인하는 그 과정이 나에게는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심지어 결혼 전 마지막 남친은 신실한 신앙심으로 손 한번 잡는 것도 신성시 여기는, 내가 가질 수 없는 남자였다.

그렇게 고난의 시대를 보내게 되자 나는 신앙에 더욱 의지하게 되었고, 마침내 교회 오빠를 만나게 되었으니 그가 바로 지금의 남편이다.

남편이 이 글을 읽는다면 뒷목 잡을 수도 있지만,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다. 사실이다.

남편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회초년생과 다를 바 없었고, 나는 제법 교직에서 경력을 쌓아가고 있었던 터라 남들이 모르는 위기와 갈등이 많았다.

주중주말 구분 없이 야근을 밥 먹듯 해야 하는 남편과 그걸 받아들이기 힘든 공무원, 내가 지방에서 근무하고 주말에만 본가에 올라오기 때문에 연애도 마음껏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혼이 무지 고팠다.

결혼식도 하고 싶고 웨딩촬영도 하고 싶고, 신혼여행은 또 어쩔. 무엇보다 급한 사정이 하나 더 있었으니 바로 타시도 내신이었다.

본가에서 멀리 떨어진 탓에 매번 타시도 교류를 신청했으나 번번이 실패했고, 이제 남은 방법은 하나!

부부별거로 인한 타시도 내신 신청이었다.

이쯤 되면 남편에 대한 사랑 1도 없이 오롯이 나의 목적을 위해 결혼한 막장드라마의 못된 여주가 떠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막장드라마를 기대할 스토리는 아니다.



착하고 세상 순한 남편은 얼굴까지 하얘서 첫인상에서 80프로는 먹고 들어간 게 사실이다.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장면이 떠오른다.

예배시간에 꿈뻑꿈뻑 잘도 졸던 그 크고 힘없던 처진 눈이

나랑 대화할 때는 잠깐이지만 섬광처럼 반짝였던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고, 왠지 결혼할 사람이라는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장거리 연애를 시작한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아 타시도 내신을 써야 한다는 나의 닦달에 혼인신고를 먼저 하는데 군말 없이 동의해 준 남편.

아직도 기억난다. 혼자 강남구청에 혼인신고를 하고 나와서 전입신고 한 것마냥 담담하게 신고했다고 전화하던 남편을.

나의 이 똘끼와 무모함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지금의 남편을 만난 건 참 다행이다.

사실 6개월 만에 혼인 신고를 한다는 건 인생 최대의 모험이다. 나쁜 놈, 나쁜 년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태 신앙인 우리는 양가 부모님들의 기도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가슴속 저 깊이 믿고 있었기에 저지를 수 있었던 것 같다.



혼인 신고를 마친 다음 해 5월에 우리는 드디어 결혼식을 올렸고, 낭만의 산토리니로 무사히 신혼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그리스행 비행기에 탑승하자마자 와인을 주문하는 나의 모습에 남편은 적잖이 당황했고, 생각해 보니 교회에서 만나 짧은 연애를 하면서 한 번도 같이 술을 마셔보지 않았기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10시간이 넘는 비행시간 동안 와인과 맥주를 야무지게 챙겨 마셨고, 산토리니에 도착해서는 와인의 고장이라길래 그곳에 머무는 동안 계속 마셔줬다. 내가 술을 못 마시는 걸로 알고 있었던 남편은 지금까지도 사기결혼이라고 투덜댄다.


아! 선신고 후결혼까지 하면서 타시도 내신이 어찌 됐냐고?!

그다음 해에 무사히 신혼집이 있는 지역으로 발령을 받을 수 있었는데, 별거 기간이 짧아 순위가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몇십 년 만에 교육청에서 단행한 대규모 인사이동 덕이었다.

모든 것이 흐르듯 순탄하게 나의 결혼 생활, 인생 제2막이 시작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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