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문어발1: 신짜오 비엣남_안녕, 베트남
"자 여러분들 아직 늦지 않았어요. 지금 여기서 그만두셔도 돼요!"
베트남 주한 대사관 앞마당에서 비자 발급 신청을 기다리다가 하노이 합격자 동기 선생님이 경쾌하게 외친다.
모두 빵 터졌지만, 마음 한편엔 '진짜 여기서 그만둘까?' 하는 마음이 엄지손톱만큼은 있었을 거다.
그도 그럴 것이 비자 발급을 위해 새벽부터 베트남 주한 대사관에 도착해 베트남 노동자 분들과 뒤섞여 줄을 서있다 보니, 아 우리도 이제 외국인 노동자가 되는구나 실감이 났다.
낯선 베트남 글자가 가득한 서류를 받아 들고는 문화도 문자도 잘 모르는 이국땅에 가서 정말 2년을 살아야 하는구나 하는 불안감도 엄습해 왔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하노이 동기들은 교통편이나 숙박, 서류 준비 등 각종 정보를 서로 주고받으며 베트남으로 떠날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나는 대부분의 하노이 동기 선생님들과는 또 다른 특별한 준비를 해야 했으니, 바로 남편, 아빠와의 분리이다.
한창 한국에서 커리어를 쌓고 있는 남편은 직장을 그만두고 베트남을 따라갈 수 없는 상황인지라, 내가 아이 둘을 데리고 하노이로 떠나기로 했다. 정말 용감무쌍한 결정이다.
가능했던 이유는 하노이한국국제학교 교사로 채용되면 자녀들도 자동으로 하노이한국국제학교에 함께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메이드의 도움을 받으면 살림까지 커버 가능한 생활환경이었기에 가능했다. 아니 가능할 거라 믿고 떠났다.
4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하노이
모든 이삿 짐은 배로 먼저 보내고, 당장 필요한 옷가지와 살림 몇 개만 캐리어에 챙겨서 하노이로 떠났다.
하노이에서 거주할 아파트를 구하는 일이 가장 큰 일이었는데, 나의 특기를 발휘하여 인터넷 검색을 통해 이미 하노이한국국제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많이 옮겨가고 있다는 신상 아파트를 찾아냈다.
역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한 달 가까이 눈알 빠지게 검색하다 보니 진실되고 성실하게 아파트 매물을 소개하는 한국인 중개업자의 블로그를 알게 됐고, 카톡으로 연락을 취해 현재 하노이한국학교 선생님들이 많이 옮겨 오고 있다는 확인까지 한 후 과감하게 계약을 했다.
온라인으로 집을 구하는 나도 참 대단하지만, 온라인으로 집을 보여주겠다고 카톡 생중계로 매물을 소개해 준 부동산 중개사도 정말 대단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일단 하노이 호텔에 머무르며 직접 발품을 팔아 집을 구했고, 그게 일반적이고 안전한 방법이다. 그러나 요즘 어떤 시대인가.
메타버스에도 돈을 지불하며 자산을 구축하는 시대에 온라인 생중계 또한 못 믿을 거 뭐 있나.
실제로 부동산 중개사는 베트남 직원을 데리고 다니며, 수돗물을 틀어 보이고 변기물까지 콸콸콸 내려 보이는 명장면을 생중계했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보석 같은 아파트라 세상 착한 가격에 집을 구할 수 있었다.
호텔이 아닌 아파트로 바로 입주하는 나의 대담함에 하노이 동기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이어 많은 동기들이 내가 먼저 들어간 아파트로 입주하게 되었다.
가끔 내가 나를 보고 놀랄 때가 있다. 바로 이럴 때다.
이런 내가 너무 싫은데 또 너무 좋다.
하노이한국국제학교
재외 한국국제학교 중 규모가 가장 크다고 했다.
내가 맡은 첫 업무는 인문사회과학부에 인문사회업무다. 교무기획이나 연구부 같은 핵심 부서는 아닌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재외학교에서 인문사회부는 핵심 부서 중 하나였다.
한국에서는 너도 나도 가고 싶어 하는 인기 부서에 왜 지원자가 없었는지 알았다.
하노이의 찜통 같은 더위에 적응도 하기 전에 맡은 첫 번째 미션은 '도전 통일 골든벨'이었다.
전에 중2 학년 부장을 할 때, 학년말 프로그램으로 체육관에서 해 본 경험이 있어서 마침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회의를 하고, 행사 준비를 하면서 점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거 그냥 학교 골든벨 아닌데?', '이거 방송국 도전 골든벨인데?!'
결국 베트남 주한 대사 및 관계자들과 학교 이사회, 교민사회 유명 인사들을 한자리에 초청해서 생방으로 골든벨을 진행한 후, 골든벨을 울린 학생은 한국의 '진짜' 도전 골든벨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는, 아 다시 생각해도 아찔, 어마어마한 행사였던 것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집에 아이들을 데려다 놓고 메이드에게 집안을 맡긴 뒤 세마이(오토바이)를 타고 학교로 다시 돌아와 밤낮으로 행사 준비를 했다.
행사 당일 인이어까지 꽂고 방송반 아이들을 진두 지휘하는 나의 모습은 방송국 PD 저리 가라였다.
갑자기 교무수첩 옆에 끼고 형사놀이 했던 학년 부장 시절도 떠오른다. 난 왜 이러냐 진짜.
작년에 골든벨 행사 업무를 똑같이 맡았던 선생님이 조용히 다가와 귀에 속삭인다.
"많이.. 놀라셨죠..?"
학급 담임은 10학년 담임을 맡았다. 오랜만에 담임이다.
10학년은 한국에서 고1이다. 외국은 12학년제이기 때문에 초1부터 고3이 한 학교에 같이 다니고, 1학년과 4학년인 우리 아이들도 저 밑에 층 어딘가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국제학교다 보니 외국인이나 다문화 아이들이 많을 줄 알았는데, 90% 이상이 한국 학생이다.
대신 한국 생활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아이들이 꽤 많았다. 마인드와 생활 방식이 외쿡인인 것이다.
우리 반에는 서너 명의 다문화 아이들이 있었고, 다문화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완전히 한국화 되어 있었다.
딱 한 아이만 빼고.
우리 반 아이들은 한국에서 기꺼이 날아와 준 나를 환대해 주었다.
최신 한국 근황도 무지 궁금해했고, 내가 하노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무지 궁금해했다.
한 달쯤 지났을 때 한 녀석이 묻는다.
"선생님 근데 왜 안 놀라세요?"
"뭘?"
"너무 덥지 않아요? 왜 안 놀라세요?"
놀랐다. 아무리 동남아라지만 50도는 족히 될 것 같은 하노이의 여름은 미치고 팔짝 뛸 정도다. 그런데 곧 죽어도 하노이 뉴스에는 39도라고 나온다. 진짜 뻥이다.
한 학급에 한 명씩 에너지 지킴이가 있는데, 한국에서는 반 이동을 할 때나 하교 시 불을 끄는 역할을 한다. 하노이에서의 에너지 지킴이는 이동 시 에어컨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는 역할을 한다. 둘 다 지킴이는 맞긴 맞네.
한국인 특유의 정서로 우리 반 아이들과 나는 곧 끈끈해져서 강강술래라도 돌 지경이었다.
학급 단합 대회를 하고, 하롱베이로 수학여행을 가고, 체육 대회를 하고 한국에서와 똑같이 아이들과 잘 지내는 나를 스스로 기특하다 토닥이며 하노이 생활에 잘 적응해 갔다.
나의 열 번째 문어발은 그렇게 하노이의 뜨거운 태양아래 무르익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