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에피소드2 : HANOI 어두운 단면 1
한국인으로 하노이에서 생활하는 것 자체는 불편함보다 편리함이 많은 듯했다.
처음 하노이 생활을 시작할 때는 한국에서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넘치게 경험하며 생활의 여유로움에 취해있었다.
퇴근하고 들어오면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집.
가격 따지지 않고 넘치게 즐기는 온갖 열대과일.
저렴한 물가에 필요 이상으로 낭비하는 온갖 물건들.
저렴한 호텔 회원권으로 호캉스 즐기기 바빴던 주말.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자랑하기 바빴고, 내 삶이 정말 풍족해진 것만 같았다.
우리 집 메이드를 만나게 된 건, 메이드 소개 어플을 통한 우연이었다.
첫 방문 때 혹시나 하고 영어로 말을 걸어보니, 즉각 영어로 대답을 해서 얼마나 반가웠던지.
내가 영어를 잘해서가 아니라 베트남어를 전혀 몰랐기 때문이다. 자세히 물어보니 하노이에 있는 삼성 공장에서 근무한 이력이 있는 능력자였다.
영어를 나보다 유창하게 하는 그녀의 이름은 Ha였다. 내가 '하?' 하자, 멋쩍은 듯 'Yes, just Ha!'라고 웃으며 대답하는 모습이 어찌나 순진해 보이던지.
Ha는 손이 야무지지는 않았지만, 나의 요구 사항을 빠짐없이 잘 들어주었고, 간간히 베트남에서 조심해야 할 것들에 대해 알려주곤 했다.
햇빛에 그을린 얼굴에 작은 키, 야무져 보이는 표정은 삼십 대 중후반으로 짐작케 했으나 그녀의 나이는 놀랍게도 스물일곱이라고 했다. 아들이 있다는 그녀에게 대체 몇 살에 결혼한 거냐 물으니 스무 살이 갓 넘자마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한국이면 실례가 될 수도 있지만, 어차피 서로에게 이방인인터라 서로 부담 없이 궁금한 걸 묻곤 했다.
남편에 대해 물으니 현재 아파서 일을 쉬고 있다고 한다. 세상에. 어디가 아프냐고 물으니 몇 년 전 일하다가 손가락을 살짝 베었는데, 그 길로 쉬고 있다고 한다. 쭈~욱.
"..... Why?"라고 묻고 싶은 걸 꾹 참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뒤로는 보너스도 챙겨주고 신박한 한국 아이템들이 있으면 챙겨주곤 했다.
수줍은 얼굴로 감사의 말을 대신하던 그녀는 어느 날 친정에서 가져왔다며 베트남식 햄을 냉장고에 넣어 놓고 갔다.
선물을 주면서도 혹시 내가 싫어하거나 불편해하진 않을지 눈치를 보는 Ha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곳에서 누리고 있는 것들은 온전히 나의 것일까.
많은 베트남인들이 한 달 몇 십만 원의 수입으로 생활하고 있음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그들의 문제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가끔 생각나면 챙겨주는 소소한 것들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한 것마냥 자기만족에 빠지는 것. 그게 다인가.
'타인의 고통(수전 손택)'이라는 책을 보면, 타인의 고통과 결핍을 보고 우리가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는 건, 즉 공감은 일종의 감정 소비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소비하는 것이다.
어느 날은 딸기 맛, 어느 날은 초코 맛이 땡겨서 골라 먹는 아이스크림처럼, 우리는 채널을 넘기다가 예능을 보면 웃음을 소비하고 난민 다큐멘터리가 나오면 슬픔을 소비한다.
그리고 다른 채널로 넘어가면 슬픔은 고새 끝난다.
수전 손택은 우리가 불쌍한 사람을 보고 눈물짓는 것에서 끝내 버린다면, 그건 타인의 고통을 소비한 것에 불과하다고 혹독하게 지적한다.
예전에 제3 국가에서 기부를 거부하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더 이상 자신들의 아픔과 가난을 소비하지 말라고.
정말 자신들의 고통을 함께 감당하고 나누고 싶으면 빵이 아닌, 빵 만드는 기술과 공정한 대가를 나눠 달라고 호소한다.
타인의 고통을 '소비'가 아닌 '연대'하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최대한 공손하고 친절하게 대하기.
삶 속에서 진지하게 그들을 격려하고 인정하기.
내가 가진 것과 그들이 가진 것의 가치를 함부로 비교하지 않기.
내가 경험하지 못한 환경에서 묵묵히 삶을 이어온 그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기.
이런 삶의 태도가
가끔 인심 쓰듯 손에 쥐어 주는 지폐 몇 장 보다
홀로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그녀를 더욱 단단하게 해 주리라 믿는다.
나는 그녀를 진심으로 존경했고 응원했다.
불러오는 배를 쓸어내리며, 둘째를 임신했다고 해맑게 웃던 Ha.
출산 직전까지 일할 수 있다며, 그 큰 배를 짊어진 채 힘겹게 우리 집 일을 했다.
만삭의 배 때문에 바닥에 떨어진 먼지를 잘 보지 못했지만, 쉴 수 없는 그녀의 사정이 딱해서가 아니라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인생을 진심으로 존경했기에 나도 묵묵히 동조했다.
Ha의 출산일 전 날,
마지막으로 우리 집 일을 마무리하겠다고 달려온 그녀의 옆에는 남편과 아들도 함께였다.
진심이 담긴 퇴직금 봉투와 우리 아이들과 정성껏 고른 선물까지 전달하고 나니,
한 사람을 만나 헤어지는 처음과 끝이 이렇게 귀한 것이구나를 느꼈다.
하노이 초반 생활에 느꼈던 풍족함에 취해있던 나에게,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의 단면을 볼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Ha의 이야기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정현종 시 '방문객' 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