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에피소드3 : HANOI 어두운 단면 2
하노이한국국제학교에서 첫 담임을 하며 썼던 일기장이다.
우리 반 장기 결석 중인 한베가정 학생의 가정 방문을 위해 베트남 원어민인 Lan샘과 함께 길을 나섰다.
학생의 어머님이 베트남 분이시라 통역이 필요했고, 아파트가 아닌 베트남 현지 가정집을 주소만 들고 찾아가기엔 나 혼자서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제 나이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힘든 사춘기 17살 이 소녀는 어른들이 떠넘긴 생활고와 가정 불화까지 짊어진 채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TV도 없는 친척집 주방 한 켠에 옹색하게 자신의 자리를 마련한 이 소녀는 그곳에 앉아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한다.
친구가 없고, 베트남어와 한국어 둘 다 완벽하지 못하다. 그뿐인가. 한국인 아버지는 연락이 안 되는데 집도 없고 돈도 없다.
스쿨버스비를 내지 못해 몇 시간을 걸어오는 것 외엔 지속적인 등교 방법은 없어 보인다. 학교 급식마저 중단이다.
하노이에는 복지는 고사하고 생계 결핍을 위한 사회적 시스템이 전무한 듯하다.
학교도 사립 국제학교이기 때문에 수익자부담금을 납부하지 못하면 그냥 OUT이다. 12일 남았다.
학교도 사회도 기댈 틈을 주지 않는 베트남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다.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나름 고급 간식이라고 사간 베이커리 봉투가 괜시리 낯부끄럽다.
지금 이 친구에게 필요한 건 순식간에 사라질 달콤한 간식이 아닐 텐데 말이다.
정부의 허가 없이 종교활동이 금지되어 있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기적적으로 교회를 다닌다는 이 학생의 어머니는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베트남어로 1시간 이상을 울며 호소한다. 마주 잡은 내 두 손위로 따뜻한 눈물 한 두 방울이 간헐적으로 떨어진다. 두 손이 꽉 잡혀있기 때문에 닦을 수도, 닦아 드릴 수도 없다.
말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표정으로 읽는다.
여자의, 엄마의 고단한 삶을.
그 와중에 '예수님'이라는 말은 정확하게 한국어로 말한다. 내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나 보다.
안 그래도 오늘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며 BGM으로 들은 찬양이 떠올랐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내가 세끼 밥을 챙겨 먹고 직장을 다니며 가족과 함께 내 집에 머무를 수 있는 이 평범한 일상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구나.
가정방문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운전자가 즉사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다소 익숙한 듯 사고 난 자리에 향을 피우는 베트남 사람들.
그래, 내 호흡마저도 주의 손에 달렸는데, 얼마든지 내가 가진 이 모든 것을 순식간에 거둬가실 수 있는데.
지금 내가 이렇게 숨을 쉬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다 주님 은혜 때문이구나.
2019.11.07 오전 12:52
우리 반 그 아이는 그 이후로도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한국의 정서를 최대한 반영하여 학교에서도 몇 년째 미납금을 눈감아 주었다고 하니 나름 최선을 다한 듯하다. 그동안 이 아이의 담임교사로 거쳐간 선생님들의 물심양면 또한 한몫했으리라.
한국인 아버지를 닮은 듯 전형적인 한국인 외모를 가진 이 아이의 꿈도 한국에 가는 거라고 했다.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아이의 아버지에게 아이 어머니가 몰래 종이에 써서 내 손에 쥐어준 카톡 아이디로 보이스톡 연락을 시도해 본다.
카톡 아이디를 검색하니 가수 활동을 홍보하는 카톡 대문 사진이 나온다. 하노이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삶을 알고 있다면 노래가 나올까 싶었다.
짐작한 대로 받지 않는다.
베트남에는 건강하고 행복한 한베가정이 많다.
나에게 집을 소개해준 중개인도 한베가정인데 여자가 한국인이고 남자가 베트남인이다.
둘 만의 이야기를 어찌나 재밌게 포스팅하는지 구독자도 많다.
우리 앞 집에 살고 있는 상민이네 가정도 한베가정인데, 아빠가 한국에서 왔다 갔다 하지만 가족끼리 사이도 돈독하고 아이들은 베트남어와 한국어를 모두 마스터한 미래의 인재다.
그럼 우리 반 아이의 경우, '운이 없었다'는 말로 상황을 얼버무리면 될까.
가장 큰 잘못은 대책 없는 행동을 하고, 끝까지 책임지지도 않는 그 사람에게 있다. 생명유기와 뭐가 다를까 싶다.
그다음은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환경에서 불운하게 태어나 어쩔 수 없이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이들에게 어떤 대안이나 기회도 제공하지 않는 그 사회의 잘못이다.
개인의 사정일 뿐 사회가 연대하기는 어렵다고 말하기엔, 그 사회가 너무 개인들의 피땀눈물에 의지해 돌아가고 있지 않은가.
내가 마주한 하노이의 두 번째 어두운 단면이다.
에필로그) 결국 우리 반이었던 그 아이는 다음 해에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고, 가끔 sns를 통해 여전히 한국을 소망하는 쓸쓸한 아이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