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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k parks at the park Sep 25. 2023

학생부 종합은 왜 교실을 더 비교육적으로 만들고 있는가

거래적 성격의 교육이 가져오는 교육의 비교육화 현상

한국교육의 역사를 아주 짧게 정리한다면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에 의거한 경쟁과 경쟁완화를 목표로 하는 정책의 반복이다. 오직 시험을 통해 무한경쟁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에서 그 부작용을 완화하고자 하는 정책으로 옮겨가는 식의 일종의 작용과 반작용이 기능하는 방식으로 교육정책이 옮겨간다. 

그런 교육사적 흐름에서 전자의 경우, 즉 5지선다형으로만 이루어진 표준화 시험을 통한 입시의 폐해는 매우 잘 알려져 있고 우리 국민 모두가 이미 체감하고 있기에 논외로 한다. 이번 글에서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온 입시전형, 구체적으로는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지칭되는 입시전형을 비판하고자 함이다. 결론적으로 학생부 종합전형은 기존 표준화 시험의 폐해를 완화시켜주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매우 반교육적인 면을 학생들에게 체화시키는 나쁜 전형이라는 점을 주장하고자 한다.


수시전형의 득세와 학생부 종합전형의 고착화

우리나라의 교육제도와 환경은 어찌보면 혁신을 쫒아오면서도 어찌보면 반복되는 유행의 사이클로 보여지기도 한다. 세계적으로 화두가 되는 교육적 이슈를 끌어와 제일 먼저 시도하려는 과감함이 보여지기도 하지만, 단순히 이전 교육정책의 문제점으로 인하여 용도폐기하듯이 버리고 그 대척점에 서있는 교육사조와 정책을 받아들이는 패턴을 반복하는 경향이 비일비재하다. 학생부 종합이라는 현재 수시대입체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전형인 학생부 종합전형에 대해서도 비슷한 얘기를 할 수 있다. 객관식 표준화시험 위주의 선발과정이 교육현장에 미치는 부정적인 결과로 지나치게 경쟁위주의 교육을 조장하고 단순 암기식 교육으로 인한 창의성개발이 결여된 척박한 교육환경을 만든다는 반성에서 수시위주의 '학생부 종합'전형이 급속도로 도입되었다. 이 제도는 다 알고있다시피 미국의 입학사정관제를 '수입'하여 변형한 선발제도이다. (그러나, 두 전형의 도입초기 취지는 매우 다르다!). 새로운 전형을 통해 아마도, 과도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경쟁적 교실을 지양하고 깊이있는 교육과 창의성 교육을 할 수 있는 그런 교육환경을 목도했을 것이다. 도입취지 자체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다. (상기한 바와 같이 세계적 트렌드를 쫒아간다는 관점에서도 설명할 수 있는 것이일본의 유토리 교육 등에서 이전 사례를 살펴볼 수 있겠다.) 이후 수시전형은 정시전형의 비중을 넘어섰고 그 수시전형에서 가장 핵심적인(실제 비율을 볼 때 학생부 교과전형이 더 많지만, 서울권 주요소재 대학들의 선발비중 중 학생부 종합전형이 매우 높으므로 핵심적이라는 판단을 한다.)전형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학생부 종합전형에 대한 비판이론이 불거지자 교육부는 '대입공정화방안'이라는 발표를 통해 학생부종합전형의 비중은 다소 줄였으나 여전히, 서울에 소재한 소위 이름있는 대학들의 주력 선발방식은 여전히 학생부 종합전형이다. (차츰 '학생부교과'전형도 서울대를 위시하여 대학들이 사실상 명칭과 달리 학생부 종합 전형의 성격을 띄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향이 짙다.) 그렇다면 이러한 핵심전형인 학생부 종합전형이 현실과는 달리 오히려 ‘비교육’적인 전형인지에 대해서 얘기해 보고자 한다.


왜 더 좋은 교육을 위해서 궁리한 방법이 더 비교육적인 것이 되는가?


거래를 통한 교육

‘샘 이 활동 참가하면 학생부 기재해줘요?’

학교에서 어떤 교육활동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학생들에게 알릴 때 흔히 듣던 말이다. 참가에 대해서 선택권이 주어지는 교육활동의 경우, 학생들은 선택의 잣대로 ‘입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입시의 방편 중 학생부 종합전형을 고려할 때 이러한 교육활동에 대한 취사선택은 필수적으로 동반된다. 사물에 빗대어 설명하자면 입시라는 ‘현실적 효용’에 맞지 않는 오래된 물건과 같은 교육활동은 버려지게 된다. 어떤 활동의 교육적 가치는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고, 그것 자체가 교육의 효용이 있을진데 이런식으로 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사도 교육활동의 가치를 생기부 기재에 초점을 두고 설명할 수 밖에 없고 그런식으로 유도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활동은 일종의 ‘거래’가 된다. 니가 활동하면 기재해 준다는 식의…교육의 목적이 입시에만 있지 않고, 사회생활의 근간이 되는 기초적인 덕목을 가리치는 것도 있다고 칠 때, 과연 이런식의 거래행위에서 배제되는 다른 모든 가치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저신뢰사회로 만드는 교육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중요한 요소로 포함되는 생활기록부는 수치로 표현된 성적이외에 학생의 다양한 학교활동 및 교육활동에 대한 교사의 기술 부분이 있다. 대학에서는 보통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이 생활기록부의 데이터를  평가하게 되는데 문제점은 이 생활기록부의 ‘신뢰도’가 매우 낮다는 점이다. 

신호이론에 따르면 지원자는 자신의 매력도를 높이기 위한 신호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학생부에서는 이것이 대체로 부풀려진 자료를 통해 매력도를 높이게 된다. 생활기록부를 기재하는 주체인 교사들은 이러한 신호이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평가하고 적을까하는 고민보다, 어떻게 기재하면 더 매력적인 지원자로 보일 수 있도록 그 지원자에 대한 생활기록부 프로필을 만드냐에 신경을 더 쓸 수 밖에 없다. 이는 입시경쟁에 내몰린 조직단위로서의 학교의 구성원으로서 가질 수 밖에 없는 부담이며, 학생,학부모로 부터 짊어지게 되는 과도한 요구사항의 부분으로 받아들여 지게 된다. 이에 교육부의 생활기록부 기재에 대한 지침도 교사의 과도한 부담에 한몫을 한다. ‘모든 학생’에 대해서 어떤 내용이라도 기재하라는 지침은 신호이론에 의한 경쟁심리때문에 모든 학생을 좋은 내용으로 꽉 채워(생기부 기재 최대 한도까지)야 한다는 부담으로 이어지게 된다. 또한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잘못된 기대의식도 원인 중 하나이다. 분명히 생기부 기재의 권한은 교사에게 있음에도 모두들 입시가 걸린 자료이므로 ‘잘’ 적어야 한다는 매우 잘못된 욕구와 기대를 하게 된다. (상대평가로서의 수치화 된 성적은 기대만으로 올려달라고 할 수 없지만, 이외의 생기부 기재내용에 대해서는 자신의 수행능력과 보여준 자질에 상관없이 좋은 내용을 채워달라는 기대만 가득하다. 역시 이에는 교육부의 가이드라인도 한몫한다. 부정적내용은 대체로 기재하지 말고 기재하더라고 발전가능성과 함께 기재하라는 내용으로 '정확한'평가가 불가하게 한다. 오죽하면 교육청단위로 교사 대상으로 하는 생기부 기재 연수에서 대체로 제목이 ‘잘 적어주는’ 방법이 대부분일까? 선발주체인 대학도 문제가 있다. 대학들은 이러한 부정확하고 부풀려진 생활기록부의 내용을 자신들만의 ‘노하우’로 잠재력 있는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말의 신뢰도도 매우 낮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대학마다 다르지만 어떤 대학은 면접을 통해 신뢰도를 검증한다고 하지만 그 면접조차 몇분 내외이고, 그 면접조차 하지 않는 대학들도 부지기수이다.(교육부에서도 학생부종합전형에서의 면접을 권장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기준에서 어떻게 선발되었는지 대학들이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연수와 자신들이 발간한 자료를 통해 소명한다고는 하지만 추상적인 개념만 소개하거나 턱없이 부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가장 우려되는 것은 학생들에게 앞으로 살아갈 사회가 매우 저신뢰 사회가 될 것이라는 점을 체화시킨다는 것이다. 대충 짜깁기한 자료를 그럴싸하게 써준 내용으로 대학을 간다라는 것을 경험한 학생들이 앞으로의 사회에서 어떤 것을 기대하게 될까? 


반지식을 추구하는 잘못된 교육

수시, 그리고 지금 비판하고 있는 학생부 종합전형이 주된 입시의 방향으로 자리잡으면서 파생된 가장 큰 문제점은 ‘역량’중심 교육이라는 교육관을 기치로 오해되어지고 있는 ‘반지식’적 교육방향이다. 학생부종합전형이 대세가 되어가면서 대학 및 교육부에서 그 이론적 배경으로 추구하는 교육방향 중 가장 크게 강조되어지는 것 중의 하나가 ‘역량중심교육’이다. 아마도 전세계적으로 역량이라는 키워드가 각광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 역량이라는 단어가 한국에 들어오는 과정을 보면 큰 오해와 과장이 내재되어있다. (마치 ‘4차산업혁명’이라는 단어의 시작은 외국이지만 그것을 지나치게 증폭시켜 쓰고 있는 한국의 상황처럼). 기본적으로 역량이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방향과 의미가 매우 넓어서 정의하기 쉽지 않으나, 문제는 한국에서는 이 역량이라는 단어가 반지식적인 방향의 교육활동으로 오해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전의 우리 교육의 문제점으로 회부되던 ‘암기’위주 교육의 반대급부로 역량중심교육이 이해되어지고 기존방향에 반하는 방향으로 가르치는 것이 옳바른 방향이라고 오해되어지고 있다. 한 번은 유명 TV 방송에서 모 중학교 교사가 나와서 ‘이젠 구글로 찾아보면 다 나오는 세상이니 지식이 필요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걸 보면서 기겁한 생각이 난다. 모든 지식은 인터넷에 있으니 이제는 ‘암기’할 필요없이 필요한 것을 찾아내고 짜깁기하는 능력이 역량이라고 지칭하고 이해하는 모습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역량에 대한 빈약하고 어설픈 정의와 이해는 교실수업에 그대로 적용되어 수업시간과 창의활동시간에 온갖 주제에 대해서 짜깁기한 자료를 가지고 발표하는 것이 너무나 흔하게 목격된다. 그러나 명백하게 이는 잘못된 방향이다. 역량중심강화교육에 대한 해석이 다양할 지라도 절대로 장기‘기억’된 지식을 폄훼하지 않는다. 사실 교육을 정의할 때 가장 보편적인 정의는 한마디로 학습을 통해 이루어지는 ‘장기기억’화이다.  교육을 수행한 대상자의 머리속에 장기기억된 그 지식이 결국 교육인데, 이 역량중심교육에 대한 엉뚱한 오해와 그로인한 잘못된 방향의 교육은 그 지식이 필요없고 기억도 필요없다는 식으로 잘못 이해되고 강요되어지고 있다. 창의력도 강조되어지고 있는데 뇌과학적으로 창의력의 근간은 ‘지식’이다. 머리속에 아무런 지식도 없이 하늘어 떨어지다시피한 창의력은 생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교실수업에서 지식을 가르치면 그것이 반교육적이고 창의력을 방해할 듯이 생각하며 가르치는 교육은 매우 위험하고 잘못되었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 생활기록부중심의 교육활동들이며 그것의 배경이 되는 것이 학생부 종합전형이다. 


암기식 교육과 표준화 시험의 폐해를 완화?

암기식 교육을 바탕으로 한 표준화 시험을 통한 과도한 경쟁이 학생부종합전형의 도입으로 완화되었는가? 아니라고 본다. 먼저 학생부 종합전형은 과도한 경쟁을 전혀 완화시키지 못했다. 학생부 종합전형은 마치 ‘경쟁’없이 모든 학생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키우는 교육을 하는것처럼 포장되지만, 절대 ‘경쟁’은 없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학생부 종합전형이 대세가 되고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서울권의 유수한 대학들이나 의과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창의력을 고갈시키는 단순암기교육과 문제풀이 교육의 폐해? 학생부 종합전형을 통해 학생들의 창의력이나 단순암기교육을 넘어서는 역량이 더 개발되었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오히려 상기한 바와 같이 어설프게 오역한 역량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역량을 포장하는 기술만 늘리게 할 뿐이다.


이러한 점들 이외에도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으나 그 부정적인 폐해 중 비교육적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주로 비판해 보았다. 이러한 폐해를 가진 학생부 종합전형는 명목상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수정,보완, 축소되어야 하는 전형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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