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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r 12. 2020

코로나19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작은 공? 큰 공? 코로나19가 바꿔버린 우리 삶의 풍경들 

코로나19로 인해 바뀐 풍경들. 


아침 출근길에 마스크를 꼭 챙긴다. 초반 몇 주간은 이게 버릇이 안 되어서 마스크를 가지러 다시 집으로 들어간 적도 많았다. 평소처럼 풀메이크업을 하고 나서 마스크를 쓰면 꼭 화장이 다 묻는다. 이게 짜증이 나서 며칠간은 파운데이션을 안 한 채로 마스크만 쓰고 출근하기도 했다. 훨씬 편하다. 사무실 안에서도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다 보니, 굳이 하루종일 안 벗을 건데 두꺼운 화장을 하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아침 출근시간을 훨씬 단축해주는 일이다. 코로나의 몇 안 되는 순기능이라고 하기엔, 마스크를 접촉하고 있는 하관 쪽 트러블이 늘어나는 부작용이 생겼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좁쌀 여드름들이 잔뜩 생겼다. 뼈를 내주고 살을 취한 기분이다. 코로나19가 끝나고 나면 아무래도 피부과를 좀 가야할런지도. 


재택근무를 하는 곳들이 늘어나면서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 풍경도 달라졌다. 불행하게도 우리 회사는 재택근무를 하는 기업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대신 다른 회사들이 재택근무를 해주면서 출퇴근시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조금은 줄어들었다. 우리 회사는 재택근무 대신 탄력근무제를 시작했다. 출근을 8시에서 11시 사이에 자유롭게 하고, 대신 퇴근을 3시부터 자유롭게 하라는 식이다. 그렇다 해서 하루 8시간 근무를 채워야 하는 부분이 변하지는 않아서 어차피 일정 시간을 일해야 하는 건 똑같다. 다만 출근과 퇴근 시간을 조금만 빗겨 갈 수만 있어도, 시루떡처럼 2호선에 바글바글 실려서 출근을 하는 일은 없어지니 훨씬 안심이 된다. 출퇴근시간 지하철엔 빈자리가 있어도 앉지 않는 사람들이 꽤 늘었다. 아무래도 빈자리에 끼어 타서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늘리고 싶지 않은 심리가 작용한 것 같다. 지하철 손잡이를 맨손으로 잡기 싫어 라텍스 장갑을 끼고 다니는 사람들도 더러 보이기 시작했다. 


길거리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길을 메운다. 디스토피아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누군가 기침하는 소리만 들려도 그 사람을 쳐다보게 된다. 혹시라도 확진자를 마주칠까봐 길에서 사람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친구들 모임도 대폭 줄어들었다. 여러명이 있는 단톡방에선 '우리 회사 누구가 확진을 받아서 건물이 폐쇄되었다'라는 소리가 매주 들려온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약속을 잡았다가도, '확진자가 해당 건물을 다녀갔다'던가 '회사에서 확진자가 나왔다'라는 소리가 들려 약속이 파토나기 일쑤다. 자가격리에 들어간 친구들도 여럿 생겼다. 루머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겨나고, 카톡방은 연일 코로나19와 관련된 이야기를 퍼 나르느라 정신이 없다. 


오랫동안 계획했던 여행을 취소했다. 원래는 3월 말, 워싱턴에 거주하는 지인을 만나러 출국할 예정이었다. 비행기표와 호텔을 모두 예약했으나 코로나19 이슈가 점점 심해지면서 결국 여행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미국에 입국하려면 검역절차를 거쳐야 하고, 인증을 받는다 해도 미국 현지 도착 후 또 추가검사가 이어진단다. 내가 가려고 했던 뉴욕시의 시장은 한국을 거쳐 온 모든 여행객에 대해 2주간의 자가격리를 권고했다. 미국 내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증오범죄가 슬슬 시작된다는 뉴스 보도도 이어진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느 날 갑자기 입국금지를 발표할지 알 수가 없어 불안했다. 여행 가기 전에 발표가 난다면 괜찮지만, 비행기를 타고 한창 가고 있는 도중에 결정이 난다면 미국에 발도 못 디뎌 보고 그대로 도로 입국하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주변에서도 지금 여행을 하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라며 말렸다. 다행히 항공사와 호텔에서는 무료로 일정변경과 취소를 도와주었다. 천재지변 앞에서 인간은 참으로 나약하다. 


코로나19는 언제쯤 끝날까. 병원에 있는 지인은 4월에 정점을 찍고 7~8월은 되어야 소강기에 접어들거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했다. 앞으로도 4~5개월은 더 코로나19 이슈에 시달려야 한다는 소리다. 그런데 요즈음은, 왠지 그마저도 장밋빛 전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소강 국면인 것 같다가도 다시 시작되고, 또 소강인가 싶었는데 또 다시 들불처럼 번지는 추이를 보니 어쩌면 이 바이러스는 앞으로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아가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그것대로 무서운 생각이다. 미래 디스토피아를 그린 어느 영화가 이보다도 더 무서울까. 현실은 때로 영화보다 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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