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편견이 얼마나 끔찍한 공포인지를 보여주는 영화, <겟 아웃>
(주의)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각자가 겪는 공포는 사실 많이 다를 것이다. 여성으로서 내가 겪는 공포는, 늦은 시간 집으로 귀가하는 길에서 가장 극대화된다. 하이힐 소리를 내며 퇴근하는 길, 골목에서 누군가를 마주치기라도 하면 갑자기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떠오르며 등 뒤로 이유 모를 소름이 돋곤 한다. 누군가는 그런 나에게 과도하게 예민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잠재적 범죄자인 것은 아닌데 굳이 왜 그렇게까지 모든 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약자들이 겪는 삶의 공포란 사실 삶의 경험에 기반해서 - 이는 단순히 여성만의 문제도 아니고 - 순간 순간 겪는 차별적 상황들이 모두 쌓여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강자, 혹은 다수자는 알지 못하는 일상적 차별과 공포. 이 영화는 바로 그런 소수자의 공포를 다뤘다. 그렇기 때문에 더 구체적이고 더 무서운 공포를 이 영화를 통해 볼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이 영화 <겟 아웃(Get Out)>은 미국을 배경으로, 아직까지 잔존해 있는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차별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라고 말하려 한다.
영화는 주인공 크리스(다니엘 칼루유야 분)의 시점으로 다뤄진다. 흑인인 크리스는 주말을 이용해 백인 여자친구 로즈(앨리슨 윌리엄스 분)의 집에 방문하기로 한다. 그러나 그곳에 가기 전부터 그는 백인 여자친구의 집에 방문한다는 사실 자체를 불편해 한다. 초반 여자친구인 로즈와의 대화 속에서 드러나듯, '일반적으로' 백인 부모님이 흑인 남자친구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으며, 일부 가정에서는 강하게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그 스스로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로즈는 자신의 아버지는 오바마의 광팬이라는 이유를 들며 '자신의 집은 다르다'고 역설한다.
그렇게 그들은 집으로 향하다 도중에 길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사슴을 차로 치어 죽게 만든다. 자신이 흑인이라는 사실과 가는 길에 사슴을 치는 사고가 겹쳐 왠지 모를 불편감에 사로잡힌 채로 크리스는 그 집에 방문하고, 이 집이 이상한 장소라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된다. 가족들은 친절하지만 묘한 구석이 있고, 집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는 흑인 하녀와 관리인은 어딘가 나사 하나가 빠진 사람들처럼 경직되어 있고 부자연스럽다. 정신과 의사라는 여자친구의 어머니는 야밤을 틈타 그에게 최면을 걸어 담배를 끊게 만들기까지 한다. 심지어 집에서 열린 홈파티에 여자친구네 가족의 지인들이 초대되고, 그 무리 속에서 크리스는 실종된 브루클린 출신의 음악가를 발견한다. 이 모든 것이 이상하다고 느낀 크리스는 모든 상황을 친구인 로드에게 털어놓고, 로드는 당장 그곳에서 도망치라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 모든 공포가 끝이 아님을 크리스는 비로소 깨닫는다.
영화 속에서 우리는 종종 잊고 있는 일상적 차별이 얼마나 많은지를 새삼 상기하게 된다. 남자주인공 크리스는 흑인으로, 평소 삶 속에서 다양한 인종 차별에 오래도록 노출되어 온지라 자신이 당하는 일부 차별적 행동에는 무감각할 정도다. 사슴을 차에 치었을 때도 운전자는 백인인 여자친구였음에도 경찰관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그의 신분증을 검사하겠다고 한다. 이런 차별적 행동에 대해 크리스는 화를 내거나 저항하는 대신 순응하고 빠르게 일을 해결하는 쪽을 택한다. 여자친구의 집에 도착한 뒤 겪는 다양한 차별적 행위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흑인들이 쓰는 말투'를 일부러 따라하는 여자친구의 아버지나, 흑인이면 길에서 많이 싸워보지 않았냐며 헤드락을 걸려 하는 여자친구의 남동생을 웃으며 넘겨야 한다. 파티에서 만난 백인들이 다짜고짜 몸이 좋다며 그의 가슴팍을 만져대거나 불쾌한 질문을 던지는 순간도 그는 어쩔 수 없이 별다른 대응을 할 수가 없다. 모든 순간 그는 소수자이기 때문에 차별에 저항하는 대신 침묵하고 회피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택한다. 소수자이기 때문에 그가 하는 반항이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크리스는 인생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백인들은 웃는 낯을 하며 그를 대하기 때문에 크리스가 나서서 그들에게 적대감을 보일 수도 없다.
영화 속에서 크리스가 방문한 여자친구의 집은 교외에 있는 곳으로, 숲과 호수에 둘러싸여 외부로부터 차단된 장소다. 그 근처에서 흑인이라고는 일을 돕는 하녀와 관리인 뿐이고, 큰 파티가 열려도 초대된 손님 중에 흑인이라고는 나이 많은 노부인과 함께 온 한 흑인 남자가 전부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매우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비춰진다. 크리스는 처음 그들과 만났을 때 같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동질감을 느껴 그들에게 호감을 보이지만, 흑인 하녀와 흑인 관리인은 그에게 알 수 없는 이유로 적대감을 드러내고 이상한 행동들을 계속한다. 그들은 하나같이 눈빛이 죽어 있으며 억지로 미소 짓는 듯한 이상한 표정을 하고 있다. 개성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옷차림을 하고 있으며, 20-30대인데도 마치 80살 먹은 노인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인형처럼 죽은 표정과 죽은 눈빛을 한 그들을 보며 크리스는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끼고,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이곳으로부터 벗어나야겠다고 다짐한다. 탈출을 위해 그는 여자친구인 로즈에게 이곳이 이상하다고, 집으로 돌아가자고 터놓는다.
사실 크리스가 방문한 곳에서 벌어진 파티는 흑인의 몸값을 두고 경매가 벌어지는 이상한 장소였고, 파티에 참석한 백인들은 서로 앞다투어 크리스를 사려고 한다. 영화 말미에서 공개되지만 이곳은 흑인을 데려와 늙고 병든 백인에게 몸을 팔아서 백인의 정신을 흑인의 신체로 옮겨주는 수술을 시행하고 있는 장소였다. 이 과정에서 정신과 의사인 어머니는 최면을 걸어 흑인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역할을, 신경외과의인 아버지는 그 이상한 수술을 담당하는 역할을, 남동생은 강한 힘으로 혹시 모를 상황을 막거나 간호사로서 수술을 돕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주인공은 여자친구인 로즈를 끝까지 믿었지만, 로즈가 실은 건강한 흑인을 일부러 애인으로 사귀어서 꼬드겨 집으로 데려오는 공급책 역할을 하고 있었다는 반전이 드러나면서 영화의 스릴은 급물살을 탄다. 과연 크리스는 이 집을 무사히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집으로부터 무사히 도망칠(get out) 수 있을 것인가.
영화에서 사슴은 중요한 장치이자 가장 명백한 장치로 등장한다. 영화 초반 여자친구 로즈의 집으로 향하던 둘은 갑자기 튀어나온 사슴을 차로 치는 사고를 낸다. 사고 직후 크리스는 차에서 내려 사슴의 상태를 살피지만 여자친구 로즈는 사슴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자신이 한 생명을 죽였음에도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는 로즈의 모습에서 사슴 따위는 중시하지 않는 듯한 이상한 기시감을 느낄 즈음, 카메라는 갑자기 쓰러져 있는 사슴의 눈과 주인공 크리스의 눈을 클로즈업하며 교차편집한다. 때문에 우리는 어렵지 않게 영화 속에서 '사슴'의 존재는 '흑인'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영화는 초반부터 그렇게 수많은 떡밥을 우리에게 던진다. 죽은 사슴을 아무렇지도 않게 쳐다보지도 않는 여자친구 로즈나, 사슴은 많고 그중 하나가 죽었을 뿐이라고 말하는 여자친구의 아버지를 통해서 그들이 갖고 있는 사슴에 대한 이미지란 결국 '무리'로서의 사슴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개별적 생명으로서 사슴은 배제되고, 공통된 무리의 일부로서 사슴의 개념만이 남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흑인을 대하는 자세와도 같은데,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백인들은 흑인을 각각의 독립적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흑인' 중 하나로 파악하고, 그들의 신체적 조건을 사용할 수 있는 도구로만 바라본다. 때문에 크리스가 가지고 있는 개인으로서의 특징은 사라지고 '없어져도 그만인' 흑인들 중 하나로만 인식된다. 이는 영화 후반부 지하실에 걸려 있는 박제된 사슴 머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수술을 받은 흑인들은 박제된 사슴처럼 육신 안에 갖혀 있는 무기력한 존재로 묘사된다. 수술을 통해 흑인들은 백인에게 몸을 빼앗기고 그 몸 안에 갖힌 채 마치 '손님인 것처럼' 그 모든 순간을 지켜봐야만 한다. 말 그대로 노예가 되어 백인의 정신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수술이 가능했던 이유는 백인들이 흑인을 동등한 인격체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앞서서 설명했던 것처럼, 자신들과 똑같은 인격적 존재라고 생각했다면 할 수 없는 비인간적 수술임에도, 건강한 신체와 강인한 운동능력을 선사해 줄 수 있는 도구로서 흑인을 인식하고 그들을 사고팔며 자신들의 영달을 위해 흑인들을 이용해 왔던 것이다. 앞서 영화에서 등장했던 이상한 행동을 하는 흑인들은 결국 모두 그런 수술을 당한 피해자들이었다.
차에 치인 사슴이 살아있는데도 아무도 도와 주지 않아 결국 죽게 했듯이, 크리스의 끔찍한 상황에 빠진 주인공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도 없다'는 공포는 또한 크리스의 어릴 적 트라우마와도 맞닿아 있다. 크리스는 어린 시절 뺑소니 사고로 엄마를 잃었는데, 사실 엄마는 차에 치이고도 한동안 살아있었지만 크리스가 아무 데에도 전화를 하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앉아만 있었기 때문에' 길가에서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그 사건은 크리스에게 매우 큰 죄책감과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기실 그녀가 그렇게 죽음을 당했어야만 했던 이유도 그녀가 흑인이기 때문에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던 것이었지만, 크리스는 그 사건을 떠올리며 스스로를 탓한다. 모두에게 외면받는 상황에서 자신마저 그녀를 돕지 않고 그저 가만히 있었다는 사실 자체에 그는 계속해서 죄책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그래서 영화 말미 여자친구의 가족들에게 공격당해 지하실에 갖히게 된 다음에,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 무기력한 상황에 빠진 다음 그는 아무도 자신을 구해줄 수 없다는 사실에 극한 공포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아무도 자신을 도와줄 수 없기에 극단적 선택을 해서라도 스스로를 구출하기로 한다. 영화 말미에서 크리스는 탈출을 하는 과정에서 사슴 머리 박제를 떼어내 그 뿔로 백인인 여자친구의 아버지를 찔러 죽이는데, 영화 내내 '사슴=흑인'으로 묘사되었다는 점에서 그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영화를 보면서 차별과 편견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인간은 다 개별적 존재이고, 개개인의 자율성과 자유 의지는 동등하게 존중되어야 함에도 성별, 인종, 환경 등의 부분만으로 그 인간을 판단하려 드는 것 자체도 결국 차별의 또 다른 모습이다. 영화 속에서 크리스가 만나는 백인들은 하나같이 본인들은 인종차별자가 아니라고 역설한다. 그러나 그 뒷부분에 붙이는 말들은 매우 인종차별적이다.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를 언급하며 '너도 흑인이니 골프를 잘 치지 않니? 폼을 한번 잡아봐'라고 말하는 사람이나, 몸이 좋다며 '아주 건강하고 강하겠구나'하고 다짜고짜 가슴팍을 주물러대는 사람들. '미국 사회에서 흑인으로 사는 건 어떤 장단점이 있냐'는 질문을 스스럼없이 던지는 사람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크리스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는 묻지 않는다. 그들은 크리스를 '크리스'로 인식하지 않고 '흑인'으로 인식하고, '흑인' 중 하나로 대우한다. 때문에 '흑인'인 크리스의 개별성과 자유 의지는 거세당하고 결국 도구로서의 '흑인'으로 그를 이용하려 든다. 결국 그들의 머릿속에서 크리스는 인간 이하로, 도구로 취급당한다. 때문에 도구인 흑인을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사고팔고, 그들의 의사는 무시한 채 신체를 빼앗는다. 그런 부분에서는 예전 미국의 노예제를 떠올리게 되었는데,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인종 차별 문제가 심각하며 흑인들의 머릿속에 노예제의 트라우마와 공포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그리고 자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영화는 내내 우리가 삶 속에서 겪는 차별과 편견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지막 장면 나타난 경찰차를 보고 관객들은 백인 경찰이 나타나 흑인인 주인공을 체포하겠구나라고 쉽게 생각하게 되지만, 실제 나타난 경찰차에서 내리는 것은 흑인인 주인공의 친구 로드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던, 그리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던 차별과 편견이 얼마나 뿌리 깊은 것이었는지 감독은 영화를 통해 설명한다. 또한 그 차별과 편견이 약자에게 얼마나 공포스러운 상황인지까지도 감독은 영화를 통해 생생하게 재현해 낸다.
영화 마지막 부분 크리스는 결국 탈출(get out)한다. 영화의 제목인 <겟 아웃(get out)> 은 아마도 주인공 크리스의 탈출기를 의미하는 동시에 모든 약자들과 소수자들이 겪는 차별과 공포의 상황에서 벗어나길(get out)바라는 감독의 의도가 아닐까.
공포영화를 기대하고 극장으로 향한다면 일부 실망할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현실의 공포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귀신이 등장하는 다른 어떤 비현실적 공포물보다도 더 공포스럽다. 영화가 끝나고 덮쳐오는 소름을 충분히 느꼈다면, 이 영화가 미국의 유명 영화 평론 사이트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에서 신선도 지수 99%를 받으며 극찬을 받은 이유를 충분히 알게될 것이다. 만일 인종차별이라는 소재가 우리에게 익숙지 않아서 감정이입이 어렵다면, 관련 내용을 미리 공부하고 가거나 스스로가 겪었던 차별적 상황에 영화를 대입해보며 감정이입을 하는 것을 추천. 그리고 영화가 워낙 늘어지는 부분 없이 긴박하게 전개되기 때문에 충분한 스릴을 느낄 수 있다. 상영이 끝난 다음에도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를 원한다면, 이 영화 <겟 아웃(Get Out)>을 자신있게 추천한다. 5월 1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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