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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un 13. 2017

살려야 한다, 하루를 바꿔서라도

끝나지 않는 하루, 그리고 누군가를 살려야만 하는 사람들: 영화 <하루>

* 이 글은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감상한 영화에 대한 감상평입니다.
* 주의: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루가 끝나지 않고 반복된다면 

눈앞에서 딸이 죽는다. 그것도 끔찍한 대형 교통사고로.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딸의 주검을 바라보며 고통스럽게 울부짖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리셋되어 거짓말처럼 사건이 일어나기 2시간 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모든 일들이 다시 똑같이 반복된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떤 짓을 해도, 딸의 죽음을 막을 수 없다. 그렇게 하루가 계속해서 반복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끝나지 않는 시간의 무한 루프 속에 놓인 남자, 그리고 같은 무한루프 속에 갖혀있는 다른 두 남자. 영화 <하루>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딸을 살려야만 하는 아버지

왜 하루가 반복되는 걸까

전쟁의 성자라 불리는 의사 준영(김명민 분)은 딸의 생일 날 약속 장소로 향하던 중, 대형 교통 사고 현장에서 죽어있는 딸 은정(조은형 분)을 발견한다. 준영은 딸이 죽었다는 충격에서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러나 충격도 잠시,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딸의 사고 2시간 전으로 돌아가 있다. 준영은 어떻게 해서든 그 날의 사고를 막으려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는다. 매일 딸이 죽는 지옥 같은 하루를 반복하던 어느 날, 준영 앞에 그처럼 사고로 아내를 잃은 그 날을 반복하고 있다는 남자 민철(변요한 분)나타난다.

이유도 모른 채 끔찍한 사고의 시간 속에 갇힌 두 사람은 힘을 합쳐 하루의 끝을 바꾸기로 하지만 어떻게 해도 죽음은 막지 못한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매일 눈 앞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어 절망하는 두 사람 앞에 자신이 준영의 딸을 죽인 범인이라고 말하는 의문의 남자가 나타난다. 준영과 민철은 그제서야 이 사고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다른 비밀이 숨겨져 있음을 깨닫게 된다.


아내를 살려야만 하는 남편

과연 살릴 수 있을까

매일 하루가 반복되는 기분은 과연 어떤 것일까.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는 고통이 매일같이 똑같이 되풀이되고, 수도 없는 자책 속에서 구할 수 있었던 순간들을 되새기며 후회하고, 그리고 또다시 시간이 흐르면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기분을 느끼며 고통받는 것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살아있는 내 딸이 있는데, 구하지 못하고 매일 딸을 눈앞에서 잃는 심정은 과연 어떤 것일까. 왜 좀 더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했을까를 수도 없이 후회하며 죽은 아내의 주검 앞에서 우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과연 살아도 살아있는 걸까. 하루하루가 지옥같고 하루하루를 그만 멈추고 싶지 않을까. 영화 <하루>는 러닝 타임 내내 영화 속 주인공들의 상황과 심정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그리고 관객은 영화가 끝날 즈음, 이 비현실적이고 판타지스러운 영화가 실은 엄청나게 현실적이고 극사실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저 참담함과 좌절감은 실은,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은 사람들이 매일매일 느끼고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죽여야만 하는 또 다른 아버지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은

영화 속에서 김명민은 UN에 초빙되고 노벨평화상 후보로 거론될 만큼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인격적으로도 훌륭한 의사로 그려진다. 그러나 사실 그는 심장병이 있던 딸을 살리기 위해 3년 전 뇌사 상태였던 다른 아이의 심장을 억지로 빼앗아 왔던 전적이 있는 의사다. 변요한 역시 평범한 앰뷸런스 기사같지만, 실은 3년 전 빗길 사고로 아이를 뇌사 상태에 빠지게 한 장본인이다. 그들 모두가 3년 전 저지른 잘못으로 한 아이가 죽었고, 아이의 아버지는 아들을 잃었다. 그리고 이제 3년 간 지옥같은 시간을 살아왔던 그 아버지가 복수를 하기 위해 다시 찾아왔다. 실은 그들이 되풀이되는 하루를 겪으며 느꼈던 생지옥은, 3년 간 아이의 아버지(유재명 분)가 느꼈던 하루 하루였다는 사실이 영화 중반부를 통해 드러난다. 이를 표현하는 유재명의 연기는 가히 극찬할 만하다. 아이를 잃은 상실감에 하루하루를 죽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아버지의 심정을, 그 텅 비어있는 눈동자를 배우 유재명은 생생하게 표현해낸다. 김명민과 변요한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다 해서 자신의 아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 역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인해 아들을 잃은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는 이렇게 해서라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끝내려 한다.


얘야 제발 헤드셋 좀 빼주겠니...?


아이를 잃은 아버지가 느끼는 상실감, 그리고 분노를 과연 어떤 것으로 달랠 수 있을까. 3년이 지나 피해자는 가해자가 되었고, 가해자는 다시 피해자가 되었다. 3년 전 피해자였던 아버지가 더 이상 살인을 하지 않도록 막기 위해 3년 전 가해자였던 김명민과 변요한이 해야 할 행동은 무엇이었을까. 영화 <하루>가 가장 힘을 주고 집중해야 했던 것은 바로 이 부분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타임 루프라는 일견 비현실적인 장치에 생명력과 설득력을 부여하는 것은 영화 후반 타임 루프의 해결 방안을 통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결말이 과연 관객의 기대를 맞출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남는다. 과연 김명민과 변요한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들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이들을 구하게 될 것인가.

 

누군가를 잃는 상실감을 그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영화가 끝나고 남는 아쉬움 

영화 <하루>에는 분명 아쉬운 점이 많다. 기존에 이미 수없이 차용됐던 타임루프라는 소재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식상해지기 쉬웠기에, 세 명의 인물들이 타임 루프에 갖혀 미스터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애쓴다는 점에서 나름대로는 클리셰를 깨기 위해 노력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실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만큼 새롭지는 않은 듯하다. 여전히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캐릭터들이 움직이기 때문에, 영화의 흐름 자체가 안전하지만 지루한 선에서 흘러가고, 감정선은 뒤로 갈수록 (이른바 한국영화답게) 과잉되어 고조된다.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하지만 후반부의 급격한 행동 변화를 설명하기에는 영화의 러닝타임이 약간 짧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역시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결말을 보여주기 때문에, '신선한 타임루프 미스터리 스릴러'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아직 미진해 보인다.


가장 아쉬운 캐릭터는 바로 변요한이 연기한 민철이다


아울러 초반부 김명민이 딸을 만나러 가는 길에 다양한 영화적 장치들이 등장하는데, 이를 그저 타임루프가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한 소재로만 흘려보낸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입체적으로 그려져야 할 캐릭터들이 단편적인 모습에서 머무른다는 사실 역시 아쉽다. 영화 초반 김명민이 의협심에 불타는 의사이기 때문에 (오지랖 넓게) 가는 길에서 만나는 환자들을 모두 도와주는데, 이런 딜레마를 조금 더 깊게 파고들어 활용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고지식한 의사이지만 동시에 3년 전 딸을 위해서는 극단적인 선택까지도 불사했던 전적이 있는 만큼, 의사이자 아버지인 그가 상황 속에서 겪게 될 딜레마를 보다 활용했더라면 김명민이 연기하는 캐릭터가 더욱 입체적으로 살아나지 않았을까. 혹은 3년 전에는 의사이기 이전에 아버지였던 그가, 3년 후 이 사건을 겪으며 느끼게 되는 심경과 딜레마,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여줄 선택을 보다 심층적으로 다루었더라면 조금 다른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변요한이 연기하는 캐릭터의 경우는 그보다 훨씬 더 단편적이고 단순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굳이 이 영화의 주연급 캐릭터가 되었어야 했나를 의심하게 할 정도였다. 변요한이 연기하고 있는 민철의 캐릭터는 단순 무식한 면모를 영화 내내 보여주며 김명민이 연기하는 준영을 빛나게 해 주는 클리셰에 머무른다. 민철의 역할과 자리가 영화 내내 분명하지 않고, 굳이 왜 민철까지 타임 루프 속에 갖혀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때문에 변요한이라는 배우가 충분히 훌륭한 연기를 하는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 자체가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과격하게 표현된다. 이 훌륭한 배우들의 연기를 보다 입체적인 캐릭터 속에 녹여냈다면 영화가 또 다른 차별점을 확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보는 내내 지울 수가 없었다.  

 

자 그래서 이제 미스터리 스릴러를 보여줘!


앞서 지적한 수많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영화 <하루>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있다면 감독이 올곧게, 그리고 매우 분명하게 하나의 주제 의식을 전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점에는 일견 박수를 보내고 싶다. 90분이라는 러닝타임 내내 영화는 단 한 시퀀스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오로지 하나의 주제의식에 온전히 집중하고 있다. 너무 정직해서 때로는 거북할 정도이지만 이 영화가 조선호 감독의 입봉작이라는 점에서 향후 차기작을 기대해 볼 만 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감독이 차기작을 통해 내놓을 영화들은 조금 더 다듬어지고 조금 더 세련된 작품이겠지만, 그의 장점인 올곧은 전달력은 계속해서 가져가기를 바라 본다. 오는 6월 15일 개봉 예정.


p.s. 길에서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만 보며 걷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임을 다시 한번 상기해주는 영화 (...)

p.s.2. 제발 말 좀 들어줘... 하라는 대로 해줘... 시키는 대로 해줘 ... 가지 말라면 가지 말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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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물은 '오마이뉴스'에도 기사로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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