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돌아가게 해주세요! 영화 <옥자> 리뷰
(주의)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옥자>는 개봉 전부터 아주 시끄러운 영화였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세계적인 감독이 된 봉준호의 차기작이기도 했고, 할리우드와 대한민국의 명품 배우들을 총출동시킨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영화이기도 했으며, 제 70회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해 어떤 성적을 거두게 될지 귀추가 주목되었던 작품이기도 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옥자>를 둘러싼 논란은 세계 최대 콘텐츠 스트리밍 기업인 넷플릭스가 만든 신작이라는 데 있었다. 국내 극장의 50퍼센트가 넘는 점유율을 자랑하는 CGV가 <옥자>를 상영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 등 여타 멀티플렉스들도 상영을 거부하는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와 동시 상영을 하게 될 경우, 영화산업의 질서를 흐리게 될 것이라는 이유였다. 어찌됐든 그 때문에 <옥자>는 중소형 영화관을 중심으로 상영되게 되었고 때문에 본의 아니게 군소 극장들의 숨통을 트여준 영화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상영관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인터넷 상에서 <옥자> 지도를 만들기도 했을 정도였으니, 이 영화는 태생부터 아주 말 많은 영화였던 셈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논란이 계속될수록 <옥자>에 대한 관심은 커져만 갔다. 세계 시장을 겨냥했다고 하기에는 지극히 한국적인 제목을 가지고 있는 이 영화가 과연 어떤 스토리를 우리에게 보여줄 것인지 그 귀추가 주목되었고, 지난 6월 29일 결국 영화 <옥자>는 그 실체를 드러냈다.
강원도 산골에서 할아버지(변희봉 분)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어린 소녀 미자(안서현 분)에게 옥자는 네 살 때부터 10년간 함께 자란 친구이자 소중한 가족이다. 산을 누비며 평화로운 삶을 이어가던 어느 날, 글로벌 기업 '미란도'가 나타나 옥자를 뉴욕으로 끌고 가고, 미자는 옥자를 구하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향한다.
극비리에 옥자를 이용한 '슈퍼돼지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CEO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 분), 옥자를 이용해 다시 한번 유명해져 보려는 동물학자 죠니(제이크 질렌할 분), 옥자를 앞세워 또 다른 작전을 수행하려 하는 비밀 동물 해방 단체 ALF까지, 다양한 어른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옥자를 차지하려 든다. 미자는 과연 옥자와 함께 평화로운 산골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인가.
미자(안서현 분)는 영화 내내 유일하게 등장하는 어린 아이다. 열 네 살의 미자는 네 살 때부터 옥자와 함께 자라왔으며, 옥자를 그 누구보다도 깊게 이해하고 사랑해 주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하다. 미자는 읍내로 내려가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옥자와 함께 산 속에서 살고 있지만 어리숙하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철없는 어린아이는 아니다. 오히려 미자는 강인한 체력과 똑똑한 머리를 가진 강한 여성 캐릭터이다. 그녀는 '옥자를 구하러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고 '뉴욕으로 가서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간단한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사실 또한 숙지하고 있다. 또한 미자는 어른들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명확히 가지고 있는 유일한 '정상인'이다. 오히려 미자가 영화 내내 만나게 되는, 미자의 눈에 비친 '어른들'은 하나같이 정상적이지 못하다. 입으로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으며, 이익을 위해서라면 스스로의 신념이나 약속 따위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잔혹하다. 옥자를 같은 존엄성을 가진 생명체로서 생각해 주는 어른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믿었던 할아버지에게 옥자는 그저 돈이 될 수 있는 연금 정도였고,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CEO인 루시 미란도는 옥자를 회사를 일으켜줄 수 있는 해결책 (혹은 상품) 정도로 보고, 동물보호단체 ALF는 미란도 코퍼레이션을 무너뜨리는 도구이자 기회로서 옥자를 활용하고자 한다. 영화 속에서 슈퍼 돼지의 등장에 환호하는 사람들도 결국 옥자와 같은 슈퍼 돼지로 만든 소세지를 맛보며 즐긴다. 그 과정에서 과연 그 슈퍼 돼지가 어떤 경로를 통해 만들어졌는지, 어떤 환경에서 자라났는지, 어떤 방식으로 도축되었으며 어떻게 가공되어 유통되는지에 주목하는 이들은 없다. 영화 속에서 옥자는 철저하게 도구화되어 소비되며, 그 과정에서 유일하게 미자만이 옥자의 심정과 감정을 헤아리려 노력한다. 옥자를 동등한 인격을 가진 생물체로 보고 그녀와 소통을 하려 시도하는 사람은 오로지 미자 뿐이다.
영화 속 옥자의 모습은 돼지라고 보기에 어려운 모습을 하고 있다. 어떤 부분은 하마를 닮았고, 또 어떤 부분은 돼지를, 또 어떤 부분은 코끼리를 닮았다. 하는 짓은 영락없는 개인데 모습에서는 개과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로 봉준호 감독은 여러 번의 인터뷰를 통해 여러 동물의 모습을 따와 옥자의 이미지를 구상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설정은 영화 속에서 옥자가 유전자재조합생물체(Genetically Modified Organism, GMO)라는 점에서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 거대한 생물체가 처음 등장했을 때 관객들은 움찔할 수밖에 없고, 때문에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영화 속 옥자의 눈을 표현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언급한 바 있다. 영화 초반 옥자의 모습은 감독의 전작 <괴물>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공포감을 조성하지만, 이내 옥자의 맑은 눈망울이 화면에 비춰지며 관객들의 경계심을 한꺼번에 허물어버린다.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말간 눈망울을 가진 옥자는 신기하게도 미자의 말을 알아듣는다. 때로는 미자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절벽에서 떨어지기도 한다. 그들은 서로의 귀에 대고 무어라고 속삭이며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한다. 그들이 속삭이는 대화들이 과연 어떤 내용인지 끝내 영화는 설명해주지 않지만, 그들이 서로에게 속삭이는 장면들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흐뭇한 감정이 든다. 그토록 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와 진정한 소통을 주고받는다. 영화 초반 등장하는 옥자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관객은 어느새 옥자가 동물이라는 사실마저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그만큼 옥자의 모습은 그 어떤 인간보다도 인간적이다. 옥자의 모습은 영화 후반 등장하는 그 어떤 인간보다도 아름답다. 그래서 한없이 맑기만 했던 옥자의 눈망울이 끔찍하고 잔인한 일들을 겪으며 시뻘겋게 변해버리는 장면들을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옥자에게 그런 짓을 하고 있는 인간들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된다.
<옥자>는 상당 부분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들이 많다. <마더>를 본 관객이라면 배우 김혜자가 넋을 놓고 춤을 추는 장면에 생뚱맞은 음악이 흘러나왔던 부분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에게는 화면과 어울리지 않는 BGM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특기가 있다. 섬세한 연출을 통해 의미를 비틀어 아이러니를 만들어내는 기지 또한 봉준호 감독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또한 영화 속 강인한 여성 캐릭터들의 등장이나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리는 시퀀스는 그의 전작 <괴물>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이번 영화 <옥자>는 그래서 스스로에 대한 오마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전작들을 많이 닮아 있다. 대신 이번 <옥자> 속에서 그 상징과 아이러니는 단순하리만큼 명쾌한 방식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여전히 이번 <옥자>는 할리우드 판 봉준호식 가족영화라는 평가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본다. 그의 영화팬들이라면 일정 부분에서 실망감을 금치 못할 수도 있겠다. 그만큼 이번 영화에서 봉준호 감독은 힘을 빼고 단순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메시지는 간명하지만 그 방식은 직설적이고, 때문에 잔혹한 어른 동화라는 평가가 잘 어울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는 그의 작품 세계에서 늘 되풀이되는 가족과 사랑에 대한 메시지 안에서 맴돌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탈출에 성공한 미자와 옥자는 철창 뒤 거대한 무리의 슈퍼 돼지들 옆을 걸어 밖으로 빠져나간다. 전기 고문을 받으며 죽을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슈퍼 돼지들을 모두 구할 수 없다는 자괴감이 미자에게 몰려올 무렵 제 새끼만은 구하기 위해 철창 밖으로 새끼를 밀어내는 슈퍼 돼지들을 맞닥뜨리는 이 장면은 홀로코스트의 한 단면을 본 것 같은 절망감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결과물을 뒤로 한 채 옥자를, 그리고 새끼 돼지 한 마리를 구해 나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저들을 다 구하지 못한 채 나의 가족만을 구해 나오는 미자의 발걸음이 무거워 보이는 것은 감독이 의도한 연출일 것이다. 수많은 옥자를 만들어내고 수많은 옥자를 도살하는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시스템은 아직도 건재하고, 그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런 방식으로 돈을 벌어들이며 건재할 것이다. 그러나 봉준호 감독이 전작들을 통해 비극적 상황에서 늘 항상 희망의 불씨를 남겨두었듯, 이번 영화를 통해서도 그는 씁쓸한 희망의 불씨를 남긴다. 아직 어린 미자가 이 모든 상황을 겪으며 추후 어떤 어른으로 성장하게 될 것인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옥자> 속 미자를 연기했던 배우 안서현의 미래 또한 기대된다. 말간 얼굴을 한 채 미자의 강인한 의지를 전달했던 그녀가 이번 영화를 통해 또 어떤 배우로 성장해 나가게 될지가 궁금하다. 배우 개인에게 있어 이토록 큰 프로젝트의 일환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 그리고 그 중에서도 주인공으로서 세계적인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회인지 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옥자>는 전체적으로 잘 짜여진 영화이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과 행동들 하나하나가 매우 흥미롭다. 일견 식상한 장치들도 등장하지만 동시에 다른 신선한 설정들과 맞물려 새로운 재미를 선사하며, 또 중간 중간 예상치 못한 유머 코드를 구사하고 있기도 하다. 감독이 지금껏 가장 잘 하는 스스로의 장기를 한데 모아 만들어 낸 한 편의 할리우드 동화. 만일 넷플릭스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면 꼭 한번 보아도 좋을 만한 영화다. 인간의 탐욕과 인간성 상실에 대한 메시지는 강하게 전달하고 있지만, 자본주의에 의한 공장식 동물 도살이나 GMO와 관련된 메시지는 생각보다 약하다. 사회비판을 하고 싶었지만 동화에 머물러버린 씁쓸한 이야기. 6월 29일 넷플릭스와 극장가에서 동시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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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마이뉴스 기사로 함께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