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 Jul 12. 2017

명불허전 송강호가 돌아왔다, 영화 <택시 운전사>

광주로 향한 택시 운전사, 그리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영화의 기능

영화의 기능에는 다양한 것들이 있다. 상상력을 자극하고 창의성을 불러일으키는 것 또한 영화가 할 일이고, 오락적 도구로서 보는 이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는 것 또한 영화의 중요한 기능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기록으로서의 의미 또한 영화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특히 그 기록이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 사건에 대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몇십 년이 지나 실제 그 사건을 겪은 사람들의 기억이 희미해져 갈 즈음, 그 시대와 사건을 잘 그려낸 한 편의 영화는 사람들의 기억을 대신해 사건에 대한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기능할 수 있다. 누군가는 그 시대를 살았고 누군가는 그 순간을 겪었을 테지만, 그 시대를 살지 못한 우리들로 하여금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 시대를 이해하게 하는 것은 때로 영화 한 편이다. 영상으로 표현된 기록은 시청각적 자극을 선사하며 글에 비해 보다 직접적인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기에 용이하다. 그래서 영화 한 편은 때로 그토록 큰 힘을 가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 <택시 운전사>는 다양한 영화의 기능을 한데 담고 있다. 이 영화는 기록으로서도, 오락물로서도 잘 만들어진 작품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만난 사람들.


영화의 줄거리

영화 <택시 운전사>는 현대사의 아픈 사건 중 하나인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영화가 시작하기도 전에 주인공들이 영화 속에서 어떤 일을 겪게 될 것인지는 어렴풋하게나마 짐작이 가능하다. 영화의 주인공인 택시 운전사 만섭(송강호 분)은 서울에서 개인택시 일을 해서 하루하루 근근이 먹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열한 살 어린 딸과 함께 친구의 셋방에 세 들어 살고 있는 그는 늘 형편이 녹록치 않다. 그러던 어느 날, 통금시간 전까지 광주에 다녀오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돈을 벌고자 만섭은 독일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 분)를 태우고 광주로 향한다. 그리고 그 날, 모든 일이 벌어진다.   


1980년 5월, 광주

주인공 만섭은 택시 운전사다. 그의 세계는 택시와 서울, 그리고 딸이 기다리는 집이 전부다. 항상 그 세 공간을 오가며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그는 어느 날 우연한 기회를 통해 익숙치 않은 공간인 '광주'로의 이동을 하게 된다. 그가 자신에게 익숙한 장소를 벗어나 익숙치 않은 공간에서 새로운 이들을 만나며 겪는 일종의 부조리는 역사적 사건을 떠나서도 굉장히 상징적이다. '주인공이 익숙한 공간을 떠나 새로운 공간에서 갈등을 겪으며 성장해, 다시 익숙한 공간으로 돌아온다'는 구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작품을 통해 여러 번 변주되어 왔던 장치다. 때문에 영화 속에서 광주는 역사적 의미를 가진 장소인 동시에, 만섭 개인에게 있어서는 매우 의미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영화의 여운은 길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만 들었을 때, 나는 이 영화가 매우 '신파'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난 뒤, 그 생각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 영화는 신파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 영화는 신파가 아닌 다른 형태로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영화 <택시 운전사>의 색깔에 대해 시사회 무대인사에서 배우 송강호는 이런 말을 했다. "이 영화는 그렇게 무겁기만 한 영화가 아니고, 슬픔만을 얘기하는 영화도 아니다. 때로는 너무나 경쾌한 방식으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그리고 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영화 <택시 운전사>는 희망에 대한 영화다


광주민주화운동을 그려내는 작품들이 가끔 그러하듯, 영화 속에 정치적 갈등구조를 담는 방식도 가능했을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시대적 배경을 세밀히 묘사하거나 사건의 원인을 파헤치는 형태 또한 영화가 취할 수 있는 한 가지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 <택시 운전사>는 작품 속에서 그 모든 것을 배제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렇기 때문에, 만일 광주민주화운동의 배경과 내용을 잘 모르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불친절하다고 여길 수도 있을 것이다. 설명을 최대한 배제한 탓이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광주민주화운동은 원인과 결과가 아닌 사건의 한복판이다. 그리고 영화는 정치색을 최대한 배제하는 대신 사건의 한복판에 들어가 있는 일반인들의 이야기를 오롯이 바라보고자 노력했다. 이 일반인은 어느 날 어떤 사건을 겪고 갑자기 영웅이 되거나, 의협심이 투철해 선봉에 서서 악을 때려눕히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들의 이야기는 마치 우리의 이야기와 같다. 그저 평범한 한 사람들의 시선에서 영화는 광주민주화운동을 묘사하고 있다. 때문에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사람들이다. 인심 좋은 택시 운전사, 어리버리한 대학생, 동네 아저씨와 착한 슈퍼 아줌마. 평범한 삶을 살아가던 이른바 소시민인 그들의 목표는 그저 일상을 영위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 만섭으로 대표되는 평범한 사람들, 즉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소시민이었던 이들이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지를 영화는 촘촘하게 엮어 낸다.


그냥 평범한 택시 운전사 만섭(송강호 분)


영화 <택시 운전사>는 영리하게도 개인의 사연에 초점을 맞추면 종종 발생하는 신파적 전개를 최대한 피하고자 노력했다. 감초 역할의 캐릭터에까지 하나하나 다른 방식의 개성을 부여하고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세세하게 신경을 쓴 결과다.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슬픔을 자아내는 영화가 아니라, 중간 중간 재미 요소를 섞고 시대적 아이템을 함께 버무려 영화를 보는 재미를 선사하고자 노력했다. 영화가 배경으로 하고 있는 광주민주화운동 자체가 워낙 비극적인 사건이었던지라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은 감정의 고조를 느끼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감정은 억지로 자아낸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선은 주인공 만섭이 겪게 되는 모든 감정이기도 하다. 일개 소시민에 불과한 그가 얼떨결에 광주에 내려와 겪게 되는 일련의 감정들은 매우 인간적이고 또 논리적으로 관객에게 설명되고, 때문에 이야기 구조 속에서 별다른 거부감 없이 전달된다. 지금껏 한국 영화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어 왔던 신파적 전개나 애써 울음을 자아내는 장치들이 이 영화 속에서는 최대한 배제되어 있고, 팩트와 사건 위주로 구조가 짜여 있기 때문에 감정마저 논리적으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설명을 배제하고 억지 울음을 배제한 탓에 부분적으로 감정선을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지만, 그마저도 훌륭한 배우진의 연기에 의해 무리없이 매끄럽게 넘어간다.


오랜만에 보는 녹색 번호판도 정겨웠다


이 외에도 영화 <택시 운전사>에는 볼거리가 가득하다. 1980년을 완벽하게 재현한 듯한 다양한 디테일이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배우들의 헤어스타일이나 옷차림 뿐 아니라 골목의 간판, 현수막 등 다양한 디테일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영화 속 1980년대에 와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또 영화의 배경이 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보다 이해하고 영화를 본다면,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현수막들이나 포스터의 글귀가 남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역사적 사건 자체에 대한 설명은 최대한 배제하고 있으나, 결국 영화는 다른 방식으로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이야기들을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주연을 맡은 송강호의 연기는 거의 역대급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카메라에 클로즈업되는 그의 깊은 눈주름 하나하나까지도 다 감정선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돌아 앉은 그의 어깨는 한 마디 말을 하지 않아도 다양한 감정들을 전달해 준다. 달인의 경지에 이르른 그가 선구안과 뚝심을 가지고 계속해서 좋은 작품에 참여하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이 외에 감초 같은 배우들의 등장도 영화 <택시 운전사>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유해진과 류준열은 합류만으로도 엄청난 궁금증을 불러일으킬만 했던 역대급 라인업이었고,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연기력으로 충분히 보답하는 배우들이었다. 더불어 기자 역의 박혁권 배우, 사복조장 역의 최귀화 배우도 익숙하고 반가운 얼굴들 중 하나고, 후반부 깜짝 등장하는 군인 역의 엄태구 배우 역시 반가운 얼굴이다. 배우진들 모두가 '믿고 보는' 탄탄한 연기력을 선보이니, 극 내내 충분히 안심하고 작품에 몰입할 수 있다.


그래서 결국, 희망

그래서 결국 희망 

시간이 지나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했던 때부터 벌써 30여년이 흘렀다. 누군가에게는 실제 있었던 일, 누군가에게는 겪은 일이었을 이 일이 이제 우리에게는 역사책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자리잡은 것도 30여년이 되었다. 시대적 비극이자 아픔이었던 이 사건을 이런 형태로 영화 속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은 매우 아프지만 동시에 매우 의미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또한 정치적 묘사가 아닌 일반인의 시각에서 사건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더 많은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역사 교과서 속에서 이 사건을 마주했던 세대라면 꼭 한번쯤 이 영화를 보기 바란다. 영화를 통해 시대를 살아갔던 이들의 고민과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이 사건을 삶의 일부로서 마주했던 세대 역시 이 영화를 한번쯤 볼 가치가 있다. 시간이 흘러 역사적 사건으로 잊혀져갈 즈음,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지금 이 순간 꼭 필요했던 영화 한 편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한 편의 잘 짜여진 영화, 그리고 역시 송강호. 8월 2일 개봉 예정.


이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좋아요' '공유' '구독'을 눌러주세요! 더 많은 글은 제 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 기사로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1세기 잔혹동화, 영화 <옥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