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
"그저 장난이었어요."
학교 폭력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을 상대로 많이 내뱉는 저 문구는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할 때 많이 쓰인다. 본인은 상대를 괴롭게 할 ‘의도’가 전혀 없었으며, 그저 함께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 그런 행동을 했다고 포장하고자 하는 것. 가해자는 저렇게 말함으로써 스스로의 말과 행동을 가벼운 것들로 포장하고, 그 가벼운 말과 행동에 상처받는 상대는 금세 예민하고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비춰지게끔 한다. 그러나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격언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한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로 다가갈 수 있다는 말이다.
자살을 선택하기 이전에 사람들은 주변에 여러 가지 사인을 보낸다고 한다. 그 사인은 미묘하고 때로는 알아차리기 어려워, 그냥 흘려보내기 쉽다. 그러나 그들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결론으로 치닫게 되기까지 여러 가지 곡절들과 사건들이 작용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 차곡 차곡 쌓인 일련의 일들은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를 와르르 무너뜨린다. 그 일련의 과정 속에서 보내는 사인들을 알아차리는 것은 우리의 일이다.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SOS 사인을 외면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내민 손을 잡고 누군가는 스스로의 삶을 구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루머의 루머의 루머(13 reasons why)>는 말하기 어렵지만 꼭 이야기해야 하는 이 사회적 문제를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는 드라마다.
여주인공 해나 베이커가 자살했다. 해나와 가까운 사이였고 그녀의 자살 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내던 클레이 젠슨은 어느날 갑자기 집으로 배달된 의문의 소포를 받는다. 소포 속에는 해나로부터 온 편지 한 통과 카세트 테이프 13개가 들어 있었다. 해나가 죽기 전 13개의 테이프를 만들고 그것들을 자신의 죽음과 관계되어 있는 13명의 사람들에게 보낸 것. 클레이는 그 테이프를 하나씩 들으며 그녀가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지를 하나씩 알아간다.
원제인 <13 reasons why(13가지 이유)>는 해나가 자신이 자살한 이유를 설명하는 13개의 테이프에서부터 나왔다. 관객들은 해나가 설명해주는 스토리라인을 따라 그녀가 어떤 일들을 겪었으며,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이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녀의 ‘맥락’을 점차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다라 결국 그녀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를 남주인공 클레이 젠슨과 함께 하나하나 알아간다.
이 드라마 안에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등장한다. 가장 기본적으로 이 드라마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학교에서의 따돌림, 소위 말하는 ‘왕따’ 문제다. 학생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따돌림은 단순히 학교와 학생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가 된 지 오래다. 학생들의 괴롭힘은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문물과 만나 ‘사이버 폭력(cyber bullying)’으로까지 발전했다. 악의적인 소문이나 동의 없이 찍힌 사진들이 페이스북 등을 통해 무분별하게 유포된다. 한 친구를 괴롭히기 위해 일부러 카톡방을 만드는 ‘카톡 왕따’ 또는 ‘카톡 감옥’ 역시 이제는 익숙하다. 사이버 폭력의 가장 큰 문제는 피해자들이 24시간 괴롭힘에 노출된다는 데 있다. 기존의 학교폭력이 대면관계에 머물러 피해자들이 학교로부터 벗어나면 잠깐이나마 괴롭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면, 지금의 학교폭력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일상생활을 파고든다. 동시에 스마트폰이 일상생활인 요즘 세대 청소년들은 이런 형태의 괴롭힘에 대해 더욱 민감하다.
해나 베이커가 만든 13개의 테이프 속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사건들이 등장한다. 어떤 아이들은 해나에게 직접적인 잘못을 하기도 했고, 어떤 아이들은 해나가 힘들 때 그녀를 외면하거나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어떤 아이들은 해나에게 신체적인 위해를 가하기도 했다. 그들의 잘못은 경중을 달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모든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 그녀를 자살로 몰아넣었다. 실제 현실에서 벌어지는 따돌림의 양상도 비슷하다. 몇몇 아이들은 왕따인 친구에게 직접적이고 신체적인 위해를 가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저 그 상황을 외면하고 도와주지 않음으로써 상황을 방조하는 데 그친다. 우리는 아마 그 ‘대부분’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폭력을 보고 외면함으로써 우리는 그 폭력이 유지되고 정당화될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내고, 피해자는 아무리 도움을 청해도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적인 감정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공범이다.
'학교폭력' 이라는 단어를 뉴스 검색창에 입력해보았다. 금세 수십만 건의 기사가 떠오른다. 이른바 '부산 여중생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9월의 끔찍했던 사건과, 그 외에도 수를 셀 수 없이 생겨나는 학교폭력 관련 뉴스들이 하루에도 수백 수천 건씩 쏟아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이것은 비단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의 누군가는 학교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스스로의 삶을 중단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 우리의 삶에 이 드라마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물음 몇 가지를 던진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 시청자들은 ‘저 순간에 무언가가 아주 조금만 달라졌다면?’ 하는 생각을 떨쳐낼 수 없을 것이다. 저 순간에 누군가가 해나에게 친절하게 웃어주었다면? 저 순간에 누군가 해나와 밥을 먹었더라면? 해나가 놀림 받을 때 함께 웃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도움을 청할 때 그 말들을 허투루 듣지 않았더라면? 내가 하는 행동이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한번만 더 생각했더라면, 지금 상황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이 작품은 특히 다양한 각도에서 학교 따돌림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의미가 있다. 동시에 최근의 10대들이 일상에서 겪는 미묘한 감정과 상황들을 잘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학교 풍경을 정확하게 묘사하지는 못하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따돌림의 시작과 양상, 그리고 10대 소녀들이 겪는 감정선을 섬세하게 따라갈 수 있다는 점에서 꼭 한번 볼 가치가 있다. 동시에 주인공 해나 베이커와 그녀를 사랑했던 친구 클레이 젠슨에게 몰입하여 문제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드라마를 통해 우리는 이것이 그저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이 될 수도 있으며, 내가 한 행동으로 하여금 최악의 상황을 막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그러나 동시에 ‘왕따 문제’는 절대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실제 왕따 피해자 중 내가 힘든 상황에 있다고 가정과 학교에 알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 신체적,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10대 청소년들이 말이다. 또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10대 중에 저 상황을 막기 위해 직접 나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것도 본인이 왕따를 당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서. 때문에 학교가, 가정이, 사회 시스템이 함께 따돌림과 학교 폭력의 근본적인 이유를 파헤치고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함은 분명하다. 사후적 처벌과 수습에만 급급해서는 이 문제를 절대 뿌리 뽑을 수가 없다. 또 동시에 피해자 주변에 있는 아이들에게 그저 ‘상황을 외면하지 말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친구를 도와라’고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렇게 나서도 보복을 당하지 않는 환경을 조성한다던가, 피해자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실제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다시 말해, ‘달라질 수 있고 실제로 달라진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게 해주어야만 아이들은 달라진다.
이 문제는 너무나도 복합적이고 심층적이라 오랫동안 고질적인 사회적 문제가 되어 왔음에도 아직까지 뾰족한 해결책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루머의 루머의 루머>와 같은 작품이 필요하다. 학교폭력 문제를 다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우리 사회에 이 문제가 여전히 잔존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 양상이 더욱 폭력적이고 심각해져 가고 있음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는 의미에서 제 역할을 하기 때문. 또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켜 보다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토론의 장으로서 기능할 수 있도록 흥미롭고도 날카로운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것 역시 <루머의 루머의 루머>와 같은 미디어의 역할이다.
지난 2017년 3월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방영됐던 <루머의 루머의 루머>는 내년 초 시즌 2로 돌아온다. 새로운 시즌으로 돌아오는 이 작품이 다음엔 어떤 메시지를 사회에 던지게 될지 기대가 된다. 돌아오는 2018년이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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