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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an 25. 2020

안녕 나의 이십대

2020년을 맞이하는 91년생의 자세

2019년의 어느날 친구가 물었다.


우리 올해 스물 아홉이었는데,
혹시 아홉수가 있었니?


그 소리를 듣고 나서 나는 깜짝 놀랐다. 그래, 나는 스물 아홉이었지. 언제 그렇게 시간이 지난 건지. 까맣게 잊고 살고 있었지만 나는 이십대의 마지막 달을 보내는 중이었다. 실상 이십대의 마지막을 보낸다고 해서, 뭐 특별한 기분이 드는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여전히 내가 스무살의 어느 날에 멈춰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여전히 나는 썸탈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노래로 '벚꽃엔딩'을 꼽고, 인스타그램과 카카오톡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요즘 어른들은 '90년대생이 온다'면서 '밀레니얼 세대'를 책으로 또 TV로 유튜브로 익히려고 노력한다는데, 대체 밀레니얼 세대랄게 뭔지 1도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킬킬 웃는 세대이기도 하다. 세대라는 단어로 우리를 묶을 수 있을지조차도 나는 아직 모르겠는데, 여튼 그랬던 나도 20대를 지나 이제 서른이라는 나이로 접어들었다.


벚꽃길 아래에서 벚꽃엔딩 들으며 썸탔던 사람들 접어


아직은 30대가 되었다는 게 그다지 서글프진 않지만, 어느날 어느 순간 찬란한 20대가 지나간 게 문득 엄청나게 슬퍼지는 순간이 올지도 모르지. 그때를 대비해 정말 나의 이십대가 찬란했었는지, 그렇게 반짝반짝 거리기만 했었는지 한번 돌아보려고 한다. 원래 모든 것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인데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하지 않던가.


남들은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울 때가
20대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 이십대를 사는 우리는
나름 치열하고 뜨거운 시간을 보냈더랬다.


만일 <응답하라 2010> 이라는 드라마가 나온다면, 주인공들은 봄날 여의도 벚꽃나무 아래에서 '벚꽃엔딩'을 들으며 데이트를 하다가 식당에 들어가 인스타그램에 올릴 먹방샷을 찍고, TV에 나오는 세월호 소식을 접하고 충격을 받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를 하러 광화문으로 떠날 것이다. 그보다 더 전인 2013년에는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붙은 학교 정대 후문 앞에서 그 대자보를 보면서 눈을 떼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엔 학교 앞 싸구려 호프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소주를 잔뜩 시켜놓고 취업이 어려운 인생을 한탄하는 여느 취준생들같은 모습으로 밤을 보낼 것이다.


응답하라 2010 만들어주세요


생각해보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나의 이십대에는 지나고보니 참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과 카카오톡이 처음 생겨났고,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며 유튜브가 우리 시대의 중심으로 들어왔고, 싸이월드의 종말을 지켜봤다. 다양한 명곡들이 탄생했지만 또 수많은 별들을 잃어야만 했다. 쓴 소주를 들이키며 처음 술을 배워가던 시절을 지나 자몽에이슬 같은 달달한 술들이 등장하며 저도주 시대를 열었다. 2010년대는 무엇보다도, 취향에 대한 시대였다. 우리는 획일화된 가치관을 거절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의문점을 제기하고,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으며 부당한 가치를 타파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행동도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증명했다. 어쩌면 내가 이 글에서 그들의 이십대를 우리라는 단어로 묶어내는 것조차 그들은 부당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것은 언제나
아름답게 보이기 마련이다.


이렇게 써 놓으니 대단한 현대사를 한데 묶어 지나온 것 같은, 가히 대하소설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실상 저 시절을 지날 때 나는 그냥 한없이 철없는 이십대일 뿐이었다. 딱히 엄청나게 의식을 갖고 있지도 않았고, 나라를 위해 시대를 위해 내 한몸을 던져 투쟁을 한다고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그냥 20대의 나는 늘 항상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살기만 했을 뿐이고, 때로는 그게 나 개인의 감정을 위해서이기도 했고 어쩌다 보니 시대의 흐름에 맞는 일들이기도 했을 뿐이다. 모든 것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던데, 지나고 보니 모든 일들이 다 아름답고 웅대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서른 줄에 접어든 (여전히 아직도 어리기만 한) 철없는 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누구에게나 이십대는 찬란한 법이 아니던가. 모두가 그렇게도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한탄하는 그 찬란한 유니콘같은 시절, 그 시절이 나에게도 드디어 끝이 나고야 말았다.


아홉수가 끝났고 나는 서른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나는 그 끝이 그닥 두렵지도 후회되지도 않다. 오히려 20살 즈음, 얼른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그 어디 중간에 서 있는 것 같은 어정쩡한 나이에서, 젊음은 철없이 즐기되 책임은 하나도 지지 않고 더불어 제 손으로 제대로 돈을 벌어 보지도 못했던 그 나이에서, 나름의 부당한 일들, 그리고 소소하게 크고 작은 일들을 겪으며 나는 얼른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하게 했던 것 같다. 당시의 나는 20이라는 숫자만 떼어내면 엄청나게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실상 지금 와 생각해보니 서른살은 스물아홉 만큼이나 철없고 어린 나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는다.



지나간 시간을 붙잡고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만큼 쓸데 없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길게 한탄하는 글을 남기는 것은 바로 지금 이 시점이 아니라면 앞으로 영영 이런 글을 쓸 수 있을 때가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물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는 이 시기, 나이는 비록 숫자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가치를 꼭 부여해야만 한다면 이만큼 또 격렬하게 찬란할 때가 또 있을까.

 

안녕 나의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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