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한 박수
“박수가 신호로 들려요. 박수 많이 받으면 '지금 하는 게 잘 먹히네.'라고 생각되어서 힘이 납니다." 방송인 강석 씨가 한 말이다. 무대에 서는 연예인은 박수에 예민하다. 가수는 박수갈채받으면 한 곡이라도 더 불러 주려고 하지만, 박수나 반응이 별로이면 무대에서 빨리 내려오고 싶어 한다. 강석 씨가 덧붙인 말이다.”노래 간주 나갈 때 사회 보는 저에게 귓속말로 부탁하는 경우도 있어요. 어서 끝내 달라고."
박수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다. 소리를 내서 남의 관심을 끌거나 의미를 전한다. 박수에는 칭찬, 환영. 격려, 동의와 같은 뜻이 담겨있다. "잘했습니다. 힘내세요."라는 말처럼도 들린다. 기립박수는 존경하는 마음까지 전해준다.
90년대 초, 방송사 라디오 PD로 일 하던 때다. 당대의 아이돌 스타, '서태지와 아이들'을 공개방송에 초대했다. 삼백여명의 십 대 소녀들이 공개홀에 빼곡히 들어찼다. 십 대 소녀는 박수의 지존. 박수로는 모자라 함성을 지르거나 괴성을 내기도 한다. 감정이 격해지면 심지어 울부짖는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동작 하나하나마다 방청석이 발칵 뒤집혔다. 고막이 터질 듯 한 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노래는 방청객 소리에 완전히 파묻혔다. 녹음을 멈추고, 방청객들에게 음악이 들리게 제발 자제해 달라고 부탁했다. 막무가내였다. 결국 그들이 내지른 소리 그대로 방송할 수밖에 없었다. 방송사고 아닌 방송사고를 냈다.
박수가 적은 공연은 기운 빠진다. 2011년,“하춘화 리사이틀 50"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렸다. 가수 하춘화 씨의 노래인생 50주년을 기념하는 화려한 무대였다. 관객 대부분은 하춘화 씨와 같은 세월을 살아 낸 나이 지긋한 분들. 나이 들면 감정이 쉽게 달아오르지 않는다. 박수 소리도 작고 오래가지 못한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며 추억에 잠기거나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다. 참다못한 하춘화 씨가 박수를 좀 더 힘차게 쳐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야 신이 나서 더 잘 부를 수 있다고. 가수의 호소와 열창에 힘입어 박수 소리가 커졌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인기 가수의 열창만으로는 공연장을 뜨겁게 달굴 수 없다.
가수가 공연하는 공개 방송프로그램에서는 박수소리가 분위기를 좌우한다. 힘 찬 박수소리가 나오면, 공연장의 열기가 전해진다. 박수소리가 차분하면 프로그램 분위기가 가라앉는다. 듣는 청취자도 맥 빠진다. 청취자를 몰입해서 듣게 하려면 알맞은 박수소리가 필요하다. 방송 중에 박수가 안 나오면 스태프가 관객 박수를 유도하는 사인을 보내기도 한다. 눈치 빠른 방청객 몇 분이 호응해서 박수하면 다른 분들도 따라서 쳐준다. 그래도 박수소리가 작으면, 효과음향을 덧입히기도 한다.
힘찬 박수가 방송에 언제나 효과 있는 건 아니다. 어느 개그맨이 들려준 일화다. 15년 전쯤, 한 TV 방송사가 일산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개그프로그램을 제작했다. 관객 반응을 살리기 위해 방청객 앞에서 공연하는 공개방송 형식으로 만들었다. 스튜디오 위치가 일산이다 보니 방청객 동원이 쉽지 않았다. 빈자리도 채우고 방청객의 열띤 반응을 보여주려고 알바 방청객을 불렀다. 이들은 일종의 엑스트라. 방송 프로그램 녹화 현장을 다니며, 맞장구 쳐주고 박수하는 방청객 역할을 한다. 어느 부분에서 박수해야 하는지, 웃어주어야 하는지를 잘 안다. 연출자 의도에 맞추어 웃음소리도 크게 내고 손뼉도 세게 쳐준다.
그 프로그램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한동안 인기 끌었다. 그러다 날이 갈수록 시청률이 주저앉았다. 재미가 줄어든 탓이라고 들 했다. 일반 방청객은 재미없으면 참아주지 않는다. 야유하거나 재미없다는 티를 낸다. 알바 방청객은 다르다. 야유가 나올 만한 장면에서 조차 웃어대고 열광적으로 손뼉 쳐준다. 꾸며진 박수소리에 취해 연기자와 제작진이 헤맨 걸까. 인기가 시들해지다가 그만 막을 내렸다. 정직한 박수였다면 제작진이나 연기자도 긴장하고 분발하지 않았을까.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후보자를 상대로 하는 선호도 조사 결과가 자주 발표된다. 소위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정치인은 탄탄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팬덤은 맹목적이다시피 지지한다. 맹목적인 지지가 지지받는 이에게 이롭기만 할까. 무조건적인 지지를 받다 보면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 힘들어진다. 더러는 한 줌 지지자들 환호에 묻혀서 판세를 그르치게 읽을 수도 있다.
박수는 손으로 하는 말이다. 말은 거짓인지, 참인지, 아부인지, 충고인지 가려가며 듣는다. 박수도 살펴서 들어야 하지 않을까. 아부의 박수나 돈을 주고 산 박수는 물론, 독재국가에서 보여주듯 겁박에 밀려 동원된 박수도 있다. 박수하는 이 또한 함부로 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의 박수가 거짓이라면 상대의 판단을 흐리게 만든다. 어리석은 사람은 거짓 박수에 홀려 엉뚱한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때로는 박수도 정직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