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빈 의자
“의자요? 그런 의자는 없는데요.”
전화받은 직원은 영문 모르겠다는 듯 답했다. 따뜻한 글감을 찾다가, 빵집 앞에 있던 의자가 떠올랐다. 지하철 2호선 동국대입구역 2번 출구 앞에 태극당 이란 빵집이 있다. 그 빵집 입구에 놓였던 벤치 2개. 오래전, 그 앞을 지나가다 그 의자에 앉아 지친 다리를 쉬어 갔다. 오가는 사람을 위해 지하철 입구, 금싸라기 같은 터를 내놓았다. 빵집 주인의 너그러음에 감동 받아서,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 올린 적이 있다. 그 의자가 생각나서 보충 취재하려고 전화했던 거였다.
“7년 전에 리모델링하면서 없앴어요.” 의자가 없어졌다는 게 선뜻 믿기지 않았다. 오래 근무한 직원을 찾아 다시 물었더니 그리 말했다. 건물을 높이 올리면서, 문 앞의 의자를 치웠단다. 씁쓸했다. 도시 풍경이 날로 번듯해지지만, 우리 마음은 그만큼 아름다워 지지는 않는 듯하다. 사라진 건 의자만이 아니다. 이웃에 대한 배려, 그런 친절에 감사하는 마음 또한 사라진 건 아닌가.
우리 동네 아파트단지에 빈 의자가 곳곳에 놓여 있다. 아파트 뒷마당마다 있고, 보행로 여기저기에도 놓여있다. 의자는 많지만 앉은 사람을 보는 경우가 드물다. 뭘 저리 많이 만들었냐고 탓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나가다 언제라도 쉴 수 있으니,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패진다. 늘 있어서 든든하다.
서있는 사람은 오시오 나는 빈 의자
당신의 자리가 돼 드리리다
피곤한 사람은 오시오 나는 빈 의자
당신을 편히 쉬게 하리다
40여 년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따뜻한 노래, 장재남의 ‘빈 의자’다. 소통에서 빈 의자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저마다 할 말 많은 요즘 세상. 다들 자기 말만 늘어놓기 바쁘다. 하지만 자기 할 말 참고 상대 말에 귀 기울여주는 이도 있다. 끼어 앉으라고 빈자리 내밀 듯 말할 기회 마련해 주는 사람, 머뭇거리는 이에게 말걸어 주는 분도 있다. 서 있는 사람, 피곤한 사람 모두에게 당신의 자리가 되어 주는그런 사람이 빈 의자 같은 사람 아닐까?
지하철이나 공원에 더러 볼썽사나운 의자가 있다. 의자 가운데를 가로질러 칸막이 한 의자다. 어느 누구도 눕지 못하게 의자 한복판에 장애물을 설치했다. 일본, 캐나다 같은 선진국에서도 봤다. 한 사람 한 사람 따로따로 앉으라고 배려해서 만들었다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노숙자가 눕지 못하게 만든 건 아닐까. 혹시라도 그렇다면 그게 그렇게 눈에 걸리는 건가. 야박한 인심이 그대로 드러난다.
서소문 순교지 역사공원에 가면 순교자 현양탑 오른쪽에 눈 길 끄는 조각상이 있다. 벤치에 이불 같은 덮개를 푹 뒤집어쓰고 누운 노숙자상. 얼굴과 상체를 가린 채 웅크리고 누운 모습이 추워 보인다. 덮개 아래로 내민 맨발. 발등에 못자국이 선명하다. 티모시 쉬말츠 (Timothy P. Shmalz)의 ‘노숙자 예수상’(Homeless Jesus)이다. 그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이셨던 예수님. 지금 이 세상에 오신다면 노숙자 차림 일 수도 있다. 공원 빈 의자는 예수님 모시는 자리, 소외된 이웃 섬기는 자리가 되면 어떨까.
30여 년 전 뉴질랜드로 이민 간 친구가 놀러 왔다. 뉴질랜드는 복지 천국이다. 아프면 무료로 치료해준다고 한다. 큰 수술도 무료란다. 사정이 곤란하면, 나라에서 집까지 마련해 준다. 하지만 친구는 마음 툭 터놓고 말할 상대가 없다고 씁쓰레해했다. 그곳은 한국처럼 저녁에 누구를 만나고 어울리고 하는 문화가 없딘다. 영어를 잘하는 그지만,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상대가 없어 힘들다고 했다.
힘들 때 하소연 늘어 놀 사람이 가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가. 편하게 말 걸 사람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송파의 세 모녀의 슬픈 사건도, 탈북민 모자의 아사도, 종종 보도되는 고독사도, 모두 소통의 단절에서 온 게 아닌가. 절박한 상황에서 손잡아줄 사람, 하고픈 말 들어줄 사람이 있었다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은 피할 수 있었을 게다. 물론 생명의 전화,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처럼 극한 상황에서 누구라도 전화할 수 있는 곳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먼저 말걸어 주지는 못한다. 소통의 빈 의자가 좀 더 가까이 있게 되면 그런 비극을 좀 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지난 세월을 되돌아본다. 내 인생에서 나에게 빈 의자가 되어주었던 고마운 분은 누구였을까. 나 또한 누구의 빈 의자가 되어 준 적은 있었을까. 내 마음의 빈 의자를 치우고 번드르르하게 리모델링 한건 아닌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