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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월 Mar 30. 2024

마음의 문을 여는 말 한마디

소통의 열쇠, 배려

학생들에게서 이메일로 과제를 받는 경우가 있다. 학생들은 보통 세 가지 유형으로 답한다. 하나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파일만 달랑 첨부해서 보내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자기 이름과 파일에 대한 설명을 쓰는 실무적인 경우, “저는 누구입니다. 무슨 과목 과제를 제출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인사를 겸해 마음을 담아 보낸다. 지난해 받은 한 학생의 메일처럼. “교수님, 벌써 여름이네요. 늘 감사합니다.” 

파일만 보내거나, 과제 관련 정보만 적어 보내는 학생의 마음이 짐작된다. 감정에 호소하지 않고, 당당하게 경쟁하고 공정하게 평가받기 위해서 일 게다.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한 줄 인사말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는 점이다. 마음이 담긴 글을 받을 때면, 내 마음도 움직인다.  학생 이름이 뭔가 다시 보게 되고, 누구인

지 살피게 된다. 물론 평가는 공정하게 하지만 신경이 쓰인다.  소소한 인사말로 감정의 소통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발표할 때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한 번은 12개 팀이 10분씩 팀별 발표를 했다. 10번째가 넘어가면서 집중도가 눈에 띄게 떨어졌다. 여느 학생이라면 그냥 시작했을 게다. 11번째 발표한 학생이 인사부터 하고 시작했다. “지루하시죠?”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살피고 발표를 하려고 한 것이다. 발표를 마친 뒤, 학생의 세심한 배려를 공개적으로 칭찬해 주었다. 제대로 발표하려면, 먼저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고.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결국 마음의 소통이라고.   


거두절미하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남과 다투는 경우 특히 그렇다. 소비자가 서비스에 대해 항의할 때나, 제품에 대하여 불평할 때에 자주 그런다. 다짜고짜 본론부터 말하거나 전후사정 모르고 들이대기도 한다. 화풀이는 되겠지만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제대로 전해질 리 없다.  상대방은 얼마나 황당해할까. 간호사가 아무런 예비 동작 없이 곧바로 주사 바늘을 찌르는 식이다. 다짜고짜 말하다 보면 탈 나기도 쉽다.  


왕건이 견훤을 치려고 나주에 갔을 때다. 목이 타 들어가듯 말라서 물을 찾았다. 마침 우물가에서 물 긷는 한 처녀를 보고는 급히 물을 청했다. 여인은 물을 떠주면서 두레박에 버들잎 몇 닢을 넣었다. 왕건은 버들잎을 피하려 후후 불며 물을 들이켰다. 목을 축이고는 버들잎 띄운 까닭을 물었다. “급히 물 마시면 체하실 까봐 염려되어 천천히 드시라고 그랬습니다.”  사려 깊은 이 여인은 훗날 왕건의 부인이 된다. 장화 왕후 이야기다.

지금은 무한 경쟁의 시대다. 속도가 강조되니 무한 질주하려 한다. 일은 빠르게 효율적으로 처리되며, 세상은 눈부시게 바뀌고 있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실질적인 효과를 우선 하게 된다. 소통도 그렇다. 빠른 시간 안에 효율적으로 말하려다 보면, 인사도 나누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기도 한다. 성질 급한 듣는 이는   뜸 들여 말하는 것을 듣기 싫어할 수도 있다. 


소통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 상대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으면 일방적인 소통이 될 뿐이다. 혼자 서두른다고 해서, 신속하게 메시지가 전해지는 것도 아니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마음이 손뼉처럼 마주쳐야 한다. 말하기에 앞서, 서로에게 서로를 배려하고 있음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알맞은 인사말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수철프란치스코신부님

불암산 자락에 있는  요셉 수도원의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강론에서 들은 말이다. “이메일이나 편지 보낼 때, 호칭 앞에 ‘존경하는 ‘ 이란 말을 넣어 보세요. 모든 사람은 존재 자체로 존경받아 마땅합니다. 상대에 대한 존경은 나에 대한 존경과 직결되지요. 말은 살아있고, 엄청난 힘을 지닙니다. 존경받을 때, 자존감도 살아나, 자기를 함부로 방치하지 않을 것입니다.”


‘존경하는’ 이란 말로 시작하는 메일을 쓸 때마다 마음이 가다듬어졌다. 아무래도 신경이 더 쓰이고, 정성을 기울이게 되었다. 그런 인사받는 분 또한 정성스럽게 읽지 않을까.  


“남을 위한 작은 생각, 작은 배려가 모든 차이를 만들어 낸다.” 영국 작가 밀른(Milne)의 말이다. 소통도 마찬가지 아닐까. 노크 소리 같은 한마디 말이 상대 마음을 열어 준다. 마음이 열려야 원하는 메시지도 제대로 전할 수 있다.  배려가 소통의 열쇠다.  


마음의 문을 여는 말 한마디 Chat GPT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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