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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월 Apr 03. 2024

마음도 중요하지만, 표현은 더 중요하다

감동적인 위로

면회 오지 말라고 했다.  처가 쪽으로 형뻘 되는 분이 교도소 들어갔다기에 면회 가려고 했는데, 그쪽 집에서 잘랐다. 그분은 한 때, 잘 나갔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 임원을 지냈고, 퇴사해서는 회사를 차렸는데, 크게 일어섰다. 몇 백억 부자라는 말이 돌았고, 부러워들 했다. 사는 수준 차이가 크다 보니, 우리 집과는 가까이할 기회가 적었다. 그래도 감옥에 들어갔다니, 응당 인사드리러 가야 하는 줄로 알았다. 가족이 오지 말라고 하니  어절 수 없이 접었다.       


"어떻게 면회 한번 오지 않을 수 있었냐, 네가. 친척이 많기나 하냐."

얼마 전이었다. 교도소에 다녀온 그분이 십 여 전 전 그 일을 꺼내며, 처남을 심하게 나무랐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웬만해서는 서운해하지 않던 그분이 갇혀있던 그 시절이 가슴에  사무쳤나 보다. 형수가 오지 말라고 해서 못 갔다고  말할 수도 없어서 야단맞고만 있었단다.      


친구 중에도 잘 나가다 교도소 다녀온 사람이 몇 있다. 면회 가려다 친구 안사람이 꺼려서 못 간 적이 있다. 가족들로서는 숨기고 싶고, 알리고 싶지 않겠지만, 갇혀있는 사람의 마음은 다르다. 

     

라디오 PD로 일할 때다. 알고 지내던 가수가 사기혐의로 교도소에 들어갔다. 읽기 민망한 기사가 한동안 신문에 오르내렸다.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이 추문에 휩싸였으니, 가수로서는 끝장난 걸로 봤다. 아는 사람의 안타까운 처지를 모른 척한다는 것도 편하지 않아서 면회 갔다. 뜻밖이었다. 위로 인사를 꺼내기도 전에 오히려 잘 지내고 있다며 편하게 맞아주었다. 교도소에 들어왔기에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볼 수 있었고, 앞으로는 잘 살아가야겠다는 다짐도 했단다. 위로하러 갔다가 감동받고 왔다.     

  

면회 Chat GPT Image

몇 해 지나지 않아서다. 파렴치한 사람으로 몰렸던 그 가수가 텔레비전 프로그램 여기저기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교도소 다녀온 이야기도 숨기지 않았고 때로는 재미있게 소화해 냈다. 나름 치열하게 노력해서인지, 교도소 다녀오기 전보다 더 인기를 끄는 듯했다. 하루는 점심 대접하겠다기에 나갔다. 안사람에게 내가 면회 왔었다는 말을 했었단다. 아내도 고마워했다며 인사를 전했다. 갇혀있어도 같이 일했던 사람들로부터 위로받고 있다고 아내를 달랬나 보다. 버려졌어도 누군가와 마음 나누고 있음이 의지가 되었나 보다. 검정 만년필에 내 이름 석 자를 금빛으로 새겨 선물했다. 


승진에서 누락된 적이 있다. 인사발령 방이 붙은 날, 얼굴이 후끈 거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대부분 흰소리 건네며, 모른 척해주었다. 그들 나름의 위로였을 게다. 어려움이 닥치면 일에 몰입하며 넘기는 게 내 방식이다. 얼굴 푹 숙이고 하던 일에 집중했다. 집중은 되질 않았지만 억지로 라도 집중하려 했다. 누군가가 내 옆에서 맴돌았다. 한참 지나서 고개 들었다. 한 후배의 젖은 눈빛과 마주쳤다. 그 후배가 한숨 내쉬며 입을 열었다. “김 선배, 어떡해요. 아이 참” 자기 앞가림도 힘들어하던 후배였다. 그런 후배의 위로를 듣는 게 가슴 아팠다. 하지만 고마웠다.     


한두 줄 짧은 문자 보내고도, 과분하게 감사 인사를 듣기도 했다. 나의 정년 퇴임식 날이었다.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돌아가며 나와 얽힌 추억을 나눴다. 한 후배가 마이크를 잡았다. “회사에서 집단행동에 앞장섰다고 징계받았을 때, 김 선배가 위로 문자 보내 주어서 고마웠습니다." 어렴풋이 떠올랐다. 방송사 파업으로 회사가 시끄럽던 때,  그 후배가 찍혀서 징계받았다. 착한 후배라서 안타까웠다. 마음이 참 아프겠다 싶어서 몇 줄 문자 보낸 것뿐이다. 그 사소한 위로를 기억해 주고 공개적으로 감사해 주니 내가 고마웠다.      


각박해진 세상이다. 둘러보면 위로받아야 할 사람이 좀 많은가. “솔직한 훈계(open rebuke)가 숨은 사랑(hidden love) 보다 낫다.”(잠언 27:05)는 말이 있다. 마음도 중요하지만 표현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위로는 숨어서 마음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 소소한 말 한마디, 문자 한 줄이 감동적인 위로가 될 수 있다.         

      

마음도 중요하지만 표현은 더 중요하다 Chat GPT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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