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곁에 둘 때, 삶이 빛난다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남은 이들의 삶을 일깨운다.
지난 3월, 충남 논산의 한 농장을 취재하다가 야산 비탈에서 발을 헛디뎠다. 한순간이었다. ‘외상성 뇌출혈’로, 정신을 잃고 지낸 이틀을 포함해 42일을 병원에서 보냈다. 한 발자국만 잘못 디뎠을 뿐인데 죽음은 손끝에 닿을 듯 곁에 와 있었다. 그제야 또렷이 느꼈다. 삶과 죽음은 늘 같은 길 위에 있다는 것을.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
베네딕도 수도회의 규칙서에 담긴 말이다.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자세, 그것은 수도자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지혜가 아닐까.
얼마 전,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팔십 대 지인이 고독사했다. 독신 여성으로 살며 자신의 분야에서 열정적으로 일해 큰 성취를 이룬 분이었다. 모친이 백세를 넘게 살았기에, 그분 역시 오래 살 거라 믿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아무도 모르게 심장마비로 삶을 마감했다. “유서를 써야지”, 몇 번이고 내게도 말했었지만, 끝내 남기지 못했다.
그는 적지 않은 재산이 있었다. 그러나 남을 대접하거나 자신을 위해 여유 있게 써보지도 못했다. 늘 뭔가를 이루려고 새 사업을 구상하며 숨 가쁘게 살았다. 만약 그분이 죽음을 조금 더 가까이 의식했더라면 어땠을까?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 많이 베풀면서 행복을 나누지 않았을까.
나는 그 일을 계기로 한동안, 가까운 지인들과 서둘러 식사 자리를 만들었다. 고맙다는 인사도 자주 전했다. 살아 있음은 곧, 감사하고 나눌 수 있다는 뜻이니까. 죽음이 멀지 않음을 깨달을 때, 삶은 오히려 더 깊고 선명해진다.
성경 루카복음 12장에는 ‘어리석은 부자’ 이야기가 나온다. 풍년을 맞은 부자가 곡식을 창고에 가득 쌓아놓고 안심할 때, 하느님이 말씀하신다.
“오늘 밤 내가 너를 데려가면, 그 재산은 누구 것이 되겠느냐?”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두렵고 불편하다. 그 두려움이 사소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고, 더 중요한 것에 집중하게 한다. 죽음을 곱씹을수록, 삶은 더 따뜻하고 알차진다.
누군가의 죽음은 남은 이들의 삶을 일깨운다.
죽음을 곁에 두면, 삶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삶을 빛나게 하는 지혜다.
누군가가 지나간 길이 내 길을 비춘다.
길은 언젠가 끝난다.
길의 끝을 알기에 오늘의 걸음이 멈추지 않는다.
죽음이 곁에 있기에 삶은 더욱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