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_상처에서 통찰로
글쓰기란 내 상처를 후벼 파기 일까?
달리 보이는 것을 찾아 건져 올리기 일까?
한 세월 라디오 PD 하면서 적지 않은 분들 기분을 살랑살랑 흔들어 드렸다. 하지만, 몇몇 분에게는 심기를 건드렸다. 인터뷰한답시고 답하기 민망한 것을 캐물어봤다. 내밀한 이야기를 끄집어내려다가 남의 속을 헤집기도 했다.
젊어서 중도 실명(失明)한 분을 취재한 적이 있다. 시력을 잃고도 가슴 따뜻한 정안인(正眼人) 여성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던 분이다. 실명 과정을 집요하게 묻다 보니, 그분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잊고 살았던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니 힘드네요.”
남의 상처를 건드린 욕심이 오래 부끄러움으로 남았다.
칼 끝이 돌아와 닿을 때
그보다야 훨씬 가벼운 이야기지만, 나도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며 내 안의 아픈 기억을 꺼냈다. ‘병상에 누우니 보이는 것들’ 연재를 통해 42일 입원 기간의 이야기 20편을 썼고, 퇴원 후에는 ‘겪고 나니 보이는 것들’이라는 이름으로 10주 동안 또 10편의 글을 이어갔다.
조금이라도 나은 글을 쓰려고 애태우다 보면 있는 대로 까발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잊고 살았던 아픈 기억도 살려내게 된다. '글쓰기란 자기 상처를 후벼 파기'라고도 한다. 문장을 다듬다가, 내 손이 떨린 밤도 있었다.
“그런 글, 이제 그만 좀 쓰세요.”
여동생의 말에 뜨끔했다. 나와 아픔을 같이 겪은 가족 상처도 건들었나 보다.
아물어가던 자리를 다시 헤집는 일이, 때로는 사랑하는 이들의 흉터까지 덧나게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글이 언제나 상처에서 시작되어야 할까.
아픔은 나를 위로해 주었지만, 오래 붙들면 아픔이 다시 나를 붙든다.
나는 이제, 그 그림자에서 한 걸음 물러서려 한다.
앞으로는 내 삶을 조금 다른 결로 바라보고 싶다.
그래서 여기서, ‘병상에 누우니 보이는 것들’을 놓아드리고 싶다.
다음 연재의 이름은 <세월 가니 보이네>다. 세월은 사물의 다른 면을 천천히 드러내는 은은한 조명이다. 어제는 보이지 않던 면이 오늘은 보이고, 내일은 또 달리 빛날 것이다. 나는 그 빛의 바뀜을 천천히 받아 쓰겠다. 상처가 아닌 통찰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로.
읽어 주신 모든 분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상처는 여기까지 적고, 다음 줄부터는 빛을 쓰겠습니다.
월요일 오전 9시, 새 연재 〈세월 가니 보이네〉에서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