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아파해도 봄은 봄이다

내 마음의 옥상정원

by 김승월
병실에선 하루가 더디게 흐르는데, 창밖은 봄이 밀물처럼 몰려왔습니다.



봄은 참 야속하다. 누군가는 병실에 누워 하루하루를 버티는데, 밖에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새순이 돋고, 꽃이 피고, 햇살이 부서진다. 내 시간은 멈춰 있는데, 계절은 어김없이 앞으로 간다. 봄은 늘 야속하다.


잠수함 속에서 만난 한 줄기 바람


"비가 오네요. 오늘은 산책을 못 하겠네요."
봄비가 내리던 날, 물리치료사 김동영 선생님이 아쉬운 듯 그렇게 인사한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재활운동 마지막 코스로 옥상정원을 함께 걷곤 한다. 아쉬워하는 나에게 선생님은 내일이면 꽃이 더 활짝 필 거라며 위로해 준다.


병실에서 하루 종일 지내는 것은, 과장해서 말하면 잠수함에 타 있는 기분이다. 물론 나는 잠수함을 타본 적이 없다. 잠수함이 수면 위로 올라와 바깥공기를 마시는 순간은 얼마나 시원할까. 바람 한 줄기만 스쳐도 폐 깊숙이 생명이 꿈틀거릴 거다.


잡초 사이에 서 계신 성모님


여의도성모병원 5층, 재활훈련실 옆에 있는 옥상정원은 내게 숨통 같은 공간이다. 넓지는 않지만 성모님 상이 모셔져 있고, 50여 미터 되는 구불구불한 산책로를 따라 나무와 꽃이 무리 지어 자라고 있다.


이 성모님 상은 내가 본 성모님 상 중 가장 소박하다. 화려한 색은 단 한 점도 없고, 수수한 암녹색뿐이다. 꽃 장식도, 예쁜 조형물도 없이 잡초 사이에 모셔져 있다. 환우들에게 가까이 와 계신 듯, 낮은 자세로 서 계신다.

그 앞에 서면, 내 안의 고통이 기도가 된다.



꽃내음에 실려 온 살아 있음의 기쁨


재활운동의 마지막 코스는 걷기다. 실내 복도를 걸을 때도 있지만, K 선생님은 옥상정원 걷기를 더 좋아한다. 나도 그렇다. 한 시간쯤 운동하다 보면 한적한 곳으로 벗어나 바깥공기를 마시고 싶어 진다. 옥상정원은 도심 속에 있지만, 병실과는 다른 신선함을 준다. 무엇보다 이곳에서는 계절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오늘은 선생님 손 잡고 옥상정원을 거닌다. 비록 병원 옥상이지만 잠시나마 해방감을 느낀다. 그 많은 환우들이 아파해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연보라와 분홍 꽃잔디가 무리 지어 피어 있다. 손바닥으로 꽃잔디를 쓰다듬으니, 아기 피부처럼 보드랍다. 바람이 살짝 스친다. 흔들리는 잎새에서 나무들이 살아 있음이 느껴진다.


철쭉도, 라일락도 한창이다. 꽃향기를 맡는 것은 자연의 체취, 살아 있는 생명의 내음을 그대로 들이마시는 일이다. 꽃내음 맡으며, 나도 그들과 함께 숨 쉬고 있음을 확인한다. 라일락 꽃에 코를 묻고 향기를 놓치지 않으려 킁킁댄다. 봄은 그렇게 내 안으로 들어온다.


내 마음에 옥상정원


옥상정원은 실제로는 자그마한 공간이지만, 내 마음은 그 공간 너머 먼 곳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단 몇 분 동안이지만 옥상정원을 산책 한 날은 남들 사는 세상에 다녀온 기분이 든다.


병원뿐 아니라 모든 건물에도 이런 ‘숨통’ 같은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고층건물이 빼곡한 세상일수록 더 그렇다. 마음에도 옥상정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삶이 아무리 버거워도, 마음 한편은 열어두어야 한다. 누군가는 아파해도, 봄은 봄이다.
그 봄 안에서, 오늘도 나는 숨을 쉰다.


물리치료사 김동영선생님과 김승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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