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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월 Mar 15. 2024

행복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김일환의 <파킨슨아내와 르쀠길 산책하기>


번듯하게 사는듯해도, 불행 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불행해 보이는 데도 행복하게 사는 이도 있다. 그들에게 행복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불행의 그물을 지나서 다가간다.

파킨슨 병을 7년째 앓고 있는 아내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의 일부인 프랑스의 르쀠길 250km를 21일 동안 다녀온 60대 노부부가 있다. 차를 탄 적도 있지만, 힘닿는 만큼 걸었다. 동화작가인 남편 김일환은 대학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고, 40대 후반에는 주 프랑스 교육원장으로 프랑스에서 근무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그는 프랑스의 풍광과 문화를 속속들이 즐겼을 게다.

8년 전, 그 부부는 르쀠길 순례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파킨슨 환우를 운명처럼 만났다. “파킨슨 환우들에게 희망을 주려고 걷습니다. 그날그날 걸은 것을 인터넷에 올립니다.” 그가 한 말을 들은 지 일 년 뒤, 아내에게 파킨슨병이 찾아왔다. 작가는 지난해, 오스트레일리아 파킨슨 환우가 했던 것처럼,  파킨슨 아내와 그 순례길을 다시 걸으며, 그날그날 겪은 일을 블로그 <천천히 걸어가면> https://blog.naver.com/faladol에 올렸다. 그 글들을 모아 올해 2024년 2월 20일, <파킨슨 아내와 르쀠길 산책하기>란 책을 펴냈다.

르쀠길은 프랑스 중부 남쪽 도시 ‘르쀠’에서 남서부 끝 도시 ‘쌩정’까지의 733km의 길. ‘쌩정’에서 ‘산티아고’까지 길을 흔히들 ‘산티아고 순례길’이라고 부른다.  르쀠길은 산티아고길 보다 도로 폭이 넓고 편하단다.

8년 전, 부부는 733km의 순례길을 매일 23km쯤 걸었다. 이번 순례에서는 250km를 걸었는데, 하루에 15km 가기도 벅찼다. 아내는 보폭이 짧아졌고, 발을 질질 끌기도 했다. ‘순례’ 대신 애써 ‘산책’이란 말을 골라 책제목에 부친 이유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순례’보다 더 진지한 ‘산책’이 아니었을까? 그는 말한다. “느림보 달팽이가 하루 10m를 갔다면 그것도 완전한 삶이 아닐까요?”

이 책은 여행기이며 투병기다. 파킨슨 병은 현재 의술로는 치료할 수 없다. 서서히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증상을 늦추는 것만이 최상의 방법인데, 운동 없이는 기대할 수 없다. 파킨슨 환우에게 ‘걷기’가 더없이 좋긴 하지만 힘에 겹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장거리는 다시 걷지 못할 거예요” 고개를 흔드는 아내를 일으켜 세웠다. 등짐지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손수레도 만들었다. 난생처음 비싼 좌석으로 비행기표를 샀다. 힘든 길에서는 차량을 이용하기도 했다. 수공예품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벼룩시장도 거르지 않았다.



부부는 21일 여행에서 14일이나 걸었다. 아내는 발가락이 자꾸만 꼬부라지고 오므려 든다고 했다. 발가락 끝이 바닥에 닿게 되어 걸으면 아프다고도 했다. 양말을 벗겨보니 발가락이 잔뜩 말려들어가   있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자꾸 아내의 발가락을 폈다. 펴고 또 펴고 문질러 주어도 다시 발가락은 고부라 들었다. 눈물을 뚝뚝 떨구는 남편에게 아내가 말했다. “당신을 위해 사세요.”


땀과 눈물의 여정이었지만, 아름다운 만남이 이어졌다. 자연 풍광, 유적과 유물, 음식, 길 위에서 소소한 만남 하나하나를 이야기로 꾸몄다. 순례길의 사진과 지도로 현장감을 살려내며, 세세한 정보에 ‘여행 팁’까지 보태니, 여행 길잡이로도 그만이다.  맛난 음식과 즐거운 만남 이야기를 귀여운 아이처럼 재잘거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고통에 대한 성찰, 길 위에서 돌아본 삶의 문제를 깊이 있게 짚어준다.


저자 김일환은 나의 40년 지기. 그 집안을 웬만큼 안다고 여겼는데, 책장을 넘기다 보니, 모르는 게 많았다. 특히 아내에 대하여 너무 몰랐다. 책장을 넘길수록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런 분들을 알고 지냈다는 것이 행운이었다. 크리스마스에 집으로 초대해서 베풀어주던 정겨운 파티가 다섯 번도 넘었다. 프랑스 벼룩시장에서 구입했다는 이국적인 골동품으로 꾸민 거실에서, 아내가 만든 프랑스 요리를 즐겼다. 집에 갈 때는, 오지 못한 집 식구 몫으로 과자나 떡을 쥐어 보내던 정 많은 여인. 그 아내를 두고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나오는, 사랑스러운 여인 ‘멜라니’ (스칼렛의 연인인 에쉴리의 부인)를 떠올린 적이 있다. 책에 실린 남편 글대로   다. “사람을 사랑하고, 예쁜 말을 해주며 살아온 아내. 성실하고, 관대하며 헌신적인 사람.”


 작가 김일환은 한국안데르센문학상 문학부문 대상으로 등단한 동화 작가. 초등학교 교장, 교육장을 지내면서, <고려보고의 비밀>, <홍사>와 같은 동화를 펴냈다. 이번 출판에서, 저자는 책 편집과 디자인을 배워서 직접 만들었다. 일반 서점에서 판매되지 않으므로, 출판사 이메일

falada@hanmail.net

로 주문해야 한다. 한 권은 우송료 포함해서 15,000원 두 권이 넘으면 우송료 포함해서 권당 13,000원이다. 출판 수익금은 파킨슨 환우들을 위해 쓰인다.

아내의 몸이 허락한다면, 올 가을에 파킨슨 환우들을 모시고 다시 르쀠길에 나설 예정이란다. 불교신자인 이 부부는 ‘파킨슨’이란 ‘그물’을 ‘바람’처럼 지나가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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