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삿짐을 싸며
"어쩌다가, 아직도 더블베드 쓰세요? 적어도 트윈베드는 써야지. “ 집을 줄여서 이사 가는데, 퀸사이즈 침대가 못 들어갈까 봐 걱정이라고 했더니, 사우 J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나이에는 각 방에서 살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각 집에서 살면 더 좋겠지만." 어쩌다 보니, 아직도 더블베드 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 그동안 고생했다며 여동생이 사준 침대다. 아내와 살갑게 지내서라기보다, 별생각 없이 그리 살았다.
생각 없이 살던 내 모습을 이사 준비하면서 살펴보게 되었다. 야트막한 야산 기슭에 자리한 상암동 월드컵 파크 아파트에 살았다. "콘도 같아요." 집에 들른 사람마다 인사차 말하곤 했다. 봄이면 꿩이 울고, 여름에는 맹꽁이 소리가 난다. 비 오는 날이면 창문을 열고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즐겼다. 정든 집을 두고, 사무실까지 걸어 다닐 만한 집을 찾았다. 나이 때문에 운전하는 게 부담스러워져서다. 가격에 맞추다 보니, 집을 대폭 줄여야만 헸다.
아내와 딸은 내게 30%는 버리란다. 요즘엔 작은 집도 드레스 룸은 있지만 서재는 없다며 책부터 버리란다. 그 귀한 걸 어떻게 버리냐고 버티니 딸이 압박한다. "읽지도 않잖아요. 버려도 버린 줄 모르면서. 지난 이사 때, 광에 있던 책 박스를 엄마랑 버렸는데, 안 찾으시던데요." 의문이 풀렸다. 지방 취재 다닐 때, 구해서 모아 두었던 여러 지역의 '군지郡誌' 박스다. 내 눈앞에서 책을 버리면 다시 주워 오곤 하니, 나 몰래 내다 버린 것이다. 언젠가 찾아보니 안 보여서 이상하다고만 여겼다. 책을 끼고 사는 척했지만, 읽지도 챙기지도 않은 셈이다. 여동생과 조카도 이삿짐을 싸러 와서 합세했다. “이제는 모두 버리고, 편하게 사세요. “
저마다 책 보관 장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책 주기도 쉽지 않다. 좋은 책을 주어도 받을까 말 까다. 애장 도서 중 하나인 영문판 '사서삼경' 6권을 먼저 골랐다. 25년 전에 선물로 받은 책이다. 귀한 책이니 귀하게 다룰 분을 찾았다. 무협소설을 쓰는 웹작가에게 제안했다. 집이 좁다며 난색을 표한다. 관심 가질 만한 몇 분에게 선을 대어보았지만 모두 고개 젓는다. 김진웅 교수가 떠 올랐다. MBC 연구원으로 근무했던 선문대 교수다. 동양 사상 관련 책도 집필한 분이다. 너무 고마워했다. 책이 제 임자를 찾아갔다.
내세울 만한 나의 소장 도서는 라디오 제작 관련 책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라디오 책은 많지 않다. 한 때는 국내에서 나오는 책은 죄다 사 모았다. 외국 이 갈 때, 서점에 들러 라디오 책을 구한 적이 있다. 아마존에 주문하기도 했다. BBC 라디오 PD 플로우라잇 Plowright에게서 몇 권의 책선물도 받았다. 그러다 보니 20여 권의 외국 책을 갖게 되었다.
지금 강의 나가는 인하대의 도서관에 기증 의사를 밝혔다. 10년 지난 책은 안 받겠단다. 도서관도 보관 장소가 좁아서 해마다 오래된 책은 처분한단다. 내 책은 거의 다 10년이 넘었다. 해묵은 책이지만 귀중한 자료라고 설득하니, 외국서적만큼은 검토해 보겠단다. 17권의 책을 보냈다. 인하대와 주변 대학에서 보유하고 있는 책은 빼고, 8권만 받았다. 그나마 많이 채택된 편이란다.
국내 책은 방송 분야 서지학자로, KBS 출신이며 광운대 교수를 지낸 김성호 박사에게 부탁했다. ‘한국방송관계문헌색인’을 펴냈고, 지금도 방 2개에 방송자료를 쌓아놓고 한국방송사를 다룬 책을 쓰고 있다. 언젠가 방송 박물관이 지어지면 모든 자료를 기증하겠다는 분이다. 선택되지 않은 자료는 버린다는 전제로 받아주었다. 우체국 5호 박스 두 개 분량의 책과 방송자료를 보냈다. 몇 주일 뒤에 만났는데, 받은 책 중에서 2/3는 벌써 버렸다고 했다.
챙겨보니 방송자료가 꽤 된다. 지방 풍물을 소개하던 라디오 다큐멘터리를 10년쯤 만들었다. 전국 웬만한 곳은 다 누비고 다니며 그 지역 명사들과 인터뷰했다. 카세트테이프가 사과 한 상자만큼 나왔다. 은퇴하면, 다시 들어보고 여행기를 펴낼 꿈을 꾸었다. 이제는 가망 없어졌다. 서지학을 하는 분과 선이 닿아 설명했다. "각 지역의 명사, 전문가들과 인터뷰했어요. 이제는 거의 돌아가셨을 분들의 육성입니다." 귀한 자료가 될 것 같다면서 가져갔다. 취재수첩과 방송원고는 한 번쯤 읽어 보고 싶어서 이번에는 주지 않았다. 기회 되면 다 넘길 것이다.
외국 라디오 프로그램 원고와 CD도 있었다. 국제 피처회의 International Feature Conference에서 독일 라디오의 대가 피터 레온하르트 브라운 Peter Leonhard Braun을 만났었다. 그와 인연이 더해져서, 졸저 '라디오 다큐멘터리' 추천사도 받았었다. 국제피처회의에서 발표한 라디오작품의 대본과 CD를 다섯 차례나 보내주었다. 듣지는 않았지만 간직하고 있었다.
김현수 MBC 라디오국장에게 그 자료를 기증하고 싶다고 했다. 양이 얼마나 되냐고 묻길래, 사과 한 상자 정도라고 줄여서 답했다. 더러는 덜어내고, 사 모아둔 외국방송 CD랑 한 상자에 담아 보냈다. 김국장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라디오 본부 벽장에 넣어 PD들이 이용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아마 듣지는 않을 거예요. PD들에게 자극이 되면 좋겠습니다."
자격증, 졸업장, 감사장, 상장은 커버를 뜯어내 버리고 알갱이만 남겼다. 감사패, 기념패도 더러는 버렸다. 뒷날 전직 교수와 이삿짐 이야기 나누다가 들었다. 자기가 보기에는 대단한 감사패인데, 이삿짐 쓰레기로 나온 걸 봤단다. 옆 사람이 거들었다. "그래서, 감사패는 종이로 만들어야 해. 나중에 찢어버리면 되니까."
취미로 수집한 물건도 짐이 되었다. 부피가 작고 저렴한 기념품으로 마그넷을 모은 적이 있다. 외국에 갈 때마다 마그넷을 사 와 냉장고에 붙였다. 그것도 여러 해 모으니 수십 개나 되었다. 냉장고 한 벽을 덮었다. 한때는 아끼던 기념품도 시간이 흐르니까 심드렁해졌다. 봉지에 넣어 두었는데, 이번 기회에 산업폐기물 자루에 담아 버렸다.
내 소유물은 내게 물건 그 이상이다. 하나하나에 내 삶이 스며있다. 지닐 수 없게 되었으니, 누군가에게 주어야 한다. 내게는 소중하지만, 남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받아도 언젠가 버릴 것이다. 씁쓸한 마음을 아내가 위로한다. "하늘로 이사 갈 때는 몸뚱이도 버리잖아요."
집을 줄여 이사한 덕분에 나 자신을 겸손하게 돌아보게 되었다. 이삿짐을 싸며 내가 꾸던 꿈을 하나하나 접었다. 짐을 치우니 애써 살아온 내 흔적이 지워지는 듯하다.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 왕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코헬렛 1:2)
이 글은 MBC 퇴직 사우들의 신문 MBC 사우회보 2024년 7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