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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월 Sep 09. 2023

주례를 위한 주례사

  "외삼촌, 충격받지 마세요."

어느 날 조카가 전화했습니다. 두 달 뒤 결혼 하는데, 주례를 서 달라는 겁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몹시 아끼는 조카이고, 성격이 좋아서 늘 기특하게 여겨왔고, 조카가 저를 잘 따르는 것은 알긴 했습니다만, 주례라니요. 전혀 예상 못한 일이었습니다.  조카는 괜찮은 대학을 나왔으니, 훌륭하신 은사님도 계실 게고, 좋은 회사 다니고 있으니, 존경하는 상사도 있을 데니요. 게다가 저는 주례를 서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 저런 이유를 들어 사양하니 조카가 진지하게 그러네요. "그분들이 저의 결혼에 무슨 상관이 있나요?"


 간곡한 부탁에 그만 승낙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날부터 성의껏 주례사를 준비했습니다. 조카 결혼식에 흠이 돼서는 안 되니까요. 원고를 쓰고 나니 뭔가 아쉬운 듯해서,  젊은 웹 무협소설 작가에게 감수도 받았습니다. 혹시라도 꼰대 같은 소리를 늘어놓았는지 염려도 되었고, 제게 부족한 유머러스한 부분을 넣으려고도 했습니다.  수정한 원고를 매일 밤마다 읽어보고, 그 소리를 녹음해 들으며 고치고 또 고쳤습니다. 2023년 9월 9일,  결혼식 당일 아침까지 고쳤습니다. 글재주가 부족한 탓도 있지만, 생각할수록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아서 어떤 말을 골라서 어떻게 전해야 할지 고민했기 때문입니다.


 주례사를 고치고 다듬다 보니, 저의 결혼 생활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쓰고 보니, 신랑 신부에게 해주는 말이라기보다 저 스스로 결혼 생활을 돌이켜보며 지혜로운 결혼 생활을 깨우치는 글이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겁 없이 결혼했던 젊은 날이 떠올랐습니다. 40년 넘게 함께 살아온 아내와의 지난날의 결혼 생활도 돌아보았습니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노년의 부부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도 했습니다.


 무사히 결혼식을 마쳤습니다. 주례사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색다른 주례사라는 말도 들었고, 특히 신부의 어머니와 신랑의 어머니가 좋아해 주어서 기뻤습니다. 주례사는 이렇게 했지만, 제가 그렇게 결혼 생활 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네요.  주례로써 그런 결혼 생활을 해야겠다고 신랑신부 앞에서 마음속으로  다짐은 했습니다. 저의 첫 주례는 저 자신을 위한 주례이기도 했습니다.

김승월

< 주례사>

안녕하십니까? 김승월입니다.

먼저 신랑 M군과 신부 L양의 결혼을 축하드리며, 두 사람을 위하여 귀한 시간을 내어 주신 하객 여러분께 신랑신부와 양가 부모를 대신해서 감사 인사 드립니다.


저는 신랑 M군의 외삼촌입니다. M군이 태어난 그날부터 봐왔습니다. 어릴 적 우리 집에 올 때마다, 거실에서 제자리 뛰기를 너무 열심히 해서, 아래층 고 3 수험생 부모의 항의 방문을 수차례나 받게 한 짓궂은 꼬마였습니다.


그랬던 그 꼬마가 중학교 2학년 때는 혼자 힘으로 삼국지 블로그를 만들어 하루 방문자가 천명이 넘게 하는 당찬 저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흔한 과외 한번 제대로 받아보지 않고서도, 혼자 힘으로 공부하며 스스로 길을 찾아간 모습 속에서는, 언젠가 큰 열매 맺으리라는 잠재력도 보였습니다.


그런 M군을 L양이 제대로 알아보았습니다. 신부 L양은 안목이 뛰어날 뿐 아니라, 상대를 편하게 해주는 넉넉한 품성을 지녔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이 깊고, 감정을 앞세우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이셨던 어머니 영향을 받아 선가요, 말씨도 너무 곱습니다. 더구나 우리 M군과 생각하는 것과 취향까지 비슷하니 찰떡궁합의 환상적인 조합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사람끼리 만나도 결혼 생활은 쉽지 않습니다.

이 쉽지 않은 결혼생활을 어떻게 할지 두 사람에게 물어봤습니다.


M군은 ‘역지사지’라고 말했고 L양은 ‘존중’이라고 답했습니다. 존중하다 보면 당연히 역지사지할 것이고, 역지사지한다는 것은 존중을 실천하는 것이니, 역지사지와 존중은, 서로 통하는 말입니다. 저 역시 ‘서로 존경하라’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으니 우리 셋은 생각이 같습니다.


언어 란 사람마다 의미를 달리 해석하고, 느끼는 강도도 다릅니다. 남편과 아내의 입장에서 존중이란 말은 사실 온전히 같기가 쉽지 않습니다. 진정한 존중이나 역지사지는 공감에서 시작합니다. 공감을 위해서는 서로 많이 알아야 합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 1’의 전문을 소개해 드립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신부 L양은 가끔 M군이 미워질 때도 사랑스럽게 오래오래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세히 보면 우리 M도 예쁩니다.

물론 L양은 자세히 보지 않아도 예쁩니다.


인간은 부부로 한평생 같이 살아도 완전히 알 수 없는 신비한 존재입니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다 보면, 이런저런 다름으로 힘들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생깁니다.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으면,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줘야 합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역지사지하는 자세로,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끊임없이 격려해 주기 바랍니다.


가톨릭기도서 ‘부부를 위한 기도'에 나오는 대로,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잘 살 때나 못 살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기를 기도드립니다.  

사랑의 가정을 밑바탕으로 해서/, 삼성전자연구원인  M군은 ‘사랑이 담긴 기술’로, 서울대병원 간호사인 L양은 ‘사람을 사랑하는 의술’로 이 사회가 여러분에게 베푼 것을 보답하길 기대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하객 여러분!


M군과 L양이 사랑의 가정을 이루고, 이 사회에 기여하도록 큰 박수로 성원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M군과 L 양! 두 분이 오늘에 이르도록 키워 주신 부모님과 이 자리를 빛 내주신 하객 여러분께 고마움을 깊이 새기고, 맺은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길 바랍니다


자세히 보면 예쁘고, 오래 보면 사랑스러운 두 분,  

M군과 L양의 새 가정에,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이 가득하기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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