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주례가 내게 남긴 가르침
조카의 결혼식에서 전한 말이 제 다짐이 되었습니다.
신랑·신부를 위한 주례사가 곧 제 삶의 주례사였습니다.
"외삼촌, 충격받지 마세요."
조카가 결혼을 두 달 앞두고 전화 걸어와 주례 부탁했다. 깜짝 놀랐다. 내가 아끼는 조카이고, 나를 잘 따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주례라니.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조카는 좋은 대학을 나와 괜찮은 회사를 다니니, 존경할 만한 은사나 상사도 있을 터였다. 나는 주례 경험도 없었다. 사양하고, 은사나 상사 중에서 찾아보라고 권했다. 조카가 진지하게 물었다.
“그분들이 제 결혼과 무슨 상관이 있나요?”
간곡한 말에 결국 승낙하고는 그날부터 주례사 준비에 들어갔다. 원고를 썼지만, 아쉬움이 남았다. 젊은 웹 무협소설 작가에게 감수를 부탁해 꼰대 같지는 않은지 살폈다. 그리고는 원고를 녹음해 밤마다 들으며 고치고 또 고쳤다. 결혼식 당일 아침까지도 손질을 멈출 수 없었다. 글재주가 없어서라기보다는, 해주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였다.
주례사를 고치고 다듬다 보니, 내 결혼 생활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겁 없이 덤볐던 젊은 날,
40년 넘게 함께 걸어온 아내와의 세월, 그리고 다가올 노년의 부부 생활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쓰고 보니 신랑·신부를 위한 말이라기보다, 내 삶을 성찰하는 글이 되었다.
신랑과 신부가 인사하러 왔을 때, 결혼 생활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봤다. 신랑은 '역지사지'라고 했고, 신부는 '존중'이라고 답했다. 나는 서로 '존경하라'라고 말해주고 싶었기에, 흐뭇했다. '역지사지'와 '존중'을 주례사에 담았다.
"말이란 사람마다 의미를 달리 해석하고, 느끼는 강도도 다릅니다. 남편과 아내의 입장에서 '존중'이란 말은 사실 온전히 같기가 쉽지 않습니다. 진정한 '존중'이나 '역지사지'는 '공감'에서 시작합니다. 공감을 위해서는 서로 깊이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 1’을 나누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신부 L양은 가끔 M군이 미워질 때도 사랑스럽게 오래오래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세히 보면 우리 M군도 예쁩니다.
물론, L양은 자세히 보지 않아도 예쁩니다."
하객들은 웃었고, 양가 어머니들도 미소 지었다. 나도 시인의 말대로 나와 함께 산 사람을 오래 , 자세히 보았는지 떠올려보았다. 식장 안은 따뜻함이 감돌았다. 이어서 내가 살면서 아내에게 해주고 싶었지만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것을 신랑, 신부에게 당부했다.
"인간은 부부로 한평생 같이 살아도 완전히 알 수 없는 신비한 존재입니다.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다 보면, 이런저런 다름으로 힘들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생깁니다.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으면,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해줘야 합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역지사지하는 자세로,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끊임없이 격려해 주기 바랍니다."
결혼식이 끝난 뒤에도, 내가 한 말들이 내 안에서 자랐다. 그날의 주례는 신랑과 신부를 위한 덕담이었지만, 나를 위한 다짐이 되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시 한 줄처럼, 나 역시, 내 곁의 사람을 더 오래, 더 자세히 바라보며 사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그날의 말이
아직도 내 안에서 울린다.
그 울림이, 내 삶의 주례가 되었다.
주례사 원문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radioplaza/224016520072